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명옹주

1 개요

인조고명딸. 소용 조씨로 유명한 인조의 후궁 귀인 조씨의 맏딸로 태어났다

2 일생

2.1 축복받은 어린 시절

옹주인데도 인조의 고명딸이자 늦둥이이기 때문인지, 적통대군인 이복오빠들이나 친동기인 남동생들에 비해 인조의 남다른 총애를 받으며 축복받은 어린 시절을 보냈다.[1][2]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효명옹주는 자기중심적이고 행동이 오만방자했다. 궐 안에 잔치가 벌어지자 이복오빠 인평대군의 아내인 복천부부인 오씨와 누가 윗자리에 앉을 것인가를 두고 다툼을 벌였다. 오씨는 "작급으로는 내가 옹주보다 아래이나[3], 적통으로서는 내가 옹주보다 먼저다", 효명옹주는 "부왕이 계시니 내가 먼저다" 라고 주장했다.[4]

두 여자의 말이 모두 맞았기에 누구의 편을 들기도 애매한 상황이었고, 일이 커지다 보니 인조에게도 알려졌다. 이때 인조는 옹주의 편을 들어 딸이 윗자리에 앉도록 했는데, 이 일 이후로 옹주와 인평대군 부부는 감정의 골이 깊어졌고, 옹주의 혼례 때 인평대군은 저주의 뜻이 담긴 베개를 들여보내기도 했다.[5] 인평대군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형.(소현세자)를 죽게만든 원수의 딸인데, 그러고도 남았을 것이다. [6]

2.2 화려한 혼인

1647년 효명옹주에 봉해졌다. 같은 해 인조는 옹주의 신랑감을 간택하게 했는데, 귀인 조씨는 딸을 세도가인 김자점의 손자 김세룡과 혼인시키기 위해 김자점의 동의 하에 김세룡의 사주팔자를 조작했고 그 결과 김세룡은 옹주의 부마로 선발되었다.[7]

옹주는 혼인 후에도 2년간 궁에서 살았으며,[8]1649년에야 비로소 출궁하여 사가에서 생활했다.

조 귀인은 효명옹주의 사가에서 영이라는 예쁜 소녀를 데려다 자신의 큰아들 숭선군의 으로 들였는데, 문제는 숭선군의 정실부인 신씨가 인조의 계비인 자의대비(=장렬왕후) 조씨의 친정조카라는 것. 숭선군의 장인이자 신씨의 친정아버지 신익전이 신흠의 아들이자 신익성의 형으로, 신익성의 아내는 선조의 서녀이자 인조의 고모인 정숙옹주(貞淑翁主)[9]이다.

신씨가 자의대비에게 울면서 하소연을 하자 자의대비가 영이를 추궁하였으며, 겁에 질린 영이는 "조 귀인이 자의대비와 효종을 저주한다"는 자백을 했다.

2.3 불행한 말년

인조 사후 1651년 귀인 조씨가 장렬왕후와 효종을 저주한 일에 관해 여종들을 추국할 때, 효명옹주가 옷소매 속에다 사람의 뼈가루를 담아서 대궐과 이복오라비인 인평대군의 집에다 뿌리고 흉한 물건을 궁궐 주변에 묻었다는 자백이 나왔다.

야샤에는 효명옹주가 효종이 자신을 멀리하자 남편을 왕으로, 자신은 세자빈이 되려고 했다고 한다.

야사에서 효명옹주와 남편 김세룡을 국문하라고 요청했으나 효종은 김세룡만 국문하였다. 남편 김세룡, 시조부 김자점이 사형당하자 작위를 박탈당하고 김처[10]라 불리게 됐다. 이후 통천으로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인 1652년 통천의 날씨가 춥다는 이유로 이천으로 옮겨졌다.

1655년에는 효종의 명으로 유배지를 교동으로 옮겨 남동생들인 숭선군, 낙선군과 함께 살게 하였고, 마침내 1658년에 석방하였다. 효명옹주는 평생을 감시속에 살다가 1700년(숙종 26년) 64세의 나이로 죽었다.[11]

효명옹주의 불행한 말년에 대해, 호불호까지는 아니지만, 악녀로서 정당한 죄값과 대가를 치른 건지, 아니면 억울하게 살았는지는 학자들마다 얘기가 다르다.
  1. 적통 공주이기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낸 정명공주와 대조적이다.
  2. 정명공주는 불행한 어린시절과 달리, 인조반정후 80세까지 장수하며 행복한 말년을 보냈다.
  3. 왕의 서녀인 옹주는 무품, 대군의 부인은 정1품 이다.
  4. 이때 나이가 11세, 초등학교 4학년정도 였는데, 이런말을 서슴없이 내뱉은것을 보면 성격이 다 드러난다;;;
  5. 왕족이라 살아남은거지 왕족만 아니었어도.... 효종대 효명옹주처럼 귀양을 갈 수도 있었다...
  6. 그러나 민회빈 강씨의 유언에 언급되는 소숙이 인평대군이라고도 해석되는 경우도 있기에 사이가 좋았을 지는 의문이다.
  7. 효명옹주의 혼인에 쓰인 옷과 물건이 무척 호화로웠다고 한다.
  8. 공주도 혼인하면 사가로 나가는데...
  9. 인빈 김씨(仁嬪金氏)의 딸.
  10. 김세룡의 처
  11. 이 역시 적통 공주이기 때문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종친의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으며 조선의 왕녀들 중 가장 장수한 정명공주와 대조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