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부여/왕사]] 依羅王 생몰년도 미상 ||||||<tablewidth=70%><tablealign=center><-5><bgcolor=#DCDCDC><:> '''[[부여/왕사|부여의 역대 국왕]]''' || ||<width=30%><:> ??대 [[의려왕]] || {{{+1 ←}}} ||<width=30%><bgcolor=#008080><:> '''{{{#white ??대 의라왕}}}''' || {{{+1 →}}} ||<width=30%><:> ??대 [[현왕]] || == 개요 == [[부여]]의 왕. [[의려왕]]의 아들로 285년 부여가 [[모용선비]]에게 큰 타격을 입자 [[서진]]에게 구원을 요청한다. 당시 동이교위인 하감이 독우 [[가침]]을 파견해 의라를 돕자, [[모용외]] 역시 손정을 보내 대응했다. 하지만 가침은 손정을 죽였고 선비족 군사들이 물러나서 부여는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모용외는 부여를 공격했으며, 부여인들을 잡아 그들을 서진에 노예로 팔아먹었다. 설상가상으로 고구려 역시 부여 일대로 진출을 꾀해서 부여는 수도를 녹산에서 모용선비와 가까운 곳으로 옮겼다.[* 자치통감 윈문에선 [[백제]]가 부여를 공격한 걸로 되어 있다. 그러나 백제 [[요서경략설]]을 허용한다 하더라도 요서에서 길림지역으로 군대를 투입시키는 것은 모용선비와 고구려를 통과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 [[사마염]]은 이를 가엽게 여겨 사주(司州), 기주(冀州) 2주에서 부여인의 매매를 금지시켰으며 부여인 노예들을 부여로 되돌려보내 주었다. 사실상 마지막 부여왕으로 기록된 [[현왕]]과의 관계는 확실치 않다. [[분류: 부여의 왕]] 의라왕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