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행정구역 개편]] [[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b/23%EB%B6%80%EC%A0%9C.gif|https://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5/5b/23%EB%B6%80%EC%A0%9C.gif?width=40%]] --해주부에 [[월경지]]가 있다.-- ~~인천부는 아예 두동강 났다.~~[* 인천부가 두동강 난 이유는 한성부 소속인 [[광주시|광주군]] [[반월면|성곶면]]이 안산군과 인천군의 월경지인 이포면 및 수원군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23%EB%B6%80%EC%A0%9C.gif|사진 출처]] [목차] == 개요 == 1895년 음력 윤 5월 1일부터 1896년 양력 8월 4일까지 실시된 [[조선]] 말기의 지방행정체계. 중간에 음력과 양력이 혼용되어 있는 이유는 1896년을 기점으로 조선은 표준 달력을 태음태양력에서 태양력으로 바꿨기 때문(그래서 연호도 건양(建陽)이라고 썼다)이다. 갑오-을미개혁의 일환으로 진행된 행정구역 개편으로, 조선 건국 이래 지속되어 온 8도를 해체하고 전국을 8도보다 좀 더 세분화된 23부(府) 337군(郡)으로 분할하였다. 조선의 기존 행정구역은 [[도(행정구역)|도]](道) 아래에 부·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 등 다양한 등급의 행정구역이 혼재되어 혼란을 초래하고 있었다. 이를 부-군 체계로 일원화하여 행정의 효율을 높이고자 한 것이 개혁의 취지. [[의도는 좋았다|의도는 늘 항상 좋았다]]. 실제로 전통적인 8도 체제는 제정된 지 시일이 상당히 지난 탓에 도 간의 인구격차가 크고, 실제 생활권을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남부지방이 겨우 3개 도([[충청도]], [[전라도]], [[경상도]], 통칭 삼남)로 편성된 데 비해 인구밀도가 희박한 북부지방은 2개 도([[평안도]], [[함경도]])로 편성되고 있었고, 생활권이 서로 다른 [[영동]]과 [[영서]]가 같이 [[강원도]]에 묶여 있는가 하면, 생활권이 비슷한 충주를 중심으로 한 남한강 수계 일대는 충청도와 강원도로 양분되어 있었다. 23부제 개혁은 인구분포 및 생활권을 보다 실질적으로 반영하고, 지역편차가 큰 도를 더 작게 나누는 방향으로 이뤄졌다. 도 아래의 하위 행정구역이었던 부[* 23부제 이전의 '부'는 도 아래에 있는 군현이었다. 수장은 '유수' 혹은 '부윤'이었다.]·대도호부·목·도호부·군·현은 모두 군으로 일원화되었다. 실제로도 [[일본]]의 [[폐번치현]]과 [[도도부현]] 체제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또한 각 부의 명칭을 정할 때 그 부 소속의 최대도시(부 소재지)의 이름을 차용했는데, 이것또한 일본의 경우와 같다.[* [[원산시|원산]]을 제외한 3대 개항장 지역은 제외. 원래는 종2품 부윤이 다스리던 최상급 행정구역이던 부(상기했듯이 도의 아랫단위)로써 경상좌도의 중심도시였던 [[경주시|경주]]가 듣보잡인 [[부산광역시|동래]](오늘날의 부산)에게 소속 부의 타이틀을 빼앗기는 일이 발생했고, 인천의 경우에는 [[수원시|수원]]이 유수부의 지위를 잃으면서 인천부의 관할이 되었다.][* 일본의 경우 정확히 말하면 현청 소재지의 군 이름을 현명으로 삼았다. 100여 년이 지난 현재 일본의 군은 사실상 사문화되었기 때문에 현청 소재지와 현명이 다른 현의 경우 이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 각 행정구역의 장관으로 부에는 부장관(府長官)[* 강점기에 들어온 지사(知事)라는 단어보다 앞서 장관이란 단어가 관찰사를 대체했다. 