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相瓚
1887∼1946.
1 개요
일제시대의 언론인. 시인이자 수필가로도 활동했다.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기간을 대표하는 전문 잡지인으로서, 한국 잡지언론의 개척자로도 불린다. 호는 청오(靑吾).
2 생애
1887년 강원도 춘천시 송암동 자라우마을에서 태어났다. 서울 보성중학교를 졸업한 뒤, 1913년에는 보성전문학교 법과를 졸업하고, 모교인 보전 법과 강사로 재직했다.
1920년 대학동창 김기전과 함께 민족지 '개벽'을 창간했다. '개벽'은 창간호부터 일제의 지독한 검열로 만신창이가 됐는데, 표지를 바꾸고 그의 시 '경주회고'를 뭉개버린 후에야 ‘임시호’라는 번호를 달고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그 후 ‘개벽’에 700여 편의 글을 써냈는데, 한시와 수필 등이 많았다.
한시는 주로 '경주회고(慶州懷古)'·'남한산성(南漢山城)'·'관동잡영(關東雜詠)'·'가야회고(伽倻懷古)' 등의 시제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의 역사·유적·명승지에 관한 회고적인 것이 근간을 이루고 있다. 역사에 관해서는 야사(野史)를 바탕으로 한 야담·사화적(史話的)인 저술을 주로 하였다.
1926년 '개벽'이 폐간된 후에도,[1] '별건곤(別乾坤)'·'신여성(新女性)'·'농민(農民)'·'학생(學生)' 등 10여 종의 잡지를 발행했다.
2010년 11월 1일 ‘제45회 잡지의 날 기념식’에서 대한민국 정부에게서 은관문화훈장을 추서(追敍) 받았다.
3 저서
- '조선4천년비사(朝鮮四千年秘史)'
- '해동염사(海東艶史)' (한성도서주식회사, 1931)
- '조선사외사(朝鮮史外史)' (명성사, 1947)
- '한국야담사화전집(韓國野談史話全集)' 제4권 (서정출판사, 1971)
- ↑ 1926년 8월. 일본인 형사들이 개벽사(開闢社)로 들이닥쳤다. 일본 경찰은 인쇄된 잡지를 모두 수거해 수레에 싣고 종로경찰서 뒷마당으로 갔다. 그곳에서 작두로 잡지를 썰어서 폐지로 내다버렸다. '개벽'지의 슬픈 종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