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분류:프랑스의 정치인]]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7/7a/Georges-Jacques_Danton.jpg '''조르주 당통 Georges Jacques Danton ''' '''([[1759년]] [[10월 26일]] ~ [[1794년]] [[4월 5일]])[* 불과 34세에 사망하였다]''' '''프랑스 혁명가이자, 정치가, 위대한 웅변가.''' 파리코뮌의 검찰관 차석 보좌관과 법무장관을 지냈다. 국민공회에서는 산악당에 속하였고 자코뱅당의 우익을 형성하였으며 혁명적 독재와 공포정치의 완화를 요구하여 [[로베스피에르]]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그리고 [[로베스피에르]], [[마라]]와 함께 [[프랑스 혁명]]의 3대 거장인 인물중 하나다. 법률을 공부하다가 변호사가 되었다가 혁명이 일어나자 이에 공감하고 정치가로 활동했다. [[공포정치]]의 극단적인 옹호자로 [[1792년]] 프랑스 국민의회에서의 "우리가 울리는 경보는 비상 신호가 아니라 프랑스의 적을 공격하라는 명령이다. 승리를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투쟁해야 한다. 그래야만 프랑스의 안전이 보장된다." 는 --악명높은--연설은 유명하다. 또 유명한 연설은 "적을 쳐부수기 위해서는 하나에도 용기, 둘에도 용기"라고 말한 연설이다. 군중들을 선동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도록 만든것도 그이고 파리로 진격해오던 혁명의 적들과 싸우도록 국민의회와 국민들을 고무시킨것도 당통이었다. 훗날 끝없는 유혈사태의 [[만악의 근원]]이기도하다. 자코뱅당에 가입해서 혁명재판소를 설치후 왕당파들을 엄청나게 처형시켰다. 차후 [[로베스피에르]]와 의견이 충돌하면서 혁명내부의 좌,우파에 대한 탄압중에 외국인과 결탁하여 뇌물을 받고, 레지스탕스 세력을 도운 반역 및 뇌물수수 혐의로 재판을 받고 단두대 형을 받았다. 이것뿐만 아니라 여성편력도 심했고 낭비벽도 심했던 당통인데, 부정푸패를 싫어하고 도덕을 권장하는 로베스피에르가 그를 어떻게 좋게 보겠나. 처형장으로 향하던 도중 [[로베스피에르]]의 집 앞을 지나가면서 '다음은 귀하의 차례다'라고 말했다. [[로베스피에르]]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펠레가 따로없는 예언이다. 단두대에서 마지막 유언은 > "내 머리를 나중에 민중에게 잘 보여 줘라 > 이 만한 머리는 좀처럼 없다" 그가 단두대에 올라갔을때 나이가 겨우 34살이기도하다. 여담으로 본 항목은 [[장미에 숨겨진 베리테|특정 게임]]의 항목이 만들어진 계기로(...) 생성되었다. 프랑스 혁명 우두머리인데 안습하기가 따로없다... 당통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여러번 영화화되었는데, [[안제이 바이다]]가 감독한 1982년판[* Danton, 프랑스와 폴란드의 합작영화로 [[제라르 드파르디유]]가 당통 역을 맡았다. 자세한건 [[안제이 바이다]] 항목 참조]이 가장 유명하다. 조르주 당통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