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회원수정)] * 관련 항목: [[역사 관련 정보]] ||||||||||<tablealign=center><:><#CBB8EE> '''연대구분''' || || [[1950년대]] || {{{+1 ← }}} || 1960년대 || {{{+1 → }}} || [[1970년대]] || ||||||||||<#CBB8EE> '''세기구분''' || || [[19세기]] || {{{+1 ← }}} || [[20세기]] || {{{+1 → }}} || [[21세기]] || ||||||||||<#CBB8EE> '''밀레니엄구분''' || || [[제1천년기]] || {{{+1 ← }}} || [[제2천년기]] || {{{+1 → }}} || [[제3천년기]] || [목차] = 개요 = >> '''전후 경제 발전기''' 서기 [[1960년]] ~ [[1969년]]까지의 연대시기. 일명 전후 '''베이비부머''' 시대를 맞이하게 된 연대이자 경제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 및 성장기의 과정을 거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의 태동연대라고도 불린다.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50대 중반 ~ 40대 후반이다. [* [[1960년]]생이 57세. [[1969년]]생이 48세.] = 정치 경제 및 사회 = == 세계 == ||[youtube(fJaCwp5faTk)]|| ||1960년대, [[프랑스]] [[파리(도시)|파리]]의 모습 || 한국전쟁 이후 잠시 조용하던 [[냉전]]은 다시 격해지기 시작했다. [[1961년]]의 서베를린 위기,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지만 다행히 소련의 양보로 인해 [[핵전쟁]]은 피하게 되었다. 외교상으로 이 때들어서 [[대한민국]]이 [[미국]] 등의 일부 국가를 넘어서 [[6.25 전쟁]]에 참전하였던 자유진영 국가를 비롯해 [[중립]]국가 그리고 범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과 외교관계를 활발히 맺으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인도]]([[네루]]), [[이집트]]([[나세르]]) 등과 함께 [[UN]]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1960년]]은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해로 불린다. [[1967년]]에는 동남아에서 [[ASEAN]]이 성립되었다. 50년대 말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이어서, 60년대는 우주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소양국의 'Moon Race'가 치열했다. 이 문 레이스의 정점은 주지하다시피 [[1969년]] 최고의 이벤트였던 [[아폴로 계획]]에 따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반면 소련은 우주선 착륙조차 하지 못했다. ||[youtube(eTMv2FmSXWg)]|| ||Anti-Vietnam War Movement Documentary || 반면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고, 권위주의,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청년들이 [[68혁명]]과 [[프라하의 봄]]을 정점으로 [[히피]]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에 과 권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Youthquake).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대표적. 또 민권운동이 격렬해지고 [[존 F. 케네디]], [[마틴 루서 킹]] 목사, [[맬컴 엑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는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프라하의 봄]] 진압과 [[리처드 닉슨]]의 당선이 보여주듯이 혁명의 불꽃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는 투쟁과 저항의 시대였다. [[학생운동]]이 이때 정말 치열해서, [[전학공투회의]]의 투쟁이나 [[안보투쟁]]과 같은 좌익 세력의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는 되려 자민당 득표율 감소에도 야당의 다당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일본의 좌파운동세력은 투쟁 방식에 관한 논쟁과 세력 다툼(우치게바)으로 점점 몰락했고, 1970년대에 다다르면 거의 사라지고 만다. 종교적으로는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면서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 한국 == {{{#!HTML <iframe width="560" height="315" src="//www.youtube.com/embed/AcJIvYtDOSU" frameborder="0" allowfullscreen></iframe> }}} 당시 영화인 '[[수학여행]] 1969' 에서 반영된 [[1968년]]경의 서울 모습.[* 영화 내용은 단순하다. 전라도 시골마을의 학생들이 힘겹게 돈을 모아서 서울구경을 하고 돌아온다는 내용. [[구봉서]]가 출연하기도 한 영화다. 제목은 1969지만 촬영시기를 감안하면 1968년에 가깝다. 당시 [[주한미군]] 복무중이였던 닐 미샬로프가 [[안양시|안양]]과 서울의 풍경을 촬영한 시기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이 연대 초부터 [[이승만]] 집권 말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이 일어났다. [[제2공화국]]과 [[장면]] 내각(대통령 [[윤보선]])하에서 잠시 민주적 신장이 일어났으나 혼란속에 1년만인 [[1961년]] [[5.16]] 그리고 [[박정희]] 집권기([[1963년]] 부터)로 박정희 정부가 성립하였다. 정통성과 민주적 기반이 부족했던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를 내세웠다. 이로인해 [[장면]] 내각 시절 세워졌던 제1차, 제2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되었다. 1차 계획은 장면 정부의 계획을 대부분 차용해 경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을 꾀했으나 2차 계획부터는 중공업 투자와 [[수출]] 산업 투자에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쟀든 이 두차례의 경제발전 계획과 그로인한 경제성장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1967년]] 대선과 총선[* 다만 총선에서 금품을 이용하는 등 노골적으로 부정 선거운동을 벌여 덕분에 일부의원을 제명하는등 비 민주적인 문제가 심각했다.]