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변호사/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rokps.or.kr/images/user/476.jpg?width=150 尹亨南 1911년 3월 16일 ~ 2002년 9월 10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11년 [[전라남도]] [[순천시|순천군]]에서 태어났다. [[일본]] 니혼 대학을 수료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 후기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그리고 [[경상북도]] [[칠곡군]]수, [[상주시|상주]][[군수]] 등을 지냈다가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8.15 광복]] 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외교부|외무부]] 법무과장, [[법제처]] 법제관 등으로 근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전라남도 순천시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국민당]] [[김양수(1896)|김양수]]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국민당 김양수 후보에 설욕하여 당선되었다. 1955년 [[민주당(1955년)|민주당]] 창당에 참여하고 중앙위원으로 임명되었다. 이후 민주당에서 구파에 속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9년 민주당 전라남도당 부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 연말 민주당 구파 소속 정치인들과 민주당을 탈당하고 [[신민당(1960년)|신민당]]을 창당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민정당]]에 입당하였다가 탈당하고 정계 은퇴 선언을 하였다. 이후 [[변호사]]로 활동하였다. 1971년 [[제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민당(1971년)|국민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신민당(1967년)|신민당]] [[김상현(1935)|김상현]]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일제강점기 고위관료 경험으로 인하여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순천시 출신 인물]][[분류:대한민국의 법조인]]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윤형남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