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 상위 항목 : [[KBO]] * 관련항목 : [[KBO/역대 총재]] 기사나 자료가 별로 없고 부정확한 경우가 많아서 많이 부족합니다. 수정이나 추가 부탁드립니다. [목차] == 초대~3대 : [[이용일]] == ||http://img.yonhapnews.co.kr/photo/old/data3/orign_img/2003/10/27/_05/2031027p2213000_P2.jpg?width=250|| ||재임기간||[[1981년]] [[12월 15일]] ~ [[1991년]] [[2월 21일]]|| 사실상 [[KBO 리그]]를 만든 장본인이다. 1977년 야구협회 전무이사 재직 시 프로야구 창설에 앞장섰으며[* 1975년 재미교포 사업가 홍윤희 씨의 제안으로 프로야구 창설을 시도했으나 당시 [[높으신 분]] 때문에 그냥 프로야구 창설은 썰로 그쳤다. 하지만 [[실업야구]]의 발전이 필요하다는 것은 야구인들 누구나가 다 공감을 했기에 이후 전후기 리그와 시즌 왕중왕전인 [[코리안시리즈(실업야구)|코리안시리즈]]를 도입하게 된다.], 1981년 그의 오랜지기인 이호헌(前 MBC 해설위원)과 함께 KBO 창설을 주도했다.[* 창단과정의 비화는 [[KBO 리그]] 역사 항목 참조.] 그 공로를 인정받아 초대 사무총장에 임명되었다. [[군산시]]의 야구원로로도 유명한데 군산지역 유소년 야구, 특히 [[군산상고 야구부]]를 창단하는데 큰 공헌을 했으며 [[쌍방울 레이더스]] 역시 이분께서 창설하는데 큰 도움을 주셨다. [[쌍방울 레이더스]] 구단주 대행(1992년~1997년)을 역임했다. 2009년부터 유영구 총재의 고문으로 활동했고, 유영구 총재의 불명예 사임으로 총재대리를 역임했다. 2012년에는 전북 지역 '프로야구 제10구단 범도민유치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 4대~5대 : [[안의현]] == ||재임기간||[[1991년]] 2월 ~ [[1995년]] 12월 || 첫번째 KBO 내부직원 출신. [[임선동]] 선수 계약 문제로 시끄러운 상황에서 건강상의 이유로 자진사퇴 하였다. == 6대 : [[박종환]] == ||http://www.kumdo.org/news/img/100719.jpg?width=250|| ||재임기간||[[1996년]] 1월 ~ [[1998년]] 3월|| 경남고등학교와 [[기업은행 야구단]], [[상무 피닉스 야구단|육군 야구단]]에서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인물. 1955년 황금사자기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다.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2년간 구단 경영 수업을 듣기도 했으며 1982년에 한국으로 돌아와 [[롯데 자이언츠]] 전무가 되었다. 롯데 전무 시절은 원년 팬들에게 천하에 개썅놈취급을 받아도 무방한데,87시즌 후 최동원의 연봉협상에서 동결이 확정된 상황에서 기자들앞에서 5~10% 인하요인이 있지만 동결시켜줄 계획이라고 답하는 미친짓을 저질렀다.[* 최동원의 87년 성적은 14승 12패 2세이브였다.15승을 기준으로 14승이 되면 5-10%를 깎는다는 조항이 있었던것.하지만 당시 전례에 따르면 통상 2세이브는 1승으로 간주되었던 시대였다.이럴경우 최동원의 연봉 조항에서 승수는 15승이 되는것이고 연봉 동결이 확실한 상황인데 인하요인 이라는 흠좀무한 개소리를 지껄였던것.]그리고 최동원 부친인 최윤식씨가 반발해 연봉을 90만원 인상해서 9000만원을 요구하자 기자들과에 술자리에서'"병신 육갑'"이라 비아냥 거렸고[* 故최윤식 씨는 한국전쟁 당시 다리를 잃어서 의족을 차고 다녀야 했다.]끝까지 물고늘어지다가 팬들의 항의와 주위의 중재로 인해 겨우 끝을냈다.하지만 뒤끝으로 [[선수협]]사태때 최동원을 트레이드 시키는 미친짓을 감행하며 결국 최동원이 삼성 입단 계약서에 사인을 한날 전무직에서 사퇴할수 밖에없었다.[* 최동원이 트레이드된게 언론에 나가자 부산 시민 전체가 롯데 구단 전화에 욕설을 날렸다고 한다(...)] KBO 사무총장 시절 외국인 선수제도를 도입한 사무총장으로 유명하며, 부정방망이파동(1997년)으로 일부 구단주와의 마찰이 발단이 되어 사임했다.