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www.siminsori.com/news/photo/201405/76793_34000_2249.jpg 李炳浣 1954년 11월 11일 ~ [목차] == 개요 ==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국민참여당]] 창당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 광주 서구 기초의원 다선거구(화정 3·4동, 풍암동)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제3대 이사장직도 역임했다. == 생애 == 1954년 11월 11일에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1967년 월평초등학교, 1970년 광주동중학교, 1973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73학번으로 입학했다.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고대신문 기자로 활약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인 5월 19일 밤 11시에 [[동아일보]] 박종렬 기자 등과 함께 광주로 내려갔다. 그 후 내란음모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 3년 언도를 받았으나, [[이세기]]의 도움으로 100일만에 출소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이세기가 국토통일원 장관을 할 때 비서관이 되었다. 1981년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치안본부 대외정책연구소의 일용직으로 8개월 정도 일했다. 그러다가 그 연구소가 반국가사범 사상검증하는 곳임을 알게 되자 뛰쳐 나왔고, 1982년 [[한국방송공사]]에 입사했다. KBS 정책기획실, KBS 보도본부에서 일했으며, [[이산가족찾기]]를 기획한 공로로 상도 받았다. 1988년 8월 [[서울경제신문]]이 복간되자, 당시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이던 박병윤의 제의로 KBS를 떠나, 서울경제신문으로 옮겼다. 1994년에는 서울경제신문 편집국 정경부 차장과 편집국 정경부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한국일보]]로 옮겨 경제부장 및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국정홍보조사비서관 및 국내언론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직을 맡았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 간사위원을 맡았고,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실행준비위원,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겸 정무팀장, 홍보수석비서관(차관급)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06년 11월 노무현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겠다고 하자 만류를 하였고, 그 후 [[문재인]]에게 비서실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청와대를 나왔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에는 [[안희정]], [[천호선]], 김만수 등과 함께 참여정부평가포럼을 결성하여 대표를 맡았다. [[열린우리당]]이 붕괴된 이후, 2009년에는 [[유시민]], [[이재정(1944)|이재정]] 등과 함께 국민참여당의 창당작업을 시작하여, 창당준비위원장이 되었다. 이때쯤 둘째 딸을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의 장남에게 시집 보내어 강금원 회장과 사돈지간이 되었다. 결혼식 주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았다. 2010년 1월 국민참여당이 창당한 뒤에는 국민참여당 광주광역시장 예비후보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참여하였다. 이때 국민참여당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직도 수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당의 [[강운태]]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는 국민참여당 상임고문, 참여정책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았다. 그 후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당]]으로 통합될 때 반대해 탈당했다. 2012년 지방선거에서는 광주 서구 다선거구(화정 3·4동, 풍암동)에 출마하여 기초의원으로 당선되어 화제를 모았다. --'청와대 도승지'로 300조 원대의 국가 살림을 맡던 사람이 '구청 주부합창단'의 간식비 문제로 머리를 쥐어짜게 되었다.-- 2014년 1월 22일에는 무소속으로 광주시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자신이 시장이 된다면 당시 시장이었던 강운태의 시정목표인 "행복한 창조도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겠다는 독특한 발언을 하였다. 그런 시정목표 같은 것도 바꾸는 데 돈 들고 누가 하든 좋은 목표는 이어나가야 한다는 취지라고.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윤장현]] 후보에게 밀려서 또 낙선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기자]][[분류:전라남도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이병완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