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include(틀:충격요소)]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ph.idomin.com/news/photo/201506/482617_368198_1517.jpg?width=200 http://cdn.ddanzi.com/201501-images/3572913.jpg?width=200 李協雨 1921년 ~ 1987년 8월 11일 [[대한민국]]의 전 [[경찰공무원]], [[친일반민족행위자]], [[정치인]]이다. 1921년 [[경상북도]] 경주[[군(행정구역)|군]](현 [[경주시]]) 내남면 망성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농림학교(현 [[대구자연과학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일제강점기]] 말기 고등계 형사, 내남면 [[서기]]로 근무하였다. [[8.15 광복]] 후 [[우익]] 정치인이 되어 [[대한청년단]] 내남면 오단부단장, 내남면 수리조합장을 지냈다. 1949년경 경주군에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청년단 후보로 경상북도 경주군 을 선거구에 출마하여 여러 후보가 난립한 끝에 당선되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역시 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온갖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자유당]]에 입당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상북도 월성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역시 온갖 [[부정선거]]를 저지르고 당선되었다. 1960년 [[4.19 혁명]] 이후 주민 학살 사건으로 구속 기소되었고 1심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5.16 군사정변]]이 일어난 후 [[혁명재판]]에서 이협우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재판을 진행하여 감형되고, 결국 1963년 이협우는 석방되었다. 1975년 [[10월 유신]]에 반대하여 민주회복국민회의 경주시지부 상임대표위원으로 활동하였다. [[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분류:경주시 출신 인물]]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틀:충격요소 (원본 보기) 이협우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