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문서 : [[친노]] [목차] == 개관 == 친노라 불리우는 정치세력을 정의하기 위해서는 역사적 접근이 필요할수밖에 없다. [[참여정부]]의 운명과 함께한 정치계파로, 한때는 [[열린우리당]]을 창당해 의회 과반까지 차지했었던 거대 정치세력이지만, 워낙 다사다난했던 [[참여정부]]와 그 이후의 정치적 격변에 의해 '''한때 친노 소속이었던 [[계파]]가 비노로 떨어져나가거나 한때 비노였던 인물이 친노로 편입해오는''' 등의 사건이 '''너무나 자주''' 일어났기 때문이다. == 순서 == === [[민주당(1990년)|꼬마]][[통합민주당(1995년)|민주당]] === 일반적으로 친노는 2002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당선시킨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형성된 계파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 계파의 탄생이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으며, 친노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계파, 혹은 정당이 오래 전부터 존재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꼬마민주당이다. 이에는 1차, 2차 꼬마민주당 모두가 포함된다. 이는 [[3당 합당]]의 영향으로, 야권 전체가 호남이라는 안정적인 지지기반을 가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이끄는 [[동교동계]]가 주도하고 있었으며, 따라서 [[동교동계]]를 제외한 정치세력들은 야권 내부에서도 비주류에 속할수밖에 없었고, 그것을 대표하는 정당이 꼬마민주당이기 때문. 1차 [[민주당(1990년)|꼬마민주당]]은 [[3당 합당]]에 반대해 [[김영삼]]의 [[상도동계]]에서 이탈한 정치인들의 정당이고, 2차 [[통합민주당(1995년)|꼬마민주당]]은 [[김대중]]의 정계은퇴 번복과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발해 민주당에 잔류한 인사들이 꾸려간 정당이니 이럴 수밖에 없다. 1차, 2차 꼬마민주당에 모두 참여하며 자신의 정치적 색체를 드러낸 인물이 바로 [[노무현]]이며, 그렇기 때문에 친노의 형성과정에서는 1차, 2차를 불문하고 꼬마민주당에 참여한 경력이 있었던 정치인들의 영향력이 막대했다. [[노무현]] 본인을 포함해 [[김정길(1945)|김정길]], [[이부영]], [[이철]], [[김부겸]], [[조경태]], [[이광재]], [[안희정]] 등이 현재도 [[친노]]이거나 한때 [[친노]]였던 꼬마민주당 출신의 인사들이다. 물론 당시의 정치적 위상과 현재의 정치적 위상은 다들 재각각이지만.[* 대표적으로 김정길은 무려 [[제10대 국회의원 선거]]부터 출마했으며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한국당]] 소속으로 출마하여 여당 [[민주정의당]] 후보를 3등으로 밀어버리는 괴력을 보일 정도의 중진으로 [[노무현]]보다도 정치적 위상이 더했고, [[이광재]]나 [[안희정]], [[조경태]] 등은 [[노무현]] 개인의 비서관이나 선거운동원 정도의 위치였다.] === [[제16대 대통령 선거]] === [[제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른바 노풍을 앞세운 [[노무현]]이 [[새천년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며 대통령 후보가 되었지만, 이에 대한 반발은 막심했다. 당시 여당 주류 [[동교동계]]는 이에 소속된 [[한화갑]], 최소한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위력을 발휘한 [[이인제]]를 고려하고 있었지 [[노무현]]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노무현은 고졸 출신이었으므로 [[동교동계]] 다음가는 영향력이 있던 386으로 대표되는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과도 거리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노무현이 후보 재신임을 건 [[제3회 지방선거]]에서 패배하고, [[2002년 월드컵]]의 영향으로 [[정몽준]]이 돌풍을 일으키자 대통령후보단일화추진협의회가 출범된다, 통칭 후단협이라고 불리는 이 단체는 [[노무현]] 대신 [[정몽준]]을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영입하자는 입장을 취했다. 이 시점에서, [[노무현]]을 지지한 것은 노무현의 측근들과 꼬마민주당출신 영남 세력, [[김근태]]로 대표되는 386 [[운동권]]출신 정치인 계파, 정풍운동을 주도한 [[정동영]]과 [[천정배]]가 이끄는 개혁파들이었으며, 이들은 친노로 지칭되게 되었다. 이렇게 친노는 탄생되게 되었으며, 결국 [[노무현]]이 당선되고 [[참여정부]]가 출범하게 되자 [[새천년민주당]]내 비주류였던 이들은 일약 주류로 급부상하게 된다. === 열린우리당의 창당과 탄핵역풍 === [[제16대 대통령 선거]]의 승리 이후, 신주류가 된 친노, 곧 [[노무현]]의 측근 및 영남 출신 세력과 [[천정배]]-[[신기남]]-[[정동영]](천신정)을 중심으로 하는 호남 신주류들은 [[새천년민주당]]의 쇄신 및 재창당을 주장하기 시작했다. 적당히 부패한 이미지에 호남색이 강해보이는 낡은 민주당으로선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기 어렵다는 것이 명분이었다. 