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3/33/Christian_IX_af_Henrik_Olrik.jpg 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 - '''크리스티안 9세''' - [[프레데리크 8세]] 생애 : [[1818년]] [[4월 8일]] ~ [[1906년]] [[1월 29일]] 재위기간 : [[1863년]] ~ [[1906년]] [[1월 29일]] [목차] == 개요 == 크리스티안 9세는 [[덴마크]]의 글뤽스부르크 왕가 최초의 국왕이다. == 놀라운 가족관계 == * [[프레데리크 8세]]([[1843년]] [[6월 3일]] ~ [[1912년]] [[5월 14일]]) - 덴마크 국왕 * 알렉산드라([[1844년]] [[12월 1일]] ~ [[1925년]] [[11월 20일]]) - 영국 왕비 * 요르요스 1세([[1845년]] [[12월 24일]] ~ [[1913년]] [[3월 18일]]) - 그리스 국왕 * 다그마르([[1847년]] [[11월 26일]] ~ [[1928년]] [[10월 13일]]) - 러시아 황후 * 튀라([[1853년]] [[9월 29일]] ~ [[1933년]] [[2월 26일]]) - 하노버 황태자비[* 그녀의 남편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아버지 게오르크 5세의 재위 기간 중 하노버가 멸망하는 바람에 즉위하지 못하였다. ] * 발데마르([[1858년]] [[10월 27일]] ~ [[1939년]] [[1월 14일]])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a/a3/Christian_IX_of_Denmark_with_family_%28Tuxen%29.jpg 그림 중앙에 크리스티안 9세와 루이제 왕후가 있고, 왼쪽에 장녀 알렉산드라와 그 남편 [[에드워드 7세]], --[[앨버트 왕자]]--[* 물론 그림 속에 그려져 있긴 하지만 동생 [[조지 5세]]에 의해 영국에서 흑역사 취급받기 때문에 취소선 처리. ], 오른쪽에 차녀 다그마르와 그 남편 [[알렉산드르 3세]]가 있다. 그 밖에 인물들은 추가바람. 사돈이자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처럼 자녀들이 유럽 주요국의 왕(2명) 또는 왕비(2명) --그리고 될 뻔한 1명--가 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할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항목이 생긴 이유도 근본적으로 이것 때문. == 생애 == === 즉위 배경 === [[1818년]] [[독일]] [[슐레스비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글뤽스부르크 공은 별 볼일 없는 왕족이었으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3세]]의 8대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헤센카셀의 루이제 카롤리네 역시 별 볼일 없는 왕족이었으나 [[프레데리크 5세]]의 외손녀였다. 이러한 바탕을 등에 업고 크리스티안은 자녀가 없던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7세]]의 추정상속인 및 후계자가 되었고, [[1863년]] [[프레데리크 7세]]가 죽자 즉위하였다. === 즉위 기간 === 선왕 [[프레데리크 7세]]가 덴마크의 입헌군주제를 허락한다고 선언했으나 실효기간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하였으므로, 의회 통치의 시작은 단연 크리스티안 9세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안 9세는 노골적으로 우익 정당을 지지했고, 그로 인해 의회가 흔들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게 개패듯이 털리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1906년]] [[1월 29일]] 사망했다. 크리스티안 9세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