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monthly.chosun.com/upload/1104/1104_440.jpg 車相瓚 1887∼1946. [목차] == 개요 == 일제시대의 언론인. 시인이자 수필가로도 활동했다.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기간을 대표하는 전문 잡지인으로서, 한국 잡지언론의 개척자로도 불린다. 호는 청오(靑吾). == 생애 == 1887년 [[강원도]] [[춘천시]] 송암동 자라우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고등학교|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3년에는 [[보성전문학교]] [[고려대학교/학부/법과대학|법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보전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20년 대학동창 [[김기전]]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개벽'은 창간호부터 일제의 지독한 검열로 만신창이가 됐는데, 표지를 바꾸고 그의 시 '경주회고'를 뭉개버린 후에야 ‘임시호’라는 번호를 달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개벽’에 700여 편의 글을 써냈는데, 한시와 수필 등이 많았다. 한시는 주로 '경주회고(慶州懷古)'·'남한산성(南漢山城)'·'관동잡영(關東雜詠)'·'가야회고(伽倻懷古)' 등의 시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역사·유적·명승지에 관한 회고적인 것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역사에 관해서는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후에도,[* 1926년 8월. 일본인 형사들이 개벽사(開闢社)로 들이닥쳤다. 일본 경찰은 인쇄된 잡지를 모두 수거해 수레에 싣고 종로경찰서 뒷마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작두로 잡지를 썰어서 폐지로 내다버렸다. '개벽'지의 슬픈 종말이었다.] '별건곤(別乾坤)'·'신여성(新女性)'·'농민(農民)'·'학생(學生)'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2010년 11월 1일 ‘제45회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정부에게서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 저서 == *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 '해동염사(海東艶史)' (한성도서주식회사, 1931) *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명성사, 1947) *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제4권 (서정출판사, 1971) [[분류:일제강점기의 인물]] 차상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