물론 [[새천년민주당]] 역시 김대중 대통령이 [[새정치국민회의]]의 외연확대와 전국정당화를 위해서 2000년 재창당했던 정당이었지만, 대선 때의 혼란과 "실용주의" 노선으로 보수야당인 [[한나라당]]과의 구분점이 희미해진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이들은 [[열린우리당]]을 창당하며, 이 시점에서 친노는 [[열린우리당]] 소속 정치인과 같은 뜻으로 사용되었다. 한편 구주류가 된 [[동교동계]]와 집권 신주류 친노와의 갈등은 이미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걸치며 심각할 정도로 악화된 상태였다. 이는 [[불법 대북송금 사건]]에서 [[노무현]]이 [[한나라당]]이 요구한 [[특검]]을 받아들이는데서 일촉측발의 상황까지 몰린다. 특검에 의해 [[동교동계]]의 중진 [[박지원(1942)|박지원]] 비서실장이 징역형에 처해지기까지 하자, [[동교동계]]는 신당 창당에 참여를 거부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의해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당시에서는 친노로 불리던 [[조순형]], [[추미애]]등은 [[새천년민주당]]에 잔류했으며, 도리어 대선 때 노무현에게 반기를 들었던 [[김명섭]], [[송석찬]], [[설송웅]] 의원 등이 신당 참여를 선언하는 등 다소 애매한 경우도 있었고, [[한나라당]]에서 당의 보수성에 반기를 들고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한 이른바 [[독수리 오형제]]들[* 꼬마민주당 출신이 대부분인 [[김부겸]], [[김영춘]], [[이부영]], [[이우재(1936)|이우재]], [[안영근]] 등 5명의 의원들을 말한다. "독수리 5형제"라는 별명은 좋지 않게 말하자면 [[철새]]지만, 정치성향적으로 따지면 국가보안법 폐지를 주장하는 등 기존의 한나라당과 줄곳 충돌하는 의원들이었다는 점을 가리킨다.]과 [[개혁국민정당]]을 이끌고 온 [[유시민]]이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친노의 첫번째 재편이 이뤄진 셈. 한편 친노, 곧 [[열린우리당]]과 [[동교동계]], 곧 [[새천년민주당]]의 갈등은 더욱 극심해져, 그 결과 '''[[노무현 탄핵 사태]]'''로 이어지게 된다. [[새천년민주당]]은 [[노무현 탄핵 사태]]를 사실상 주도했으며 [[이낙연]] 의원을 제외한 모든 [[새천년민주당]] 소속 의원들은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고, 이후 당시 [[새천년민주당]]에 소속되었던 인사들과 [[친노]]는 불구대천의 원수나 다름없게 된다. 하지만 탄핵 역풍으로 인해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열린우리당]]은 과반을 넘는 압승을 거둔 반면 [[새천년민주당]]은 의석을 거의 모두 상실하며 [[민주노동당]]에도 밀리는 원내 4당으로 전락하였고, [[동교동계]]는 재기불능의 타격을 입는다. 따라서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직후 시점에서는 이후에 민주당계 정당에 소속되어 활동한 정치인은 거의 다 친노였었다고 할 수 있으며, 이는 현재까지도 친노의 정의가 고무줄처럼 바뀌며 '''야권 인사 누구나 친노'''로 거론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 열린우리당의 내홍과 친노의 분열 === 하지만 [[열린우리당]]은 곧 심각한 내홍에 휩싸이며, 이 과정에서 친노로 싸잡아 불리던 열린우리당의 정치적 계파는 수없이 분화된다. 그리고 그 중 상당수는 친노 세력을 이탈했고, 이러한 다양한 계파들의 이탈을 통해 친노의 두 번째 재편이 이뤄지게 된다. [[정동영]]이 이끄는 정동영계, [[김근태]]가 이끄는 386계/김근태계, [[김한길]]계, 안정적 개혁을 위한 의원 모임(안개모) 등이 비노로 이탈했으며, [[이부영]], [[김부겸]] 등의 '독수리 오형제'들 역시 이 시점에 비노로 이탈한 인사들로 취급된다. 현재 친노로 분류되는 중진들은 대개 이 시점까지도 친노로 고수한 이들이다.[* 하지만 중진이 아닌 인사들의 경우 [[그런거 없다]]. 대표적으로 이 시절 비노의 수장 격이던 [[정동영]]계의 행동대장이었던 [[정청래]]는 현재는 친노로 분류된다.] 대표적으로 [[이해찬]]과 [[문희상]]은 무려 [[평화민주당]](!) 출신임에도 이 시점에 친노를 고수했기에 친노로 분류되며, [[새정치국민회의]] 출신 [[정세균]]도 마찬가지이다. [[한명숙]]도 마찬가지, [[유시민]]이 이끌던 [[개혁국민정당]] 출신 세력, 곧 오늘날의 [[참여계]] 역시 이 시점에 친노를 자처했다는 점 때문에 [[정의당]]의 계파인 2016년경 현재까지도 친노로 분류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참여정부]]의 [[청와대]]의 [[대통령비서실]] 출신 인사들이 이 시점부터의 친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데, 대통령비서실장 [[문재인]], 전직 대통령비서실 국정상황실장 [[이광재]], 노무현 대통령 후보 비서실 정무팀장 [[안희정]][* 대선자금 문제로 징역을 살아 [[대통령비서실]] 출신은 아니다.]등이 있으며, 그 외에 [[천호선]], [[김용익]], [[박재호]], [[전재수]], [[김경수(정치인)]], [[최인호]] 등이 이에 속한다. 