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연관 항목: [[공주]], [[옹주]], [[고명딸]] [목차] == 개요 == [[인조]]의 [[고명딸]]. [[소용 조씨]]로 유명한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의 맏딸로 태어났다 == 일생 == === 축복받은 어린 시절 === [[옹주]]인데도 [[인조]]의 고명딸이자 [[늦둥이]]이기 때문인지, 적통대군인 이복오빠들이나 친동기인 남동생들에 비해 인조의 남다른 총애를 받으며 축복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 적통 공주이기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정명공주]]와 대조적이다.][* [[정명공주]]는 불행한 어린시절과 달리, 인조반정후 80세까지 장수하며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효명옹주]]는 자기중심적이고 행동이 오만방자했다. 궐 안에 잔치가 벌어지자 이복오빠 인평대군의 아내인 복천부부인 오씨와 누가 윗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 오씨는 "작급으로는 내가 옹주보다 아래이나[* 왕의 서녀인 옹주는 무품, 대군의 부인은 정1품 이다.], 적통으로서는 내가 옹주보다 먼저다", 효명옹주는 "부왕이 계시니 내가 먼저다" 라고 주장했다.[* 이때 나이가 11세, 초등학교 4학년정도 였는데, 이런말을 서슴없이 내뱉은것을 보면 성격이 다 드러난다;;;] 두 여자의 말이 모두 맞았기에 누구의 편을 들기도 애매한 상황이었고, 일이 커지다 보니 인조에게도 알려졌다. 이때 인조는 옹주의 편을 들어 딸이 윗자리에 앉도록 했는데, 이 일 이후로 옹주와 인평대군 부부는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옹주의 혼례 때 인평대군은 저주의 뜻이 담긴 베개를 들여보내기도 했다.[* 왕족이라 살아남은거지 왕족만 아니었어도.... 효종대 효명옹주처럼 귀양을 갈 수도 있었다...] 인평대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형.(소현세자)를 죽게만든 원수의 딸인데,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 그러나 민회빈 강씨의 유언에 언급되는 소숙이 인평대군이라고도 해석되는 경우도 있기에 사이가 좋았을 지는 의문이다.] === 화려한 혼인 === 1647년 [[효명옹주]]에 봉해졌다. 같은 해 인조는 옹주의 신랑감을 간택하게 했는데, 귀인 조씨는 딸을 세도가인 [[김자점]]의 손자 김세룡과 혼인시키기 위해 [[김자점]]의 동의 하에 김세룡의 사주팔자를 조작했고 그 결과 김세룡은 옹주의 [[부마]]로 선발되었다.[* [[효명옹주]]의 혼인에 쓰인 옷과 물건이 무척 호화로웠다고 한다.] 옹주는 혼인 후에도 2년간 궁에서 살았으며,[* 공주도 혼인하면 사가로 나가는데...]1649년에야 비로소 출궁하여 사가에서 생활했다. 조 귀인은 [[효명옹주]]의 사가에서 영이라는 예쁜 소녀를 데려다 자신의 큰아들 숭선군의 [[첩]]으로 들였는데, 문제는 숭선군의 정실부인 신씨가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장렬왕후]]) 조씨의 친정조카라는 것. 숭선군의 장인이자 신씨의 친정아버지 신익전이 신흠의 아들이자 신익성의 형으로, 신익성의 아내는 선조의 서녀이자 인조의 고모인 정숙옹주(貞淑翁主)[*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딸.]이다. 신씨가 [[자의대비]]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하자 [[자의대비]]가 영이를 추궁하였으며, 겁에 질린 영이는 "조 귀인이 자의대비와 효종을 저주한다"는 자백을 했다. === 불행한 말년 === [[인조]] 사후 1651년 귀인 조씨가 [[장렬왕후]]와 효종을 저주한 일에 관해 여종들을 추국할 때, [[효명옹주]]가 옷소매 속에다 사람의 뼈가루를 담아서 대궐과 이복오라비인 인평대군의 집에다 뿌리고 흉한 물건을 궁궐 주변에 묻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야샤에는 [[효명옹주]]가 효종이 자신을 멀리하자 남편을 왕으로, 자신은 세자빈이 되려고 했다고 한다. 야사에서 [[효명옹주]]와 남편 김세룡을 국문하라고 요청했으나 효종은 김세룡만 국문하였다. 남편 김세룡, 시조부 김자점이 사형당하자 작위를 박탈당하고 김처[* 김세룡의 처]라 불리게 됐다. 이후 통천으로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인 1652년 통천의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이천으로 옮겨졌다. 1655년에는 효종의 명으로 유배지를 교동으로 옮겨 남동생들인 숭선군, 낙선군과 함께 살게 하였고, 마침내 1658년에 석방하였다. [[효명옹주]]는 평생을 감시속에 살다가 1700년([[숙종(조선)|숙종]] 26년) 64세의 나이로 죽었다.[* 이 역시 적통 공주이기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종친의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으며 조선의 왕녀들 중 가장 장수한 [[정명공주]]와 대조적이다] [[효명옹주]]의 불행한 말년에 대해, 호불호까지는 아니지만, [[악녀]]로서 정당한 죄값과 대가를 치른 건지, 아니면 억울하게 살았는지는 학자들마다 얘기가 다르다. [[분류:조선의 왕족]] 효명옹주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