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2차 세계대전/미국 항공기)] [Include(틀:항공병기 둘러보기)] http://cdn-www.airliners.net/photos/airliners/1/9/4/1110491.jpg?width=600 http://cdn-www.airliners.net/photos/airliners/2/7/1/0069172.jpg?width=600 http://cdn-www.airliners.net/photos/airliners/6/7/4/1139476.jpg?width=600 ~~음? 뭔가 광속으로 박물관에 온 느낌인데?~~ [목차] == 개요 == Hughes H-4 Hercules 휴즈 H-4 허큘리스 [[미국]] 휴즈 항공기(Hughes Aircraft)사에서 제작한 8발 초대형 [[비행정]]. 1942년 개발에 착수하여 1947년 11월 2일, 초도비행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초도비행 단 한번 이후 바로 [[박물관]]으로 고이 모셔진다……. 본 용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의 [[유보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고있던 연합군 [[대서양]] 수송선단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연합군 수뇌부는 항상 유보트에게 탈탈 털리는 수송선단의 돌파구를 찾고있었는데 [[지나가던]]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 성님 曰 : "간단하구만. 물 속의 [[잠수함]]이 무서우면 물 위로 날아가면 될거 아녀?" 하지만 1940년대 초반, 쓸만한 [[수송기]]라곤 [[맥도넬 더글라스|더글러스]](Douglas)사의 [[C-47]] 뿐이였고 이 기체는 수송선단을 대체하기에는 적재용적이나 항속거리 둘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에 휴즈 형님은 "그래? 까짓꺼 내가 만들어줄께. [[크고 아름다운|조또 크고 아름다울테니]] 다들 기대하슈. ㅇㅇ"[* 다만 이 부분은 당시 무지막지한 수량의 [[리버티선]]을 찍어냈던 조선업계의 큰손 헨리 카이저에게 낚여서 시작했다는 썰도 있다. 즉 헨리 카이저가 하워드 휴즈를 꼬셔서 대형 수상비행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물론 중간에 헨리 카이저는 쏙 빠져나가고 하워드 휴즈 혼자 프로젝트를 밀고가게 된다.] 이렇게 하여 초대형 비행정의 개발은 시작되었고 코드명 'HK-1'으로 지칭된 모델의 컨셉은 6~8발의 엔진을 장착한, 당시로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덩치를 가진 '하늘을 나는 화물선'으로 진행되었다. 완성되면 750명의 [[군인|무장병력]]이나 2대의 [[M4 셔먼]] [[전차]]를 수용할 수 있을 것[* 2대면 별것 아닌 거 같지만 당시 [[C-47]]의 최대 적재하중이 2~3톤 수준에 불과한 시절이였다. 참고로 M4 셔먼 전차 1대의 중량은 약 30톤(...).]이라 생각했고 특이하게 금속 프레임 대신 목재와 캔버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했었다.[* 전쟁 중이라 금속이 귀했기 때문에 전금속제로 제작하는 것은 무리였다.] --[[DH-98 모스키토|모스키토]]?-- 그러나 중량과 엔진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조종계통에서 문제가 빈발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유압의 보조를 받는 금속 와이어로 연결된 조종간을 사용하는게 당연한데, 기체 길이가 66m[* A380-800이 73m, B747-8i가 76.4m이다!!]를 넘는 무지막지한 사이즈인지라 기체 조종면의 반응이 터무니없이 느렸고, 조종간 조작과 실제 조종면이 움직이기까지 딜레이가 '''분 단위'''가 걸렸다고 하니 사실상 비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렇게 터무니없이 거대한 비행정[* 지금 수준으로 봐도 엄청 크다.]을 만드는 휴즈를 쓸데없는 곳에 [[돈지랄|돈낭비]]하는 [[바보]]취급 하였고[* 국가 지원금으로 제작이 보충되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휴즈가 전쟁중이라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을 거덜낸다고 비난하였다.] 제작중인 비행정에는 '멋진 거위'라는 뜻[* 어감으로 보면 'ㅋㅋㅋ 그래 너 참 멋지다. ㅋㅋㅋ' 정도의 비꼬는 뜻이다.]의 '스프루스 구스(Spruce Goose)'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45년 8월, 아직 개발이 진행중인 시기에 원 목적이였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버렸다(...) 이에 편승하여 비평가들은 가루가 되도록 휴즈를 까댔고 미 의회 역시 더 이상 쓸모없는 비행정을 제작하기 위해 나랏돈을 퍼가는 휴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1947년 8월에는 --나랏돈은 먹을대로 먹고-- 아직까지 비행정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유로 청문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안습]] 청문회가 휴정중인 1947년 11월, 드디어 비행정이 완성되었고 휴즈는 직접 초도비행을 조종하기로 한다. 1947년 11월 2일, 휴즈와 부조종사 '데이브 그랜트(Dave Grant)' 외 2명의 [[항공기관사]], 엔지니어, 초대손님, 산업대표 등 총 32명이 탑승한 'H-4 허큘리스'는 롱비치 해변 근해에서 초도비행에 성공하였고 초도비행의 기록은 '''최대고도 70[[피트]](21m), 최대 비행속도 시속 135[[마일]](217km/h), 비행거리 약 1마일(1.6km)'''을 기록하였고 '''세계최대 날개폭을 가진 항공기'''라는 타이틀을 획득한다.[* '''세계최대 항공기'''인 [[An-225]]보다 넓다!] 다만 앞서 말했듯 조종면 반응성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 비행은 사실 [[페이크다 이 병신들아|조종간은 중립에 놓고 엔진출력 조절만으로 이수했다가 착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쨌든 뜨긴 떴기에 --[[경제만 살리면 그만이지|어뢰만 피하면 그만이지]]-- 비행기록으로 인정되었으며 청문회의 칼바람도 비켜나갈 수 있었다. --[[먹튀]]는 면했다-- 훗날 [[영화]] '[[에비에이터]](The Aviator, 2004)'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 관련 항목 == * [[비행정]] * [[수송기]] [[분류:수상 군용기]][[분류:수송기]][[분류:항공 병기/세계대전]]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2차 세계대전/미국 항공기 (원본 보기) 틀:항공병기 둘러보기 (원본 보기) Hughes H-4 허큘리스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