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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炳浣
1954년 11월 11일 ~
1 개요
대한민국의 정치인. 김대중 대통령 비서관과 노무현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냈다. 국민참여당 창당준비위원장을 역임했다. 2010년 6월 2일 지방선거에서 국민참여당 광주 서구 기초의원 다선거구(화정 3·4동, 풍암동) 후보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제3대 이사장직도 역임했다.
2 생애
1954년 11월 11일에 전라남도 장성군에서 태어났다. 1967년 월평초등학교, 1970년 광주동중학교, 1973년 광주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에 73학번으로 입학했다. 고려대학교 재학시절 고대신문 기자로 활약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인 5월 19일 밤 11시에 동아일보 박종렬 기자 등과 함께 광주로 내려갔다. 그 후 내란음모로 군사재판에 회부돼 징역 3년 언도를 받았으나, 이세기의 도움으로 100일만에 출소했다. 그때의 인연으로 나중에 이세기가 국토통일원 장관을 할 때 비서관이 되었다.
1981년 고려대학교 신문방송학과를 졸업하고, 치안본부 대외정책연구소의 일용직으로 8개월 정도 일했다. 그러다가 그 연구소가 반국가사범 사상검증하는 곳임을 알게 되자 뛰쳐 나왔고, 1982년 한국방송공사에 입사했다. KBS 정책기획실, KBS 보도본부에서 일했으며, 이산가족찾기를 기획한 공로로 상도 받았다.
1988년 8월 서울경제신문이 복간되자, 당시 서울경제신문 편집국장이던 박병윤의 제의로 KBS를 떠나, 서울경제신문으로 옮겼다. 1994년에는 서울경제신문 편집국 정경부 차장과 편집국 정경부장을 역임했다. 그리고 1995년에는 한국일보로 옮겨 경제부장 및 논설위원을 역임했다.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 국정홍보조사비서관 및 국내언론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2000년에는 새천년민주당 국가전략연구소 부소장과 정책위원회 상임부의장직을 맡았다.
2002년 노무현 대통령 당선 이후 제16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기획조정분과위 간사위원을 맡았고, 2003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 실행준비위원, 그리고 청와대 비서실 기획조정비서관, 정무기획비서관 겸 정무팀장, 홍보수석비서관(차관급) 등을 역임했다.
그리고 2005년에는 청와대 대통령비서실장을 역임했다. 2006년 11월 노무현이 열린우리당을 탈당하겠다고 하자 만류를 하였고, 그 후 문재인에게 비서실장 자리를 물려주면서 청와대를 나왔다.
2007년에는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이 되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말에는 안희정, 천호선, 김만수 등과 함께 참여정부평가포럼을 결성하여 대표를 맡았다.
열린우리당이 붕괴된 이후, 2009년에는 유시민, 이재정 등과 함께 국민참여당의 창당작업을 시작하여, 창당준비위원장이 되었다. 이때쯤 둘째 딸을 창신섬유 강금원 회장의 장남에게 시집 보내어 강금원 회장과 사돈지간이 되었다. 결혼식 주례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보았다.
2010년 1월 국민참여당이 창당한 뒤에는 국민참여당 광주광역시장 예비후보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참여하였다. 이때 국민참여당에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위원장직도 수행했다. 그러나 결과는 민주당의 강운태 후보에게 패배하여 낙선.
지방선거가 끝난 후에는 국민참여당 상임고문, 참여정책연구원 이사장 등을 맡았다. 그 후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당으로 통합될 때 반대해 탈당했다.
2012년 지방선거에서는 광주 서구 다선거구(화정 3·4동, 풍암동)에 출마하여 기초의원으로 당선되어 화제를 모았다. '청와대 도승지'로 300조 원대의 국가 살림을 맡던 사람이 '구청 주부합창단'의 간식비 문제로 머리를 쥐어짜게 되었다.
2014년 1월 22일에는 무소속으로 광주시장 출마를 선언하였다. 자신이 시장이 된다면 당시 시장이었던 강운태의 시정목표인 "행복한 창조도시"를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쓰겠다는 독특한 발언을 하였다. 그런 시정목표 같은 것도 바꾸는 데 돈 들고 누가 하든 좋은 목표는 이어나가야 한다는 취지라고. 그러나 새정치민주연합의 윤장현 후보에게 밀려서 또 낙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