이 직함은 대한제국기까지 이어진다. 식민지 시기까지도 조선인들은 구문에서는 도지사라는 용어보다는 도장관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을, 군에는 [[군수]](郡守)를 두었다. == 흑역사 == 정확히 1년 3개월 만에 조선은 기존의 도 체제로 원복했다. 본 위키의 이 항목에는 상당히 오랜 기간 '[[대한제국]]' 시기의 지방행정제도라고 기록되어 있었지만 사실 '''대한제국이 선포되기도 전에 폐지되었다!''' 23부제가 실시된 지 1년도 되지 않은 [[1896년]] 2월 [[아관파천]]이 벌어졌고, 개혁의 주체였던 친일 세력들은 참살당하거나 외국으로 망명을 가버려 갑오-을미개혁 자체가 준 [[흑역사]]가 되어버렸다. 게다가 도 체제의 한계를 극복하고 생활권을 반영한다는 취지로 편성한 23부 가운데 일부 부들은 정작 생활권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예를 들면 [[개성특급시|개성]]부가 [[황해도]] 내륙 산악지대([[수안군]], [[곡산군]], [[신계군]] 등)까지 관장하고 있었으며, 충주부는 [[남한강]] 수계를 반영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충주시|충주]]에서 상당히 멀리 떨어진 [[용인시|용인군]] 및 [[정선군]]까지 관할하고 있었다. 남원부는 전반적으로 [[섬진강]] 수계를 반영한 듯 하나 [[장수군]] 이북의 [[금강]] 수계에 해당되는 [[무주군]], [[진안군]] 등 현재의 전북 동부 산악지역까지 남원부에 편제함으로서 남북으로 길쭉한 관할구역이 형성되며 지역간 차이가 더욱 [[안드로메다]]로 가버렸다. 결국 개혁의 주체가 부재한 상황에서 행정의 혼란만 초래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23부제는 1년만에 폐지되었고, 8도를 조금 보완한 13도 체제로 행정구역을 다시 재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일각에서 도 폐지론이 나올 정도로 기존의 도 체제가 갖고 있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고, 이로부터 100년이 지난 현대 대한민국에 내려오기까지 광역행정구역 문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다. 오히려 2000년대부터 추진되고 있는 도 폐지를 골자로 한 행정구역 개편안은 23부제와 더 유사한 측면이 있다. 그리고 23부제 자체가 도 폐지론자들에게 귀감이 되어주기도 하고. 이 때 제대로 되었으면 아마 대한민국의 지방행정사가 크게 바뀌었을지도. 단 [[일제강점기]]라는 변수--[[만악의 근원]]--가 있어서 100% 장담은 할 수 없지만. 자세한 사항은 [[행정구역 개편]] 항목 참조. 