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라틴어]]: Patricius [[게일어]]: Pádraig [[영어]]: Saint Patrick https://moviewriternyu.files.wordpress.com/2015/03/st-pat-snake.jpg?width=300 [[아일랜드 공화국|아일랜드]]에 [[가톨릭]]을 전파한 성인, [[주교]]. 영어로는 [[패트릭]]이 된다. 그가 아일랜드에서 사목활동을 시작하면서 개종자가 잇따랐고 국민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가 됐다. 389년경 [[로마 제국]]의 브리타니아(현재의 [[영국]]) 속주에서 지방의회 의원이었던 귀족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태어난 파트리치오는 10대 때 [[해적]]에게 납치돼 아일랜드에서 6년간 [[노예]]생활을 하게 된다. 그는 노예생활 동안 현지인들의 말을 배웠고 이는 훗날 아일랜드에서 선교할 때 큰 도움이 됐다. 그는 노예로 지내면서도 신앙생활을 게을리 하지 않았으며, [[사제]]가 돼 아일랜드에 복음을 전파하기로 마음 먹는다. 파트리치오는 어느 날 꿈 속에서 해안가로 가면 잉글랜드로 가는 배가 있으니 그 배를 타고 아일랜드를 탈출하라는 하느님 음성을 듣는다. 이튿날 성인은 [[야훼|하느님]]의 말씀대로 아일랜드 탈출에 성공한다. 그는 탈출에 성공한 뒤 또 꿈을 꾸었는데 이번에는 아일랜드 백성들이 나타나 아일랜드로 돌아와 아일랜드 국민을 위해 하느님께 빌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 꿈을 잊지 않았던 그는 갈리아(현재의 [[프랑스]])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제르마노(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가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으며 4년 동안 머물렀고, 그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교황청]]으로부터 아일랜드 [[선교]] 임무를 맡은 그는 432년경에 성 제르마노 주교로부터 주교품을 받고 아일랜드 선교를 위해 떠나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이후 40년 동안 그가 아일랜드에서 펼친 선교와 관련된 일화는 셀 수 없이 많다. 대표적인 것은 세 잎 [[클로버]]의 비유다. 이교도인들에게 어떻게 하면 [[가톨릭]]의 [[삼위일체론]]을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고심하던 성인은 세 잎 클로버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그는 사람들에게 한 개의 클로버에 세 잎이 붙어있듯 [[야훼|성부]], [[예수|성자]], [[성령]]도 이와 같다고 설명한다. 그의 강론은 이처럼 이해하기 쉽고 재미가 있어 큰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그는 인기에 휩쓸리지 않고 늘 겸손한 자세로 사람들에게 다가갔다. [[아일랜드 공화국]]에서는 성 파트리치오 축일인 3월 17일을 국경일로 정해 성인을 현양하고 있다. 세인트 패트릭 데이(St Patrick's day)로 불리는 이날에 사람들은 가톨릭을 상징하는 초록색 의상을 입고 성인의 세 잎 클로버 비유를 기억하며 세잎클로버 배지를 달고 행진을 벌인다. 아일랜드 뿐만 아니라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영국]], [[캐나다]] 등에서도 3월 17일을 비공식적으로 세인트 패트릭 데이로 정해 기념하고 있다. 아일랜드계라면 종교를 불문하고 특별히 지내는 것을 볼수 있다. 공휴일은 아니지만, 많은 개신교인들이 기념하는 얼마 안되는 축일 중 하나... 물론 파트리치오 성인축일이라는 본래 의미는 잘 모르고, 그저 아일랜드 최대 경축일이라는 것만 안다. 대다수 나라가 부활절이나 성탄절 지내듯 세속화된 형태로 지내며, 그냥 초록색 옷을 입고 지인과 모여 술 마시는 날로 가볍게 여기는 정도. [[분류:성인(기독교)]] 파트리치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