이 시절 친노는 이후 시점에서 보기에 의외지만, 특히 사회경제적 이슈에서 상당히 [[우파]]적인 성향을 보이기도 했다. [[이광재]]가 대표하는 친노 우파가 세를 갖고 있었던 점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참여정부]]의 국정운영기조 자체가 [[사회자유주의]]를 따랐던 측면에서 중도(우파)적인 측면이 강했다. 대표적인게 한미FTA나 제주해군기지 문제. 물론 국가보안법 폐지 시도 등 반대 사례도 많긴 했지만. 여튼 당시 친노 계파에 속했던 인물 중 가장 개혁적 색채가 강했던 [[유시민]]조차도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에서 가장 개혁적인 축에 속하던 [[김근태]][* 노무현 대통령이 시장원리에 배치된다며 결국 반대한 분양원가제공개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했던 인물이기도 하다.]계와 [[천정배]]계와 계속해서 충돌했으며, [[민주노동당]]은 일명 '좌측 깜빡이 켜고 우회전한다'고 참여정부를 통렬히 비판하던 시기였다.[* [[노유진의 정치까페]]에서 함께 활동하는 [[진중권]]과는 당시 시도때도 없이 [[키배]]로 대혈투를 벌이던 관계였다.(...)] 때문에 훗날 [[통합진보당]] 창당 과정에서 유시민의 [[국민참여당]] 참여에 대한 진보세력의 거부반응이 나타나기도 했고, 현재도 [[정의당]]을 [[노동당(한국)]] 등의 군소진보정당들이 꺼리는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하다. === 참여정부의 종언과 폐족 === 참여정부의 종언에 이르러 친노는 완벽하게 몰락한다. 그 자신이 친노 유력 인사였던 [[안희정]]이 친노를 일컬어 폐족이라고 지칭한 것이 이를 대표하는 일이다.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으로 바뀌던 정계개편, [[제17대 대통령 선거]]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을 걸치며 친노는 막심한 타격을 입는다. 이 시기 [[손학규]]의 입당으로 손학규계라는 거대 비노 계파가 다시 등장했으며, 가장 강경한 비노라고 할 수 있는 [[새천년민주당]] 출신 인사들이 복권되었다. 친노의 경우 당연히 [[제17대 대통령 선거]]에 대권주자를 내보내지 못했고,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당시 5선의 [[이해찬]]을 위시한 많은 수의 친노 인사들이 불출마하거나 공천에서 배제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의 영향으로 다수의 친노인사들이 정계에서 활동하고 있었고, 이 시기 [[대통합민주신당]]과 [[통합민주당]], [[민주당(2008년)]]에 모두 참여하며 원내에 남은 친노인사들의 수장이 된 것이 [[정세균]]이며, 여기서 범친노 최대계파로 손꼽히는 정세균계가 탄생한다. 정세균은 민주당 당 대표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며 정세균계의 세력을 유지했고,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망 이후 친노에 대한 동정론이 퍼지면서 범 친노 세력은 [[유시민]]이 [[국민참여당]]을 창당하는 등 재기를 준비하게 된다. 그리고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를 [[정세균]]이 이끄는 민주당이 무상급식 이슈와 [[한명숙]], [[이광재]], [[안희정]] 등의 친노인사들을 전면에 내세워 승리하면서 다시 부활하게 된다. === 친노의 부활 === 2010년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친노에게 있어 많은 의미를 갖는 선거이다. 이 선거를 통해 친노는 부활에 성공했으며, 민주당내 제일세력으로 자리매김한 [[정세균]]계의 협조를 통해 [[민주통합당]]에서 전면적으로 복귀한다. 또한 무상급식을 이슈로한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의 성공을 계기로 친노는 사회경제적인 면에서 진보적인 성향으로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다. 이후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대부분의 주류 친노 인사들은 [[노무현]]의 최측근이었던 노무현재단 이사장 [[문재인]]을 노무현의 사실상 후계자로 간주하였으며, 문재인은 이를 통해 친노계를 대표하는 대권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이에 반발한 [[김두관]], [[조경태]] 등이 비노계로 빠져나가게 되었다. 반면 [[국민참여당]]을 이끌던 [[유시민]]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 경기도지사 선거에서의 패배를 계기로 사실상 정계에서 은퇴하면서 친노계의 주류와 궤도를 달리하고 진보정당 운동과 힘을 합치게 된다. 유시민의 은퇴는 국민참여당이 [[통합진보당]] 출범에 참여한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참여계]]는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건]]을 통해 통합진보당이 찢어지고 나온 [[정의당]]에 속하게 된다. --길고 긴 역사 이야기-- [[분류:계파]] [include(틀:문서 가져옴,title=친노, version=872)]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문서 가져옴 (원본 보기) 친노/역사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