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관련 문서 : [[올림픽]] ||||||||||<tablealign=center><#FFFFFF><table bordercolor=#E6E6E6><tablewidth=100%><:>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a/a9/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203px-Olympic_rings_with_white_rims.svg.png?width=35 '''역대 하계올림픽''' https://pixabay.com/static/uploads/photo/2012/04/12/19/21/olive-30264_960_720.png?width=25 ,,'''(Citius, Altius, Fortius)''',,|| ||<width=30%><:> 17회||<:> {{{+1 → }}} ||<:><width=30%>18회 ||<:> {{{+1 → }}} ||<:><width=30%>19회 || ||<:> [[1960 로마 올림픽]] ||<:> {{{+1 → }}} ||<:><#DCDCDC>'''1964 도쿄 올림픽''' ||<:> {{{+1 → }}}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 [목차] == 개요 == Games of the XVIII Olympiad 第18回オリンピック競技大会(東京オリンピック)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thumb/1/13/Tokyo_1964_Summer_Olympics_logo.svg/202px-Tokyo_1964_Summer_Olympics_logo.svg.png 개최날짜 : [[1964년]] [[10월 10일]][* 이후 일본에서 체육의 날로 지정되었으며 2000년부터 해피 먼데이 제도가 적용되어 10월 둘째 주 월요일로 변경되었다.] ~ [[10월 24일]] 개최장소 : [[일본]] [[도쿄]] 같이보기 : [[신흥국 경기 대회]] 1964년에 개최된 [[아시아]] 지역에서 최초로 열린 올림픽. 일본은 원래 [[1940년]]에 개최할 예정이었으나 [[중일전쟁]]으로 개최권을 반납 한 뒤에 24년이 지나서야 겨우 올림픽의 개최권을 얻어서 개최할 수 있었다. 현대의 서구 문화권에 자리잡은 일본의 이미지는 거의 이 당시에 생겨난 것. [[신칸센(열차)|신칸센]] 개통을 필두로 여러 부분에서 일본의 경제 부흥을 세계에 알렸다. 또한 최초로 [[정지위성]]을 통해 [[미국]] 전역에 실시간으로 중계되거나, 컬러 [[텔레비전]]을 대응하는 등 기술적으로도 발전이 큰 올림픽이다.[* 다만 당시 일본 내에서도 컬러TV로 도쿄 올림픽을 본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다. [[하나다 소년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산다는 일본에서도 컬러 TV는 수십년치 봉급에 해당될 정도로 비싼 가전제품이었고 컬러 송출 자체도 대도시와 그 근교지역에서나 이뤄지고 있었던 상황이기 때문이다 물론 주요거리나 주요 기차역, 백화점에 설치된 컬러TV를 통해 올림픽 경기를 컬러로 본 사람은 꽤 있지만 대도시나 그 근교지역에서나 볼수있었고 지방도시나 시골의 경우에는 얄짤없이 흑백으로 봐야했다.] ||<:><-3>1964년 하계올림픽 투표 결과|| || 국가 || 도시 || 1차 || || '''[[일본]]''' || '''[[도쿄]]''' || '''34''' || || [[미국]] || [[디트로이트]] || 10 || || [[오스트리아]] || [[빈(오스트리아)|빈]] || 9 || || [[벨기에]] || [[브뤼셀]] || 5 || == 대회 진행 == 대회 전의 이슈는 [[신흥국 경기 대회]]를 둘러싼 논쟁이었다. [[신흥국 경기 대회]] 참가선수에 대한 자격정지처분을 둘러싸고 논란중이었던 [[북한]]과 [[인도네시아]]를 참가시키기 위해 대회 위원회에서 노력을 하였지만 결국 두 나라는 대회 개최 전날에 취소통보를 내린 뒤에 올림픽을 참가하지 않았다. 특히 북한은 이른바 "가네포" 사건[[http://theme.archives.go.kr/next/internationalSport/olympicGameA.do|#]]으로 자국의 주요 선수들이 출전을 박탈당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첫 출전은 (국호 문제 등으로) [[1972 뮌헨 올림픽]]까지 미뤄진다. 