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tablealign=center><:> '''[[초나라|역대 초나라 군주]]''' || ||<:> 18대 [br] 초무왕(楚武王) 웅통(熊通), 웅달(熊達)[* [[초성왕]]처럼 이름이 2개가 전해진다.] ||<:> → ||<:> 19대 [br] '''초문왕(楚文王)''' 웅자(熊貲) ||<:> → ||<:> 20대 장오 웅간(熊囏)) || || '''[[성씨|성]]''' |||| 미(羋) || || '''[[본관|씨]]''' |||| 웅(熊) || || '''[[휘#s-1|휘]]''' |||| 자(貲) || || '''아버지''' |||| 초무왕 웅통(熊通), 웅달(熊達) || || '''생몰기간''' || 음력 || ? ~ 기원전 675년 || || '''재위기간''' || 음력 ||기원전 690년 ~ 기원전 675년 || [목차] == 개요 == 초무왕의 아들이며, 장오의 아버지이자 [[초성왕]]의 아버지. 초무왕이 죽은 뒤 왕위를 이어 [[식#s-3|식나라]], 등나라,[* 등나라는 초왕의 장인 국가다.], [[신나라#s-1|신나라]] [[기나라#s-1|기나라]], [[채나라]] 등을 쳐서 초나라의 강역을 넓혀 초나라를 [[양쯔강|장강]] 일대의 패권국이 되는 기반을 만들었다. == 치세 == 초무왕의 뒤를 이은 초문왕은 즉위 초창기에 수도를 단양에서 영 땅으로 옮겼다.[* 영은 수도이기 때문에 영도라고 불렸는데, 이곳이 삼국지의 [[형주|강릉]]성이다.] 초문왕 6년인 [[기원전]] 684년 초가 채를 쳐서 [[채나라]]를 신땅[* 이 신땅은 탕이 이윤을 발견했다는 그 신(莘)과 한자가 같다.]에서 이겨 채애후를 포로로 잡았다. 그런데 오래지 않아 석방했는데, 채애후는 식후의 마누라이자 [[진(춘추전국시대)|진]](陳)의 군주의 딸인 식규가 천하 제일의 [[미녀]]라고 소개했다. 그래서 초문왕은 식규를 ~~[[네토라레|NTR]]~~ 차지할 계획을 짰다. 그래서 초문왕은 식나라를 방문했는데, 식후가 그를 접대하며 환대했으나 식나라를 멸해 식규를 차지했다.[* 식후가 초문왕을 환대한 이유는 바로 초나라를 이용해 채나라를 견제하기 위함이었다.] 식후는 그 일로 충격을 받아 병을 얻어 죽었다. 식규는 장오, [[초성왕]] 두 아들을 남겼다. 초문왕 10년인 기원전 680년 [[가을]] 7월 초나라 병력이 채로 쳐들어갔다. 초문왕 12년인 기원전 678년 등나라를 멸했다. 초문왕 15년인 기원전 675년 병사를 거느리고 [[파#s-5|파나라]]를 침공했으나 대패했다. 결국 영도로 귀환했는데, 육권(鬻拳)[* 사람의 이름에 쓰일 때 鬻은 죽이 아닌 육으로 읽는다.]이 그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육권이 초문왕에게 말했다. >"[[황#s-1|황나라]]를 치고 오십시오." 결국 초문왕은 황나라를 쳐서 끝내는 황나라를 제압했으나 회군 중에 병을 얻어 그 해 6월에 죽었다. 육권은 자결하여 [[순장]]되었다.[* 이 일을 두고 초나라를 까는 사람들은 초나라를 까는 레퍼토리로 쓴다. 참고로 육권은 이거 말고도 간언을 했음에도 초문왕이 듣지 않자 [[검]]을 들고 초문왕을 위협했고 그 벌이라면서 자신의 발을 잘랐다. 순장이라는 풍습이 막장스럽기는 하지만, 육권은 나름대로 자신을 벌하는 의미에서 자결하고 순장된 것이다.] == [[화씨지벽]]의 일화 == 초나라의 형산[* 이 형산에서 형주라는 지명이 나왔다.]에서 변화라는 사람이 옥의 원석을 세차례 초왕에게 바쳤으나 초여왕과 초무왕은 그 말을 믿지 않고 그에게 월형에 처했다. 변화는 서러웠는지 눈물을 흘리며 울자 사람들이 그 까닭을 물으니 보배로운 옥의 원석을 가져왔는데, 알아보지 못하는게 원통해서 운다고 했다. 초문왕은 그 이야기를 듣고 그 원석을 다듬게 하니 보배로운 옥이 나왔고, 그것은 변화의 이름을 따서 화씨지벽이 되었다고 한다. 단 리동혁의 본삼국지에 의하면 이 이야기는 [[정사#s-1|정사]]가 아닌 [[야사(역사)|야사]]에서 떠도는 내용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 화씨지벽은 열국지에서는 훗날 [[전국시대(중국)|전국시대]] 초나라 재상이 가지고 있었다고 하며, 그것이 없어지자 [[장의]]가 훔친 걸로 의심해 매질을 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 화씨지벽이 조혜문왕에게 갔는데, 이 자세한 이야기는 [[인상여]], [[화씨지벽]] 항목 참조. == 후일담 == 초문왕이 죽은 뒤 식규의 소생인 장오가 즉위했으나 그는 초성왕에게 죽임을 당했다. 초성왕은 국력을 키워 송나라를 제압하는 등 나름대로 패권을 행사했으나 진문공을 이기지는 못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손자#s-1|손자]]인 초목왕, 증손자인 [[초장왕]] 대에 이르러서는 [[춘추오패]]가 된다. [[분류:춘추전국시대/군주]] 초문왕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