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득

1 개요

李相得. 1935년 11월 29일 생.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종교개신교(장로교)이다. 한국의 전직 국회의원이자 이명박대통령의 친형으로, MB 정부 시절 농담반진담반 상왕이라 불리며 권세를 누렸다. 영일대군. 만사형통이라고 불리기도...

2 경력

포항 동지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14기로[1] 입학하였다가 몸이 안 좋아 자퇴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 경제학과를 졸업하였다. 좋은 머리를 좋은데 쓸 것이지... 이후 코오롱그룹에 입사하여 근무하고 1984년 코오롱상사 사장이 되었다.

1988년 제1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정의당 후보로 경상북도 영일군-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2년 제1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한국당 후보로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울릉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1997년까지 신한국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1997년 말 신한국당이 통합민주당을 흡수하여 한나라당이 되자 한나라당 원내총무가 되었다. 1998년부터 2000년까지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을 역임하였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2년까지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역임하였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같은 해부터 2005년까지 한나라당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제17대 국회 후반기 국회부의장을 역임하였다.

2007년 대선 당시 동생 이명박의 대선자금을 거의 혼자서 조달하다시피 하였다. 당시 대선캠프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서 돈을 받아 비용을 충당했다고 한다. 그렇게 고생을 한 덕분에 이명박 정권에서 상왕이란 농담반진담반 별칭으로 불리며 최고의 실권자로 군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임태희, 박영준 등은 그의 양자들로 불리면서 권력의 핵심을 차지하였다.

2008년 동생 이명박이 대통령에 취임하고 같은 해 치러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정두언을 비롯한 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불출마 요구가 있었으나 아랑곳 않고 해당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2] 그러나 이후 여론이 좋지 않자 2선 퇴진과 함께 ‘자원외교에만 전념하겠다’고 선언했는데, 문젠 그의 곁에 몰려든 공기업 사장들과 함께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어마어마한 부실투자(...)를 주도하였다는 것.[3]

3 사건사고

그러다 느닷없이 MB정권 말인 2012년 솔로몬·미래저축은행 등으로부터 7억6000만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헌정(憲政) 사상 처음으로 현직 대통령 친형으로서 구속되는 불명예를 안게 된다.[4] 결국 대법원에서 징역 1년 2개월의 실형이 확정되어 징역을 살았고, 2013년 9월 8일, 만기 출소했다.

그러다가 2015년 10월 5일, 포스코비리와 관련하여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제3자를 통해 금품을 수령한 혐의를 받고 있으며 유죄가 인정될 경우 형량이 징역 15년이라 한다. 그러나 2016년 11월, 이에 대한 혐의로 검찰에서 징역 7년과 벌금 26억을 구형했고, 2017년 1월에 1심 판결이 나왔다.[5] 형 결과, 징역 1년3개월이 나왔다.

4 트리비아

정두언 의원의 말에 의하면, 이상득은 평소에도 MB보다 자신이 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이상득은 MB의 자서전격 저서인 '신화는 없다'에 대해 얘기가 많이 과장됐다며, 본인을 내세우려고 가족들을 바보 만들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도 했다고 한다. 교회신앙 간증에서도 MB가 가족 얘기를 하다보면 상대적으로 자신이 폄하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 같다고. 그래서 동생 집권기간 중에 구속되며 빅똥을 싸지른 거였나?

대통령 임기 종료 후 현역에서 은퇴해 강남에 살고 있는 동생 이명박과는 달리[6], 이상득은 현재도 성북동에 거주하고 있다.

여담으로 이명박의 아들보다 이상득의 아들의 외모가 이명박과 더 닮은 편이다. 실제로 외모를 보면 아버지 이상득보다 숙부 이명박과 외모 및 두상이 많이 닮았다.(...)

김근태 前 국회의원이 사망했을 때, 조문하러 갔는데, 그 자리에서 김근태와의 지난 인연을 언급하기도 했었다.

