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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개요
전후 경제 발전기
서기 1960년 ~ 1969년까지의 연대시기. 일명 전후 베이비부머 시대를 맞이하게 된 연대이자 경제적으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발전 및 성장기의 과정을 거치는 시기였기 때문에 경제의 태동연대라고도 불린다.
이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은 50대 중반 ~ 40대 후반이다. [1]
2 정치 경제 및 사회
2.1 세계
1960년대, 프랑스 파리의 모습 |
한국전쟁 이후 잠시 조용하던 냉전은 다시 격해지기 시작했다. 1961년의 서베를린 위기, 1962년의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미국의 존 F. 케네디와 소련의 니키타 흐루쇼프는 정면으로 충돌했다. 하지만 다행히 소련의 양보로 인해 핵전쟁은 피하게 되었다.
외교상으로 이 때들어서 대한민국이 미국 등의 일부 국가를 넘어서 6.25 전쟁에 참전하였던 자유진영 국가를 비롯해 중립국가 그리고 범아프리카 일부 국가 등과 외교관계를 활발히 맺으면서 국제적 위상을 높이려는 시기이기도 하였다. 이는 아프리카의 식민지들이 대거 독립하면서 인도(네루), 이집트(나세르) 등과 함께 UN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환경과도 관련이 있다. 1960년은 대표적인 아프리카의 해로 불린다. 1967년에는 동남아에서 ASEAN이 성립되었다.
50년대 말의 스푸트니크 쇼크에 이어서, 60년대는 우주기술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미소양국의 'Moon Race'가 치열했다. 이 문 레이스의 정점은 주지하다시피 1969년 최고의 이벤트였던 아폴로 계획에 따른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반면 소련은 우주선 착륙조차 하지 못했다.
Anti-Vietnam War Movement Documentary |
반면 베트남 전쟁은 60년대 내내 미국을 괴롭혔고, 권위주의, 전쟁에 회의감을 느낀 청년들이 68혁명과 프라하의 봄을 정점으로 히피에 이르기까지 기성세대에 과 권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보여주기도 하였다(Youthquake). 우드스톡 페스티벌이 대표적. 또 민권운동이 격렬해지고 존 F. 케네디, 마틴 루서 킹 목사, 맬컴 엑스, 로버트 케네디가 암살되는 격동의 시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련의 프라하의 봄 진압과 리처드 닉슨의 당선이 보여주듯이 혁명의 불꽃은 큰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고 사그라들었다.
일본에서도 1960년대는 투쟁과 저항의 시대였다. 학생운동이 이때 정말 치열해서, 전학공투회의의 투쟁이나 안보투쟁과 같은 좌익 세력의 사회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이는 되려 자민당 득표율 감소에도 야당의 다당화 현상이 두드러졌으며 일본의 좌파운동세력은 투쟁 방식에 관한 논쟁과 세력 다툼(우치게바)으로 점점 몰락했고, 1970년대에 다다르면 거의 사라지고 만다.
종교적으로는 요한 23세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면서 가톨릭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2.2 한국
당시 영화인 '수학여행 1969' 에서 반영된 1968년경의 서울 모습.[2]
대한민국은 이 연대 초부터 이승만 집권 말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1960년 3월 3.15 부정선거와 4.19 혁명이 일어났다. 제2공화국과 장면 내각(대통령 윤보선)하에서 잠시 민주적 신장이 일어났으나 혼란속에 1년만인 1961년 5.16 그리고 박정희 집권기(1963년 부터)로 박정희 정부가 성립하였다.
정통성과 민주적 기반이 부족했던 박정희 정권은 산업화를 내세웠다. 이로인해 장면 내각 시절 세워졌던 제1차, 제2차 5개년 계획이 시행되었다. 1차 계획은 장면 정부의 계획을 대부분 차용해 경공업 중심의 경제 발전을 꾀했으나 2차 계획부터는 중공업 투자와 수출 산업 투자에 비중을 높이기 시작했다. 어쟀든 이 두차례의 경제발전 계획과 그로인한 경제성장을 통해 박정희 정부는 1967년 대선과 총선[3]에서도 상당한 표 격차로 승리했다. 하지만 이 부정한 선거운동으로 인해 전국적인 반발이 일어났으며, 그로인해 동백림 사건이 일어났으며 큰 민주주의적 후퇴가 일어났다.교통부문에서는 1968년 부터 2년간 경인고속도로와 경부고속도로를 개통시켰다.
