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정치인/목록]] http://tv03.search.naver.net/thm?size=120x150&quality=9&q=http://sstatic.naver.net/people/71/20070116202837197090652.jpg?width=150 [목차] == 개요 == 李相得. [[1935년]] [[11월 29일]] 생.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종교]]는 [[개신교]]([[장로교]])이다. [[한국]]의 전직 [[국회의원]]이자 [[이명박]] 전 [[대한민국 대통령|대통령]]의 친형으로, MB 정부 시절 농담반진담반 [[상왕]]이라 불리며 권세를 누렸다. ~~[[포항시|영일]][[대군]].~~ [[만사형통]]이라고 불리기도... == 경력 ==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4기로[* 육사 재학 시절 대표적인 절친들이 [[하나회]] 회원들인 [[이춘구]], [[이종구(군인)|이종구]], [[안무혁]], 박정기, [[배명국]], 정도영 등이었다고 한다. 애초 정계입문도 이춘구의 권유로 한 거다.] 입학하였다가 몸이 안 좋아 자퇴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좋은 머리를 좋은데 쓸 것이지...-- 이후 [[코오롱그룹]]에 입사하여 근무하고 1984년 코오롱상사 사장이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포항)|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7년까지 신한국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7년 말 신한국당이 [[통합민주당(1995년)|통합민주당]]을 흡수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되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5년까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제17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대선 당시 동생 [[이명박]]의 대선자금을 거의 혼자서 조달하다시피 하였다. 당시 대선캠프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돈을 받아 비용을 충당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을 한 덕분에 이명박 정권에서 상왕이란 농담반진담반 별칭으로 불리며 최고의 [[실세|실권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임태희]], 박영준 등은 그의 [[양자]]들로 불리면서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였다. 2008년 동생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같은 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두언]]을 비롯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불출마 요구가 있었으나 아랑곳 않고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당시 소장파 의원이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016년 한 말에 의하면, 그의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더니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줄줄이 이어져있었다고.(...) --역시 상왕.-- 그리고 마침 사무실로 들어가던 이상득이 그를 보더니 '어, 남경필 아냐?또 불출마 권유하려고 왔어?일단 들어가지'라고 해서 프리패스(...)로 들어갔지만, 역시나 불출마 요구에 이상득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남경필은 여당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불법사찰을 당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여론이 좋지 않자 2선 퇴진과 함께 ‘자원외교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문젠 그의 곁에 몰려든 공기업 사장들과 함께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마어마한 부실투자(...)를 주도하였다는 것.[* 이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자원외교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죠. 자원을 확보하고 싶으면 조용히 확보해야지. 팡파르 울리면 물건값만 올라가는데...그때 외교관들이 ‘되게 촌스럽다’ 그러더라고요.", "자주개발률을 내세웠는데, 공기업들은 이 목표치를 달성하면 정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걸로 기대했겠죠. 또 그걸 총괄 지휘한 게 실질적으로 대통령 형님이잖아요. 그러니 공기업들은 ‘형님이 자원외교를 하겠다고 다니시니까 이걸 뒷받침해서 형님한테 잘 보여야 한다. 자주개발률이라는 기준까지 나오니 이걸 달성하면 내 성과가 SD 성과가 되고 내가 잘되겠구나’ 싶어서 혈안이 된 것 아니겠어요? 촌스럽게 시작해서 경직되게 막 흘러간 거죠. 견제받지 않는 형님권력에 불나방처럼 붙어 잘 보이려 하다 그렇게 된 거죠”라고 비판하였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q=118978|관련 기사]].] == 사건사고 == 그러다 느닷없이 MB정권 말인 2012년 솔로몬·미래저축은행 등으로부터 7억6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헌정(憲政)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친형으로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 당시 나이가 한국 나이로 78세였다. 현재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만 80세에도 못 미치는 걸 고려하면 상당한 고령에 감옥에 간 셈. --어차피 이상득은 83살에도 살아 있다. 근데 80대에도 형사 재판 중.--]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어 [[징역]]을 살았고, 2013년 9월 8일, 만기 [[출소]]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 5일, 포스코비리와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제3자를 통해 금품을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량이 [[징역]] 15년이라 한다. 그러나 2016년 11월, 이에 대한 혐의로 검찰에서 징역 7년과 벌금 26억을 구형했고, 2017년 1월에 1심 판결이 나왔다.[* 판결이 아니라 검사 구형이 저렇다는 것이다. 보통 판결이 검찰 구형 이상 나오는 경우가 적어 15년의 절반도 못 나올 듯. 근데 징역 7년만 해도 90살까지 감옥에 사는 셈이다.(불구속 재판이라 유죄판결시 항소를 하면 2심, 3심으로 가서 더 시간을 끌 수 있다.) --한국 최고령 감옥살이 기록 도전?-- 이상득도 검찰 구형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몸과 정신이 지쳐 있다."면서 선처를 부탁하는 최후진술을 하였다.] 형 결과,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1&oid=003&aid=0007710322|징역 1년3개월]]이 나왔다. == 트리비아 == [[정두언]] 의원의 말에 의하면, 이상득은 평소에도 MB보다 자신이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상득은 MB의 자서전격 저서인 '신화는 없다'에 대해 얘기가 많이 과장됐다며, [[본인]]을 내세우려고 가족들을 바보 만들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교회]]의 [[신앙]] [[간증]]에서도 MB가 가족 얘기를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폄하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 같다고. --그래서 동생 집권기간 중에 구속되며 빅똥을 싸지른 거였나?-- 대통령 임기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해 강남에 살고 있는 동생 이명박과는 달리[* 원래 강남에 살았다. 꽤 오래 전인 [[현대건설]] 회장 시절에도 [[압구정 현대아파트]] 76동 80평형에 거주했다. 압구정 현대에서 가장 큰 평수.], 이상득은 현재도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명박의 아들보다 이상득의 아들의 외모가 이명박과 더 닮은 편이다. 실제로 외모를 보면 아버지 이상득보다 숙부 이명박과 외모 및 두상이 많이 닮았다.(...)''' [[김근태]] 前 국회의원이 사망했을 때, 조문하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김근태와의 지난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었다. 여담으로 동생 이명박처럼 [[대기업]]의 CEO를 맡기도 해서 정장을 보는 눈이 좀 있고, 키도 이명박보다 커서 그런지(...) '''수트핏이 상당히 좋은 인물이기도 하다.''' == 선거 이력 ==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 연도 || 선거종류 || 소속정당 || 득표수(득표율) || 당선여부 || 비고 || || 1988 || [[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일/울릉) || '''[[민주정의당]]''' || '''47,795 (51.67%)''' || '''당선 (1위)''' || || || 1992 || [[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일/울릉) || '''[[민주자유당]]''' || '''50,435 (52.89%)''' || '''당선 (1위)''' || || || 1996 || [[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 || '''[[신한국당]]''' || '''55,105 (48.77%)''' || '''당선 (1위)''' || || || 2000 ||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 || '''[[한나라당]]''' || '''64,067 (53.45%)''' || '''당선 (1위)''' || || || 2004 ||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 || '''[[한나라당]]''' || '''59,370 (50.10%)''' || '''당선 (1위)''' || || || 2008 ||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 || '''[[한나라당]]''' || '''68,392 (69.62%)''' || '''당선 (1위)''' || ||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 이상득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