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정치인/목록]], [[실향민/대한민국]] [include(틀:국내 정치인)] http://rokps.or.kr/images/user/480.jpg?width=150 張暻根 1911년 5월 18일 ~ 1978년 7월 25일 [[대한민국]]의 전 법조인,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911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이후 [[경기도]] [[부천시|부천군]]에서 성장하였다. [[경성부]] 휘문고등보통학교(현 [[서울특별시]] [[휘문고등학교]]), 일본 [[교토]] [[구제고등학교|제삼고등학교]], [[도쿄대학|도쿄제국대학]] 법학부를 졸업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재학 중 [[일본]] 고등문관시험 사법과에 합격하였다. 도쿄제국대학 졸업 후 귀국하여 [[일제강점기]] 말기 [[판사]]를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 [[미군정]]기에서도 판사로 근무하였다. 그러나 반민족행위처벌법이 제정되면서 자신의 경력이 문제되자 사임하였다. 이후 [[이승만]] 정권이 출범하자 1949년 4월부터 1950년 3월까지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차관]]을 역임하였다. 이 때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에서 친일경찰인 최운하를 체포하자 경찰을 동원하여 반민특위 사무실을 습격해 특경대원들을 무장 해제시킨 후 연행하였다. 이를 세칭 '6.6사건'이라 한다. 1950년 5월부터 1951년 6월까지 [[대한민국 국방부|국방부]] [[국방차관|차관]]을 역임하였는데, [[한강 인도교 폭파]] 사건에 그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이 나중에 제기되었다. 1954년 [[한국기원]] 초대 [[이사장]]에 추대되었다. 같은 해 치러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경기도 부천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현역 [[국회의원]]인 [[무소속]] [[박제환]]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같은 해 [[사사오입 개헌]]을 추진하였고, 그 과정에서 [[김두한]]에게 폭행당하였다. 1957년 2월부터 같은 해 9월까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유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3.15 부정선거]]에 깊이 관여했다. [[4.19 혁명]], [[5.16 군사정변]]이 일어나면서 부정선거 책임자로 지목되어 구속되자, 재판 계류 중 입원해 있던 병원을 탈출해 일본으로 밀항했다. 이후 미국, 브라질 등을 전전하다가 지병이 심해지면서 1977년 귀국하였고, 1978년 사망했다. 2009년 [[민족문제연구소]]가 발간한 [[친일인명사전]] 사법 부문에 수록되었다. 드라마 [[무풍지대]]에서는 故 박영목, [[야인시대]]에서는 MBC 성우 [[김강산]](본명 김익곤)이 연기하였다. [[분류:한국군/군인]][[분류:대한민국의 정치인]][[분류:평안북도 출신 인물]][[분류:친일반민족행위자]]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국내 정치인 (원본 보기) 장경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