하지만 패스트 푸드 분야에서는 여전히 발전이 더뎠다. 이 때문에 정부를 중심으로 삼양라면을 시작으로 이 때부터 한국에서 혼식이나 라면(분식) 식사문화가 장려(라고 쓰고 읽기는 강제)되었다. 또한 쌀을 갉아먹는 쥐떼들 때문에 쥐를 잡자, 쥐잡기 운동이 민간 곳곳에서 성행하기도 하였다.
패스트 푸드 분야는 1970년대가 되서야 두드러지게 발전한다.
1955년을 시작으로 1960년대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베이비붐 세대가 태어났다.[4] 이른바 "386" 세대. 이 때문에 지금과는 반대로 산아제한정책이 실행되었다. "콩나물 교실"도 부족해 오전, 오후반의 2교대 수업을 한 것도 흔한 일이었다.
일제 말기와 해방을 겪게되었다는 1940년대 출신들이 이 연대에 들어서 해방세대 첫 성인으로 성장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였는데 구한말과 경술국치를 겪었던 당시 30대 이상 세대였던 1900년대 ~ 1930년대 세대들이 망국의 통한을 비롯해서 일제의 간악무도한 만행 등을 눈과 몸으로 겪었기 때문에 일제의 만행을 많이 접해보지 못했거나 해방을 맞이하였던 세대들이었으니만큼 이들에 대한 기대가 꽤 컸었던 편이었고 또한 해방 후의 조국의 미래를 짊어져야하는 과제를 안기도 하였기에 더욱 그렇다. 그리고 대일 외교굴욕에 맞섰던 6.3 항쟁을 통해서 반일감정을 뿌리깊게 이어나가는 세대들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6.25 전쟁의 폐허 속에서 태어났다는 1950년대생들이 10대 시절을 맞이하게 되었던 때이기도 하다. 태어나자마자 전쟁을 겪게 되었고 피난까지도 갔기 때문에 이들의 성장은 그 당시 정서로 따지자면 기대 이상이었던 편.
3 경제
한국에서는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이 수립되어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루게 된다. 해당 문서와 한강의 기적 참고. 이시기의 한국이 로스토우의 도약기, 루이스전환점에 해당했다는 것이 통론이다.
4 문화
4.1 음악
50년대 유행하던 로큰롤이 더욱 발전하여 음악의 주류로 자리잡게 된다. 특히 비틀즈를 통해 여러 장르로 세분화되었고, 단순한 유행이 아닌 음악의 한 줄기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다. 현재까지도 비틀즈는 전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밴드로 자리잡아 있다.
'영국의 침공'이라 불리우는 브리티시 인베이전이 시작되어 영국 밴드들이 대거 미국 시장에서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비틀즈는 물론, 롤링 스톤즈도 최고의 인기를 누렸고 더 후나 킹크스, 크림도 큰 인기를 얻었다. 인기만 많은 것이 아니라, 그 수준도 뛰어나서 다수의 명반들이 60년대에 발표되게 된다.
미국의 경우 영국 밴드들 외에도 밥 딜런으로 대표되는 포크 음악이 인기를 끌었고, 남부 지방을 중심으로 한 서던 록이 대중적으로 유행하였다. 60년대 초반 한정으로 비치 보이스를 위시한 여러 밴드들이 서프 뮤직을 유행시켰으나, 브리티시 인베이전 이후 서프 열풍은 한풀 꺾이고, 비치 보이스는 Pet Sounds를 시작으로 다양한 음악적 시도를 감행하게 된다.
60년대 중반 이후에는 사이키델릭 음악이 성행하였으며, 이와 더불어 히피 문화가 성행했다. 히피족들의 지지에 더불어 우드스톡 페스티벌 같은 음악 축제들도 크게 성공하게 된다.
4.2 미술
앤디 워홀로 대표되는 팝아트가 본격적으로 유행하던 시기였다.
4.3 게임
'스페이스워!' 라는 단순한 컴퓨터 게임이 1961년에 개발된 후로, 게임이 개발되기 시작했으며, 이는 1970년대를 기점으로 점차 확대된다. 물론, 본격적으로 게임기가 등장한 것은 1970년대고, 현재 게임의 대략적인 형태가 잡힌 것인 1980년대다.
4.4 애니메이션
1963년 TV에서 철완 아톰의 첫 방영을 시작으로 일본 애니메이션이 하나의 문화 장르로 탄생했다.
5 1960년대생
1960년부터 1969년 사이에 태어난 사람들을 가리킨다. 이들은 흔히 486세대라고 불린다. 586이라고 해야 하지 않나?
이들은 흔히 꿀을 많이 빤 세대라는 말이 있지만 반드시 그렇다고는 볼 수 없다. 이들이 어린 시절을 보낸 6,70년대는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시기였고 80년대는 철권통치로 점철된 시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