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티안 9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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덴마크 국왕
프레데리크 7세 - 크리스티안 9세 - 프레데리크 8세

생애 : 1818년 4월 8일 ~ 1906년 1월 29일
재위기간 : 1863년 ~ 1906년 1월 29일

1 개요

크리스티안 9세는 덴마크의 글뤽스부르크 왕가 최초의 국왕이다.

2 놀라운 가족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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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중앙에 크리스티안 9세와 루이제 왕후가 있고, 왼쪽에 장녀 알렉산드라와 그 남편 에드워드 7세, 앨버트 왕자[2], 오른쪽에 차녀 다그마르와 그 남편 알렉산드르 3세가 있다. 그 밖에 인물들은 추가바람.

사돈이자 영국의 여왕 빅토리아처럼 자녀들이 유럽 주요국의 왕(2명) 또는 왕비(2명) 그리고 될 뻔한 1명가 되었기 때문에 유럽의 할아버지라고 불린다. 이 항목이 생긴 이유도 근본적으로 이것 때문.

3 생애

3.1 즉위 배경

1818년 독일 슐레스비히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글뤽스부르크 공은 별 볼일 없는 왕족이었으나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3세의 8대손이었다. 그리고 어머니 헤센카셀의 루이제 카롤리네 역시 별 볼일 없는 왕족이었으나 프레데리크 5세의 외손녀였다. 이러한 바탕을 등에 업고 크리스티안은 자녀가 없던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7세의 추정상속인 및 후계자가 되었고, 1863년 프레데리크 7세가 죽자 즉위하였다.

3.2 즉위 기간

선왕 프레데리크 7세가 덴마크의 입헌군주제를 허락한다고 선언했으나 실효기간이 이루어지기 전에 사망하였으므로, 의회 통치의 시작은 단연 크리스티안 9세 시대에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크리스티안 9세는 노골적으로 우익 정당을 지지했고, 그로 인해 의회가 흔들렸다. 거기에 설상가상으로 슐레스비히 전쟁으로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에게 개패듯이 털리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1906년 1월 29일 사망했다.
  1. 그녀의 남편인 에른스트 아우구스트는 아버지 게오르크 5세의 재위 기간 중 하노버가 멸망하는 바람에 즉위하지 못하였다.
  2. 물론 그림 속에 그려져 있긴 하지만 동생 조지 5세에 의해 영국에서 흑역사 취급받기 때문에 취소선 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