여담으로 동생 이명박처럼 대기업의 CEO를 맡기도 해서 정장을 보는 눈이 좀 있고, 키도 이명박보다 커서 그런지(...) 수트핏이 상당히 좋은 인물이기도 하다.

5 선거 이력

당 내부 선거가 아닌 대한민국 선출직 공직자 선거 결과만 기록한다.

연도선거종류소속정당득표수(득표율)당선여부비고
1988제13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일/울릉)민주정의당47,795 (51.67%)당선 (1위)
1992제14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영일/울릉)민주자유당50,435 (52.89%)당선 (1위)
1996제15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신한국당55,105 (48.77%)당선 (1위)
2000제16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한나라당64,067 (53.45%)당선 (1위)
2004제17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한나라당59,370 (50.10%)당선 (1위)
2008제18대 국회의원 선거 (경북 포항 남/울릉)한나라당68,392 (69.62%)당선 (1위)
  1. 육사 재학 시절 대표적인 절친들이 하나회 회원들인 이춘구, 이종구, 안무혁, 박정기, 배명국, 정도영 등이었다고 한다. 애초 정계입문도 이춘구의 권유로 한 거다.
  2. 당시 소장파 의원이었던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2016년 한 말에 의하면, 그의 사무실에 직접 찾아갔더니 한밤중인데도 불구하고 그를 만나기 위한 사람들로 줄이 줄줄이 이어져있었다고.(...) 역시 상왕. 그리고 마침 사무실로 들어가던 이상득이 그를 보더니 '어, 남경필 아냐?또 불출마 권유하려고 왔어?일단 들어가지'라고 해서 프리패스(...)로 들어갔지만, 역시나 불출마 요구에 이상득은 단칼에 거절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 남경필은 여당의원임에도 불구하고 정권의 불법사찰을 당하게 된다.
  3. 이에 대해 정두언 의원은 “자원외교라는 말 자체가 난센스죠. 자원을 확보하고 싶으면 조용히 확보해야지. 팡파르 울리면 물건값만 올라가는데...그때 외교관들이 ‘되게 촌스럽다’ 그러더라고요.", "자주개발률을 내세웠는데, 공기업들은 이 목표치를 달성하면 정부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걸로 기대했겠죠. 또 그걸 총괄 지휘한 게 실질적으로 대통령 형님이잖아요. 그러니 공기업들은 ‘형님이 자원외교를 하겠다고 다니시니까 이걸 뒷받침해서 형님한테 잘 보여야 한다. 자주개발률이라는 기준까지 나오니 이걸 달성하면 내 성과가 SD 성과가 되고 내가 잘되겠구나’ 싶어서 혈안이 된 것 아니겠어요? 촌스럽게 시작해서 경직되게 막 흘러간 거죠. 견제받지 않는 형님권력에 불나방처럼 붙어 잘 보이려 하다 그렇게 된 거죠”라고 비판하였다. 관련 기사.
  4. 당시 나이가 한국 나이로 78세였다. 현재 한국 남성 평균수명이 만 80세에도 못 미치는 걸 고려하면 상당한 고령에 감옥에 간 셈. 어차피 이상득은 83살에도 살아 있다. 근데 80대에도 형사 재판 중.
  5. 판결이 아니라 검사 구형이 저렇다는 것이다. 보통 판결이 검찰 구형 이상 나오는 경우가 적어 15년의 절반도 못 나올 듯. 근데 징역 7년만 해도 90살까지 감옥에 사는 셈이다.(불구속 재판이라 유죄판결시 항소를 하면 2심, 3심으로 가서 더 시간을 끌 수 있다.) 한국 최고령 감옥살이 기록 도전? 이상득도 검찰 구형 재판에서 혐의를 부인하며 "이제 살 날이 얼마 안 남았다. 몸과 정신이 지쳐 있다."면서 선처를 부탁하는 최후진술을 하였다.
  6. 원래 강남에 살았다. 꽤 오래 전인 현대건설 회장 시절에도 압구정 현대아파트 76동 80평형에 거주했다. 압구정 현대에서 가장 큰 평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