에서도 상당한 표 격차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 부정한 선거운동으로 인해 전국적인 반발이 일어났으며, 그로인해 동백림 사건이 일어났으며 큰 민주주의적 후퇴가 일어났다.교통부문에서는 [[1968년]] 부터 2년간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하지만 패스트 푸드 분야에서는 여전히 발전이 더뎠다. 이 때문에 정부를 중심으로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이 때부터 한국에서 [[혼식]]이나 [[라면]]([[분식]]) 식사문화가 장려(라고 쓰고 읽기는 강제)되었다. 또한 쌀을 갉아먹는 쥐떼들 때문에 '''[[쥐]]를 잡자''', '''쥐잡기 운동'''이 민간 곳곳에서 성행하기도 하였다. 패스트 푸드 분야는 1970년대가 되서야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1955년]]을 시작으로 1960년대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났다.[* 통계적으로 대한민국의 베이비붐 세대는 1955년생~1963년생으로 잡고 있다.(더 길게 잡자면 1974년 생까지도 베이비붐 세대로 잡기도 한다.)] 이른바 '''"[[386]]" 세대'''. 이 때문에 지금과는 반대로 [[산아제한정책]]이 실행되었다. "'''[[콩나물]]''' 교실"도 부족해 오전, 오후반의 2교대 수업을 한 것도 흔한 일이었다. [[일제]] 말기와 해방을 겪게되었다는 [[1940년대]] 출신들이 이 연대에 들어서 '''해방세대 첫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였는데 구한말과 [[경술국치]]를 겪었던 당시 30대 이상 세대였던 1900년대 ~ 1930년대 세대들이 망국의 통한을 비롯해서 [[일제]]의 간악무도한 만행 등을 눈과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일제의 만행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거나 해방을 맞이하였던 세대들이었으니만큼 이들에 대한 기대가 꽤 컸었던 편이었고 또한 해방 후의 조국의 미래를 짊어져야하는 과제를 안기도 하였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대일 외교굴욕에 맞섰던 [[6.3 항쟁]]을 통해서 [[반일감정]]을 뿌리깊게 이어나가는 세대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났다는 1950년대생들이 10대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전쟁을 겪게 되었고 피난까지도 갔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그 당시 정서로 따지자면 기대 이상이었던 편. = 경제 = 한국에서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해당 문서와 [[한강의 기적]] 참고. 이시기의 한국이 로스토우의 도약기, 루이스전환점에 해당했다는 것이 통론이다. = 문화 = == 음악 == 50년대 유행하던 [[로큰롤]]이 더욱 발전하여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비틀즈]]를 통해 여러 장르로 세분화되었고,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음악의 한 줄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비틀즈]]는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로 자리잡아 있다. '영국의 침공'이라 불리우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되어 [[영국]] 밴드들이 대거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비틀즈는 물론, [[롤링 스톤즈]]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더 후]]나 [[킹크스]], [[크림]]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인기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수준도 뛰어나서 다수의 [[명반]]들이 60년대에 발표되게 된다. 미국의 경우 영국 밴드들 외에도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포크]] 음악이 인기를 끌었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서던 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다. 60년대 초반 한정으로 [[비치 보이스]]를 위시한 여러 밴드들이 [[서프]] 뮤직을 유행시켰으나,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서프 열풍은 한풀 꺾이고, 비치 보이스는 [[Pet Sounds]]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게 된다.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히피]] 문화가 성행했다. 히피족들의 지지에 더불어 [[우드스톡 페스티벌]] 같은 음악 축제들도 크게 성공하게 된다. == 미술 ==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다. == 게임 == '스페이스워!' 라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이 1961년에 개발된 후로,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확대된다. 물론, 본격적으로 게임기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고, 현재 게임의 대략적인 형태가 잡힌 것인 1980년대다. == 애니메이션 == [[1963년]] TV에서 [[철완 아톰]]의 첫 방영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문화 장르로 탄생했다. = 1960년대생 = [[1960년]]부터 [[196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흔히 [[486세대]]라고 불린다. --586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이들은 흔히 꿀을 많이 빤 세대라는 말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6,70년대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고 80년대는 철권통치로 점철된 시기였다. = 1960년대에 들어가는 해 = [[1960년]] - [[1961년]] - [[1962년]] - [[1963년]] - [[1964년]] - [[1965년]] - [[1966년]] - [[1967년]] - [[1968년]] - [[1969년]] [[분류:연대]] 1960년대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