여담으로 현재 북한 지역에 해당하는 부들의 위치는 북한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도 체제와 비슷하다. --그리고 상기했듯이 [[일본]]의 [[도도부현|현]]과도-- 남한 지역 부분의 경우 [[통일신라]] 때의 [[9주 5소경]]과도 비슷하다. == 23부 및 예하 군(郡) 목록 == ||<table align=center><:><-20> '''23부''' || ||<tablewidth=100%><:>부 ||<:>소속 군 (郡) || ||<:>한성부(漢城府) ||<:>한성, 고양, 파주, 교하, 연천, 적성, 양주, 포천, 영평, 가평, 광주(廣州) || ||<:>인천부(仁川府) ||<:>인천[* 지금의 인천광역시 남부를 비롯하여 시흥시 북부와 화성시 남양읍 북부 및 비봉면 북부를 포함한다.], 부평, 강화, 교동, 김포, 통진, 양천, 시흥[* 현 [[시흥시]]와는 다르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영등포구]], [[동작구]] 서부, [[관악구]] 대부분, [[구로구]] 구로동 및 [[경기도]] [[광명시]] 일대에 해당된다. 자세한 내용은 [[시흥시]] 및 [[시흥군]] 항목 참조.], 과천[* 현 [[경기도]] [[과천시]], [[안양시]], [[군포시]] 일부, [[서울특별시]] [[서초구]] 대부분, 동작구 동부, 관악구 남현동 일대에 해당된다.], 안산[* 지금의 안산시와 시흥시 남부 일대에 해당된다.], 수원[* 현 [[수원시]] (광교동, 입북동 제외), [[화성시]] 동부와 남부, [[평택시]] 서부, [[오산시]]도 포함], 남양 || ||<:>충주부(忠州府) ||<:>충주, 제천, 청풍, 단양, 영춘, 음성, 진천, 괴산, 연풍, 청안[br]여주, 이천(利川), 음죽, 용인, 양지, 죽산, 원주, 평창, 정선, 영월 || ||<:>홍주부(洪州府) ||<:>홍주[* 현 [[홍성군]] 남동부], 결성, 예산, 덕산, 대흥, 서산, 해미, 태안, 청양, 정산, 아산[br]온양, 신창, 당진, 면천, 보령, 남포, 서천, 비인, 한산, 임천, 홍산 || ||<:>공주부(公州府) ||<:>공주, 천안, 목천, 직산, 진위, 평택, 안성, 양성, 회덕[* 현 [[대전광역시]] 동부 일대. 참고로 대전역, 은행동, 둔산신도시, 유성 등은 죄다 공주군의 [[땅거스러미]]였다(...).], 진잠[* 현 [[대전광역시]] 서부 일대.], 연기, 전의, 은진[* 현 [[논산시]] 시내를 포함한 남부.][br]연산, 노성, 석성, 부여, 청주, 문의, 보은, 회인, 옥천, 청산, 영동, 황간, 금산, 진산 || ||<:>전주부(全州府) ||<:>전주, 고산, 익산, 함열, 여산, 용안, 옥구[* 현 [[군산시]] 시내를 포함한 서부.], 임피, 김제, 금구, 만경[br]부안, 고창, 흥덕, 무장, 정읍, 고부, 태인, 장성, 영광, 지도[* 현 [[신안군]] 지도읍] || ||<:>남원부(南原府) ||<:>남원, 운봉, 구례, 곡성, 옥과, 담양, 창평, 순천(順天), 돌산, 광양, 순창, 장수, 진안, 임실, 진안, 용담, 무주 || ||<:>나주부(羅州府) ||<:>나주, 남평, 광주(光州)[* 한자만 봐도 알겠지만 당연히 현 [[광주광역시]]다. 나주가 광주보다 더 큰 도시였으나 단발령으로 인한 을미의병때 나주가 혼란스러워지자 관찰사가 처소를 광주로 옮기고 의병활동이 진정된 후에도 돌아가지 않다가 13도제가 되면서 도청을 광주로 두면서 역전되었다. 그때 관찰사는 윤치호의 아버지 윤웅렬이다.], 해남, 완도, 진도, 강진, 흥양[* 현 [[고흥군]]], 보성, 낙안, 영암, 무안, 함평, 화순, 능주, 동복 || ||<:>제주부(濟州府) ||<:>제주, 정의, 대정[* 정의군과 대정군을 합하면 현 [[서귀포시]]에 해당된다.] || ||<:>진주부(晉州府) ||<:>진주, 산청, 단성, 함양, 안의, 하동, 거창, 사천, 곤양, 남해, 합천[br]초계, 삼가, 고성(固城), 의령, 함안, 칠원, 창원, 진해[* [[창원시]] [[진해구]]가 아니라 [[마산합포구]]의 진전면, 진북면, 진동면 일대에 해당된다.], 웅천[* 여기가 창원시 진해구에 해당한다.], 김해 || ||<:>동래부(東萊府) ||<:>동래[* 현 [[부산광역시]]([[북구(부산)|북구]], [[강서구(부산)|강서구]], [[기장군]] 제외)], 기장, 양산, 거제, 울산, 언양, 경주, 연일[* 현 [[포항시]]], 장기, 흥해 || ||<:>대구부(大邱府) ||<:>대구, 현풍, 경산, 하양, 자인, 인동[* 현 [[구미시]] 인동동 일대 및 [[칠곡군]] 서부에 해당된다.], 칠곡[* 현 [[대구광역시]] [[북구(대구)|북구]] 강북지구 일대 및 칠곡군 동부에 해당된다. 