[[http://webcache.googleusercontent.com/search?q=cache:8BaYRV38800J:sports.kr.msn.com/baseball/lg-%25EC%2582%25BC%25EC%2584%25B1%25EC%25A0%2584-%25EB%25B6%2580%25EC%25A0%2595%25EB%25B0%25B0%25ED%258A%25B8-%25EC%2586%258C%25EB%258F%2599%25EA%25B3%25BC-%25EA%25B3%25A0-%25EB%25B0%2595%25EC%25A2%2585%25ED%2599%2598-kbo-%25EC%2582%25AC%25EB%25AC%25B4%25EC%25B4%259D%25EC%259E%25A5-1+&cd=6&hl=ko&ct=clnk&gl=kr|사퇴와 관련된 내용은 여기를 참조.]] == 7대 : [[최영언]] == ||http://www.hani.co.kr/h21/data/L000424/image/18-1.jpg|| ||재임기간||[[1998년]] [[10월 8일]] ~ [[1999년]] [[12월 24일]] || MBC 보도본부 스포츠국장 출신이다. [[낙하산 인사|낙하산식 KBO총재 인사]]를 거부하고, 민선총재 시대를 개막([[박용오]] KBO 총재)했으나, KBO와 선수협 갈등으로 사임한다. [[1997년 외환 위기]]를 맞이해 KBO 구단들의 압력으로 사무국 직원 6명 퇴출, 직원들 임금을 2년연속 15% 삭감하는 구조조정을 하기도 했으며, 쌍방울 레이더스의 매각은 물론이고 KBO 운영 전반에 각 구단들의 압박에 아무것도 할수 없다는 불만을 수차례 토로하기도 했다. == 8대~10대 : [[이상국]] == ||http://www.sisapress.com/news/photo/200906/49341_50995_3255.jpg?width=250|| ||재임기간||[[1999년]] [[12월 28일]] ~ [[2006년]] [[4월 5일]]|| [[http://blog.joins.com/media/folderlistslide.asp?uid=cafe&folder=41&list_id=13330347|인터뷰]] 특이하게 육상선수 출신이다.[* 광주 살레시오고 - 성균관대 졸] 고교시절 한국육상선수권대회 단거리 부분 3연패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 1975년 해태제과에 입사한후 1982년 해태 타이거즈 홍보과장으로 발탁되었다. 1991년에는 39세의 나이로 최연소 야구단장을 맡기도 했다. 1996년에 [[선동렬]]의 일본 진출 당시 일본 최고 명문인 [[요미우리 자이언츠]] 행을 거의 성사시켰으나 박건배 해태 회장이 선동렬을 [[주니치 드래곤즈]]로 보내라고 일방적으로 통보한 뒤 문책 해임되었다. 이후 1998년 정대철 KBO 총재의 특보자격으로 KBO에 입사, 1999년 12월 28일부터 사무총재로 재임하게 되었다. 그의 재임기간 타이틀스폰서 유치, 중계권 협상 시작, [[SK 와이번스]] 창단과 현대-기아 자동차의 [[해태 타이거즈]] 인수 주도, KBOP 설립등의 업적이 있다. 하지만 [[잠실 야구장]] 펜스에 광고를 설치해준다는 댓가로 광고업체로부터 8900만원을 받은 배임수재 혐의와 해당 광고업체가 당시 배기선 국회 문화관광위원장에게 3000만원의 정치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벌금 500만원을 내기도 했다.[[http://www.pressian.com/news/article.html?no=94714|'비리 경력'이 훈장인가? 희망 없는 프로야구]] 선수협회와의 갈등, 금품 수수 문제등이 불거지기도 했다. [[http://www.sportopic.com/90|##]] 2006년에 퇴임후, 2009년에 유영구 KBO 총재의 특보자격으로 KBO에 재입사 했으며, 이때 사무총재로 재선임 될뻔 했으나 [[선수협]]과 야구계의 반대로 무산되었다.[[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49341|##]] 이후 2011년 유영구 총재가 물러나자 3개월후인 2011년 8월 21일 KBO 총재 특별보좌역을 사퇴했다. == 11대 : [[하일성]] == ||http://www.ksilbo.co.kr/news/photo/200810/P200605090115021M.jpg?width=250|| ||재임기간||[[2006년]] [[5월 8일]] ~ [[2009년]] [[3월 31일]] || 야구해설가 출신. 역대 사무총장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며, 아직도 KBO 사무총장은 하일성인줄 아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2016년 9월 8일부터는 그럴 일이 없을 듯 하다. 자세한 내용은 [[하일성]] 문서의 [[하일성#s-4|4문단]] 참조. 재직 당시 [[고척 스카이돔]]의 문제의 씨앗을 방관하고 1차 지명제도 폐지[* 원래 2006년, 하일성은 "오늘날의 한국프로야구가 부진한 것은 스타선수가 없어서다."