또한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간에도 --역시나-- 논란이 일어났는데, 당시 중화인민공화국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를 탈퇴한 상태였기 때문에 자동적으로 참가하지 않았고 대신 [[중화민국]]이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당당히 앞세우고 출전한다.[* 일본어로는 중화민국(中華民国)으로 표기되었으나 영어로는 '''대만(TAIWAN)'''으로 표기.]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인종차별]] 정책인 아파르트헤이트를 시행중이었고 이게 올림픽 정신에 위배된다고 판단한 IOC로부터 제명당해서 불참. 이후 남아공은 28년 뒤, 아파르트헤이트가 폐지되고 나서인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이 되어서야 올림픽에 다시 복귀할 수 있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시작된 올림픽 개막식도 구설수에 휘말렸다. 개막식의 절정을 장식하는 성화봉송 최종주자는 [[1945년]] 8월 6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태평양 전쟁]]말기 광기로 치닫던 일본 제국의 전쟁의지를 완전히 꺾어버린 [[원자폭탄|새로운 폭탄]]이 투하된 날이다.]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사카이 요시노리라는 청년이었는데, 이러한 인선은 일본이 전범국가가 아니라 전쟁의 [[피해자]]임을 강조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연출한 것이 아니냐는 주장이 나왔다. 개막식 도중 [[원폭]] 피해자에 대한 [[묵념]]을 전 관객과 선수들에게 요구한 것은 이 의심을 더 강하게 불러일으키는 퍼포먼스라는 것. '''올림픽 중이던''' [[1964년]] [[10월 16일]], [[중화인민공화국]]이 '''핵실험'''을 하기도 했다. --대륙의 패기-- 공교롭게도 [[2008년]] [[2008 베이징 올림픽|그 중화인민공화국이 올림픽 중일 때]] [[러시아]]가 [[조지아]]의 [[남오세티아 전쟁|선제공격으로]] [[전쟁]]을 할 때, [[중국인]]들이 [[징징]]거리자 [[일본인]]들은 어이없어했다. 일본에서 인기가 높았던 [[유도]]와 [[배구]]가 정식종목으로 채택되었으며, 일본은 유도에서 3개의 금메달과 여자 배구에서 금메달을 따오게 되었다. 일본 입장에서는 유도에서 전종목 석권을 할 수 있었으나 백인인 [[네덜란드]]의 안톤 헤싱크가 우승하게 되자 전 일본이 경악했다고 한다[* 당시 유도는 지금보다 체급이 적어서 3개였다. 남자부 체급별 경기와 체중에 관계없이 출전할 수 있는 무제한급이 열렸다. 3개 체급을 모두 일본이 싹쓸이했는데, 무제한급 경기에서는 헤싱크가 결승에서 일본 선수를 누르고 우승한 것.]. [[1960 로마 올림픽]]에서 맨발로 뛰면서 [[마라톤]] 우승을 차지한 [[에티오피아]]의 [[아베베 비킬라]]는 이번에는 운동화를 신고 뛰어서 세계신기록을 내면서 올림픽 2연패를 달성했다. 급성 충수염 때문에 수술을 해서 훈련량이 줄었음에도 --운동화 버프 덕분에-- 자신이 세운 기록에서 3분을 앞당기면서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그런데 수술을 받고 바로 뛸 줄은 몰랐던 탓인지, 대회 조직위에서 그만 시상식에서 '''에티오피아의 국가를 준비하지 않아서''' [[기미가요]]를 틀고 대충 시상식을 마무리하는 희대의 병크가 있었다. 일본은 당연히 죽도록 까였다. 그 외에 [[야구]]와 [[무도]]가 시범종목으로 채택된 대회이기도 하다. [[소련]]의 체조 선수인 라리사 라티니나는 이 대회에서 금 2, 은 1, 동 2개를 획득하여 올림픽에서만 총 메달을 18개(금 9, 은 5, 동 4)를 가져갔으며 그녀는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를 하였다. 그리고 이것은 2012년 --딥 원-- [[마이클 펠프스]]에 의해 깨질 때 까지 48년 동안 보유한 올림픽 메달 신기록이기도 했다. 선수촌에서 [[불가리아]] 선수들끼리 [[결혼식]]을 올렸으며, 이것은 사상 최초의 일이기도 하다. 그리고 올림픽 대회에 [[픽토그램]][* 간이 아이콘. 예를 들면 신호등에 있는 사람 모양의 그래픽 같은 것]이 최초로 도입된 대회이기도 하다. 