현 [[칠곡군]]의 영역은 오히려 옛 인동군의 영역을 더 많이 계승하였다.], 선산[* 현 [[구미시]] 대부분], 김산[* 현 [[김천시]]], 지례, 개령, 성주[br]고령, 청도, 영천(永川), 신녕, 의성, 비안, 군위, 의흥, 밀양, 창녕, 영산 || ||<:>안동부(安東府) ||<:>안동, 예안, 청송, 진보, 영양, 청하, 영천(榮川)[* 현 [[영주시]] 남동부.], 순흥, 풍기, 상주, 함창, 문경, 예천, 용궁, 영덕, 영해, 봉화[* 현 [[봉화군]] 중에서 봉성면 등 일부만 해당되며, 정작 봉화읍을 비롯한 봉화군 동부지역 대부분은 옛 안동군의 [[월경지]] 영역이었다.] || ||<:>강릉부(江陵府) ||<:>강릉[* [[평창군]] 및 [[정선군]] 북부 지역(용평, 봉평, 진부, 대관령, 임계, 방림 등)도 원래는 강릉군 땅이었다.], 울진, 평해, 삼척, 양양, 고성(高城), 간성[* 현 [[휴전선]] 이남의 [[고성군(강원도)|고성군]]과 영역이 거의 동일하다.], 통천, 흡곡 || ||<:>춘천부(春川府) ||<:>춘천, 홍천, 낭천[* 현 [[화천군]]], 횡성, 양구, 인제, 철원, 김화, 금성, 평강, 회양, 양근, 지평[* 이후 1908년 '''양'''근군과 지'''평'''군이 통합되어 현 [[양평군]]이 되었다.] || ||<:>개성부(開城府) ||<:>개성, 풍덕, 장단, 삭녕, 마전, 이천(伊川), 안협, 금천, 토산, 평산, 수안, 신계, 곡산 || ||<:>해주부(海州府) ||<:>해주, 연안, 배천, 옹진[* 현 [[황해도]]([[황해남도]]) [[옹진군(황해도)|옹진군]]이다. [[인천광역시]] [[옹진군(인천)|옹진군]]과는 다르다.], 강령, 장연, 송화, 풍천, 안악, 은율, 장련, 재령, 신천, 문화, 서흥, 봉산 || ||<:>평양부(平壤府) ||<:>평양, 삼화[* 현 [[남포특별시]](진남포시)], 용강, 강서, 증산, 함종, 중화, 상원, 황주, 강동, 삼등, 성천, 양덕, 안주[br]영유, 숙천, 순안, 순천(順川), 은산, 자산, 맹산, 영원, 개천, 덕천, 영변, 운산, 희천 || ||<:>의주부(義州府) ||<:>의주, 용천, 선천, 철산, 정주, 곽산, 박천, 가산, 태천, 구성, 삭주, 창성, 벽동 || ||<:>강계부(江界府)[* 23부 중 가장 넓었다.] ||<:>강계, 후창, 자성, 초산, 위원, 장진 || ||<:>함흥부(咸興府) ||<:>함흥, 덕원, 정평, 영흥, 고원, 문천, 안변, 단천, 이원, 북청, 홍원 || ||<:>경성부(鏡城府)[* 지도를 보면 알겠지만 경성부 자체가 현재 [[함경북도]] 일원 그 자체다. 물론 이것도 광복 이후 남북 분단 이전 이야기고, 현재는 함북 일부가 [[양강도]]로 편입되어 면적이 작아진 상태.] ||<:>경성, 부령, 길주, 명천, 무산, 회령, 종성, 온성, 경원, 경흥 || ||<:>갑산부(甲山府) [* 예하 군이 단 2개뿐이었다. 그럼에도 다른 부에 꿀리지 않는 넓이가 압권.] ||<:>갑산, 삼수 || [[분류:조선(19세기)]][[분류:한국의 옛 행정구역]] 23부제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