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ughes H-4 허큘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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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의 미군 항공기
전투기육군 전투기P-26 피슈터, P-36 호크, P-39 에어라코브라, P-63 킹코브라, P-40 워호크, P-43 랜서, P-47 썬더볼트, P-51 머스탱, XP-75 이글
함재기F2A 버팔로, F4F 와일드캣, F4U 콜세어, F6F 헬캣, F7F 타이거캣, F8F 베어캣
쌍발 전투기P-38 라이트닝, P-61 블랙위도우, XF5U 플라잉 팬케이크
제트기P-80 슈팅스타, FH 팬텀A, XP-81
뇌격기TBD 데버스테이터, TBF(M) 어벤저, XTB2D 스카이파이렛
폭격기공격기/급강하 폭격기SB2C 헬다이버, SBD 돈틀리스, BTD 디스트로이어, A-20, A-26, A-29, A2D 스카이샤크, A-31 벤전스, SB2A 버커니어(A-34)
中폭격기B-18, B-25 미첼, B-26
重폭격기B-17 플라잉 포트리스, B-24 리버레이터, B-29 슈퍼 포트리스, B-32 도미네이터, YB-35, B-36A, YB-49
수상기OS2U 킹피셔, SOC 씨걸, SO3C 씨뮤, SC 씨호크
비행정PBY 카탈리나. PB2Y 코로나도, PBM 마리너, Hughes H-4 허큘리스
기타 항공기C-46, C-47, T-6 텍산, L-5 센티넬
취소선: 계획되었다 취소된 기종, A: 전후 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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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뭔가 광속으로 박물관에 온 느낌인데?

1 개요

Hughes H-4 Hercules
휴즈 H-4 허큘리스

미국 휴즈 항공기(Hughes Aircraft)사에서 제작한 8발 초대형 비행정.

1942년 개발에 착수하여 1947년 11월 2일, 초도비행에 성공한다. 그리고 그 초도비행 단 한번 이후 바로 박물관으로 고이 모셔진다…….

본 용도는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유보트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고있던 연합군 대서양 수송선단을 대체(!)하기 위해서였다. 연합군 수뇌부는 항상 유보트에게 탈탈 털리는 수송선단의 돌파구를 찾고있었는데 지나가던 하워드 휴즈(Howard Hughes) 성님 曰 : "간단하구만. 물 속의 잠수함이 무서우면 물 위로 날아가면 될거 아녀?" 하지만 1940년대 초반, 쓸만한 수송기라곤 더글러스(Douglas)사의 C-47 뿐이였고 이 기체는 수송선단을 대체하기에는 적재용적이나 항속거리 둘다 도저히 상대가 되지 않았다. 이에 휴즈 형님은 "그래? 까짓꺼 내가 만들어줄께. 조또 크고 아름다울테니 다들 기대하슈. ㅇㅇ"[1]

이렇게 하여 초대형 비행정의 개발은 시작되었고 코드명 'HK-1'으로 지칭된 모델의 컨셉은 6~8발의 엔진을 장착한, 당시로서는 상식을 뛰어넘는 덩치를 가진 '하늘을 나는 화물선'으로 진행되었다. 완성되면 750명의 무장병력이나 2대의 M4 셔먼 전차를 수용할 수 있을 것[2]이라 생각했고 특이하게 금속 프레임 대신 목재와 캔버스를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했었다.[3] 모스키토?

그러나 중량과 엔진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조종계통에서 문제가 빈발했다. 시대가 시대인지라 유압의 보조를 받는 금속 와이어로 연결된 조종간을 사용하는게 당연한데, 기체 길이가 66m[4]를 넘는 무지막지한 사이즈인지라 기체 조종면의 반응이 터무니없이 느렸고, 조종간 조작과 실제 조종면이 움직이기까지 딜레이가 분 단위가 걸렸다고 하니 사실상 비행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당시 비평가들은 이렇게 터무니없이 거대한 비행정[5]을 만드는 휴즈를 쓸데없는 곳에 돈낭비하는 바보취급 하였고[6] 제작중인 비행정에는 '멋진 거위'라는 뜻[7]의 '스프루스 구스(Spruce Goose)'라는 굴욕적인 별명을 지어주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1945년 8월, 아직 개발이 진행중인 시기에 원 목적이였던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버렸다(...) 이에 편승하여 비평가들은 가루가 되도록 휴즈를 까댔고 미 의회 역시 더 이상 쓸모없는 비행정을 제작하기 위해 나랏돈을 퍼가는 휴즈가 곱게 보이지 않았다. 1947년 8월에는 나랏돈은 먹을대로 먹고 아직까지 비행정을 완성시키지 못한 이유로 청문회가 열리기도 하였다. 안습

청문회가 휴정중인 1947년 11월, 드디어 비행정이 완성되었고 휴즈는 직접 초도비행을 조종하기로 한다. 1947년 11월 2일, 휴즈와 부조종사 '데이브 그랜트(Dave Grant)' 외 2명의 항공기관사, 엔지니어, 초대손님, 산업대표 등 총 32명이 탑승한 'H-4 허큘리스'는 롱비치 해변 근해에서 초도비행에 성공하였고 초도비행의 기록은 최대고도 70피트(21m), 최대 비행속도 시속 135마일(217km/h), 비행거리 약 1마일(1.6km)을 기록하였고 세계최대 날개폭을 가진 항공기라는 타이틀을 획득한다.[8]

다만 앞서 말했듯 조종면 반응성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었기에 이 비행은 사실 조종간은 중립에 놓고 엔진출력 조절만으로 이수했다가 착수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어쨌든 뜨긴 떴기에 어뢰만 피하면 그만이지 비행기록으로 인정되었으며 청문회의 칼바람도 비켜나갈 수 있었다. 먹튀는 면했다

훗날 영화 '에비에이터(The Aviator, 2004)'에서 자세히 다루어진다.

2 관련 항목

  1. 다만 이 부분은 당시 무지막지한 수량의 리버티선을 찍어냈던 조선업계의 큰손 헨리 카이저에게 낚여서 시작했다는 썰도 있다. 즉 헨리 카이저가 하워드 휴즈를 꼬셔서 대형 수상비행정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는 이야기. 물론 중간에 헨리 카이저는 쏙 빠져나가고 하워드 휴즈 혼자 프로젝트를 밀고가게 된다.
  2. 2대면 별것 아닌 거 같지만 당시 C-47의 최대 적재하중이 2~3톤 수준에 불과한 시절이였다. 참고로 M4 셔먼 전차 1대의 중량은 약 30톤(...).
  3. 전쟁 중이라 금속이 귀했기 때문에 전금속제로 제작하는 것은 무리였다.
  4. A380-800이 73m, B747-8i가 76.4m이다!!
  5. 지금 수준으로 봐도 엄청 크다.
  6. 국가 지원금으로 제작이 보충되었기 때문에 비평가들은 휴즈가 전쟁중이라 가뜩이나 어려운 나라살림을 거덜낸다고 비난하였다.
  7. 어감으로 보면 'ㅋㅋㅋ 그래 너 참 멋지다. ㅋㅋㅋ' 정도의 비꼬는 뜻이다.
  8. 세계최대 항공기An-225보다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