여담으로 선수촌으로 쓰이던 건물들은 지금 현재 국립올림픽청소년센터로 쓰이고 있으니 개최 이후에도 놀리지 않고 나름 잘 써먹고 있는 편. 최근에는 [[사키 -Saki-]]에서 키요스미 고교의 숙소와 경기장으로 등장한 바 있으며 현실에서는 2011년과 2012년에 한국의 청소년단체가 청소년 캠프를 개최하기도 했던 장소다. == 일본의 국제적 이미지 약진 == 세계 최초의 [[고속철도]]이자 일본 최초의 [[신칸센(열차)|신칸센]]인 [[도카이도 신칸센]]은 이 올림픽 개막 직전인 1964년 10월 1일에 개통되었다. 이때 건축된 올림픽 경기장은 여러가지로 유명한 건축물. 일본 스포츠의 성지라 할 수 있는 도쿄국립경기장이나 일본의 건축 영웅 [[단게 겐조]]의 작품인 요요기국립체육관은 일본의 현대 건축이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시발점으로 평가받는다. 또한 [[그래픽 디자인]] 분야에서도 도쿄 올림픽의 홍보물을 통해 일본의 수준높은 디자인 능력을 세계에 알리게 된다. [[태평양 전쟁]]의 패전국이자 서구의 흉내만을 낸다고 평가절하 받던 것이 기존의 일본과 그 디자인이었다면, 올림픽 이후로 독특한 일본색을 가진 독자적인 그래픽 디자인 문화를 가졌다고 평가받으며 그 위상이 재정립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올림픽 포스터[* 애니메이션 [[코쿠리코 언덕에서]]에 등장한다]를 담당한 [[가메쿠라 유사쿠]] 등 세계적인 일본의 그래픽 디자이너들이 알려진 것은 이 도쿄 올림픽이 계기가 되었다. 여담이지만 소설가 [[오쿠다 히데오]]의 소설인 [[올림픽의 몸값]]의 배경이기도 하며 개최지 선정 과정에서 '[[회|날생선]] 먹는 국가에서 올림픽을 치르는 건 말도 안된다'라는 서구 국가들의 공격을 받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본은 이후 회와 [[초밥]]을 국제화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게 되었고, 그 결과 현재 유럽과 미국에서 이들 음식의 위상은 상류층이 즐기는 별식 수준으로 높아졌다. [[일본]]은 8년 후 [[1972 삿포로 동계올림픽]]과 [[1998 나가노 동계올림픽]]도 개최하는 등 동하계 모두 3번이나 개최하는 사례를 남겼다. 그리고 56년 후인 [[2020년]] [[2020 도쿄 올림픽|다시 한번 올림픽을 유치하게 되었다.]] 다만 [[잃어버린 10년]]을 필두로 빌빌대는 일본이므로 과거와 같은 영광스러운 일본을 알리는 이벤트가 될지는 의문이다. 일단 일본 국민들은 아베노믹스보다 이쪽을 경제 부흥의 원동력으로 먼저 의식할 정도로 큰 기대를 걸고 있다고 하지만 과연 어떻게 될 지는 두고 봐야 할 일이다. 그리고 한국 역시 [[1988년|24년 후]] [[1988 서울 올림픽|올림픽을 개최하면서]] 이 당시 일본이 누린 것과 같은 이미지 약진 효과를 톡톡히 누리게 된다. == 남과 북 == 이 당시 남북한은 공동출전을 논의하고 있었다. 한국은 '[[아리랑]]'을, 북한은 [[애국가|아랫동네 국가]]와 [[애국가(북한)|윗동네 국가]]를 25초식 붙인 50초짜리 '''[[짬뽕]] 국가'''를 주장했다. ~~만약 짬뽕 애국가로 하면 어느 쪽 애국가가 먼저 나와야 하는지가 또 문제가 될 텐데?~~ 간신히 ~~짬뽕시킬 순서를 고민할 필요가 없는~~ 아리랑으로 되었더니 됐는데 이번엔 북한이 남북한 국기를 양면으로 붙여서 쓰고 나가자라고 해서 결렬되었고, 게다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북한이 출전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런 남북의 대결은 그 뒤의 올림픽에서도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이는 [[1990년대]] 들어서서야 비로소 완화된 편이다. 휴전 이후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이 있었던 대회다. 신흥국 경기대회에서 북한대표로 금메달을 수상한 육상선수 신금단[* 금메달 수상이 유력했지만, 신흥국 경기대회에 나갔기 때문에 올림픽 경기 출전이 금지됐다.]이 올림픽 참석을 위해 도쿄까지 갔다가 북한의 불참 결정으로 돌아갔다. 사실 신금단은 [[1.4 후퇴]] 때 남한으로 간 아버지와 헤어진 [[이산가족]]. 그녀의 올림픽 출전 사실을 알고 신금단의 아버지 신문준은 도쿄까지 갔지만 북한의 올림픽 불참 결정으로 북한 선수단이 일본을 떠나기 위해 [[니가타]]행 열차를 타기 직전에야 겨우 만날 수 있었다. 시간은 7분 남짓이었고, '''부녀는 이후 다신 만날 수 없었다.''' 한국은 북한과의 경쟁, 일본에 사는 많은 동포, 그리고 일본에 사는 동포들의 한국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해, [[민단]]과 [[조총련|총련]]의 대결에서 민단의 우위를 점하려는 의도를 위해 1964년 당시의 나라 살림치고는 상당히 과할 정도인 임원 59명, 선수 165명이라는 선수단을 꾸려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전 대회인 [[1960 로마 올림픽]]은 임원 31명, 선수 36명이고, 다음 대회인 [[1968 멕시코시티 올림픽]]은 임원 21명, 선수 55명이다.] 그러나 성적은 간 선수단의 규모에 비해 영 좋지 않은 은메달 2개와 동메달 1개 정도였다. 복싱의 정신조와 레슬링의 장창선이 은메달을, 유도의 김의태가 동메달을 획득했다. 그래도 당시로선 최고 성적은 맞다. 기대를 못 따라가서 그렇지. '''뭣보다 4년 전 로마 대회의 노메달 수모를 설욕하는 효과는 있었다.''' 그리고 이 때 레슬링과 유도에서 최초로 메달을 획득하면서 그 이전 올림픽에서는 오로지 복싱과 역도에서 밖에 메달을 획득하지 못했던 한국에게 메달 저변 다각화의 가능성을 비친 첫 대회라고 할 수 있다. 즉 당시 레슬링의 장창선과 유도의 김의태는 각각 한국의 첫 레슬링, 유도 메달리스트인 것이다. 하지만 축구에서는 한국은 아랍 공화국(현재 이집트)에게 무려 0:10이라는 대패를 당했고 브라질에게 0-4,체코슬로바키아에게 1-6으로 지면서 3전전패 1골 20실점으로 참가국 14개국 가운데 꼴지를 차지해버렸다...이 10실점은 1948 런던 올림픽에서 스웨덴에게 0:12로 진 뒤로 한국 축구 역사상 국제대회 2번째 최다 실점패 기록이다..아랍공화국은 브라질을 제치고 조 2위로 8강에 진출해 가나를 5:1로 이기며 첫 4강에 올라갔지만 금메달을 받은 헝가리에게 0-6으로 지고 3,4위전에서 독일(사실상 동독팀)에 1-3으로 지며 4위를 기록했다. == 여담 == [youtube(3_3pQf4Gewo)]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주제로 한 노래도 있다! 노래 제목은 《東京五輪音頭》 (도쿄 올림픽 온도). 여기서 '音頭' (온도) 는 일본의 전통 가락 중 하나로 우리나라로 보면 강강수월래같은 둥글게 서서 추는 춤에 쓰이는 리듬이다. 당시 일본의 중장년층에게 큰 인기가 있었던 가수 [[미나미 하루오]] (三波春夫, 1923 ~ 2001)가 부르고 작곡가 [[고가 마사오]] (古賀 政男, 1904 ~ 1978)가 작곡하여, 당시 큰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1988년 [[서울 올림픽]] 당시 가수 [[김연자]]가 부른 "아침의 나라에서"라는 노래와 매치된다고 할 수 있다. 이 해는 [[조선 통신사]] [[조엄]][* 일본에서 [[고구마]]를 들여온 것으로 유명하다.]이 일본을 방문한 지 200주년이 되는 해였다. 일본의 시계 메이커인 [[SEIKO|세이코]]가 국제적인 명성을 얻게 된 계기이기도 하다. 공식 타임키퍼로 선정된 [[SEIKO|세이코]]가 시간 측정용으로 [[쿼츠 시계|쿼츠로 동작하는 정밀시계]]를 내놓았던 것.[[http://museum.seiko.co.jp/en/history/milestone/olympic/index.html|#]] 이 시계는 3kg이나 나가는 물건이었으나 5년 뒤 세이코는 이 시계의 손목시계 버전을 출시하는 기염을 토함으로써 스위스 시계 업계를 [[충격과 공포]]로 몰아넣었다. 흔히 이야기하는 쿼츠 파동이 이 사건. 세이코 역시 [[쿼츠 시계]] 가격이 급속도로 낮아지는 바람에 크게 재미는 못 봤지만, 이 일로 스위스 시계 업계는 아주 초토화됐다. 인력이 4분의 1 토막으로 감원되고 유수의 시계 회사들이 망하거나 다른 그룹의 산하로 들어가게 된 것이 이 시기. 고급화 전략으로 어찌어찌 살아남기는 했지만 아직도 스위스 시계 회사들 중 독립 회사는 그리 많지 않다. 그리고 덕질하는 사람들한태도 의미가 있는 올림픽이기도 한데, 수영 경기 당시 미국팀에서 슴가 사이로 고인 물이 빠져나가게끔 설계한 수영복을 처음으로 [[선수용수영복]]으로 도입했다. 이것에 영향을 받아 일본에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학교 수영복#s-2.1.2|구형 스쿨미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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