라며 해외파 특별 드래프트와 함께 '''1차지명 제도 확대방안을 추진'''했다. 2007년에는 1차 지명자가 2명으로 확대 되었으며 최종적으로는 1차 지명자를 3명까지 늘릴 계획이었지만....[[서울특별시]] 입성만을 노리며 떠돌이 생활을 하다 [[수원시]]에 잠시 머물던 [[현대 유니콘스]]에게 너무 불리하다는 의견과 함께 2007시즌 중반 터진 현대 유니콘즈 매각과정에서 "기업에 팔려고 하니 이런 불리한 제도가 걸림돌이다." 이야기가 나와 결국 폐지해버리고 지역연고라는 단어대신 도시연고를 해야한다는 주장을 했다.]로 인해 프로구단의 아마야구 지원을 요원하게 만들어 프로야구 발전을 후퇴 시킨 부분에 대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있다.[* 이런 우려에 대해 KBO는 아무 문제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지만 실제로는 그냥 손을 놔 버렸다.] 2009 WBC의 상금을 횡령한 사건도 하일성 총재 재임기간에 벌어진 일이다. 일설에는 [[네오플]]이 [[현대 유니콘스]] 인수 제안을 했지만 무슨 구단인지 모르고 씹었다는 이야기가 돌았었는데 그만큼 사무총장 시절 하일성은 평이 좋지 못했으나,[* 참고로 이때 네오플의 CEO가 바로 [[고양 원더스]]를 창단했었던 [[허민(기업인)|허민]]이었다.] 고양 원더스 해체 후 그 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현실(정확히는 이전부터 작게나마 알려지기는 했지만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오른)이 알려지고 허민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해지며 오히려 선견지명이었다는 평가가 높아졌다.[* 거절했다 하더라도 소위 '급'이 안 돼서 거절했을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kt와의 논의도 진척 중이었고, 이 당시까지만 해도 재벌들의 놀이터라는 크보판에 네오플 정도의 기업이 들어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봤어야 한다. 이장석이 현대를 인수할 수 있었던 것은 kt의 인수가 최종결렬되면서 의사를 타진해볼 기업이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가능했고 그나마도 얼마나 많은 비토가 있었는지 생각해보면 이해할 만하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조기에 현대 사태를 처리 하지 못한 점은 실드의 여지가 없지만.] == 12대 : [[이상일]] == ||http://img.hani.co.kr/imgdb/resize/2009/0708/1246958130_6000269417_20090708.JPG?width=250|| ||재임기간 ||[[2009년]] [[4월 1일]] ~ [[2011년]] [[12월 13일]] || 안의현 사무총장에 이어 두번째 KBO 직원 출신(1983년 기록원으로 입사, 운영부장,홍보부장 등)이다. 사무총장에서 물러난 후 총재특보로 자리를 옮겼다. 선수협 파문 당시 백분토론에 출연하여 무식한 발언으로 사회자에게 한소리 먹었던 그 사람이다. == 13대 : [[양해영]] == ||http://img.yonhapnews.co.kr/photo/yna/YH/2013/09/24/PYH2013092403470001300_P2.jpg?width=250|| ||재임기간||[[2011년]] [[12월 14일]] ~ 현재 || 1988년 KBO 총무부에 입사해 홍보부장, 총무부장, KBOP 이사 등을 거쳤다. 2011년 1월 사무차장에 올랐다. 한국야구위원회의 주요 수입을 담당하는 자회사 KBOP의 회장직을 성공적으로 이끈다는 평가와 함께 구본능 총재를 잘 보좌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15년부터 기존에 구단 사장단들만 모여서 진행햇던 [[KBO 윈터미팅]]을 리그발전을 위한 의견수렴 및 마케팅 전문가의 강연 등으로 개선했다.[[http://sports.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baseball&ctg=news&mod=read&office_id=382&article_id=0000431606|기사]] [[http://news.tf.co.kr/read/baseball/1622216.htm|'28년 외길' 양해영 KBO 총장 "내 사주에 야구가 있다"<1>]], [[http://news.tf.co.kr/read/baseball/1622513.htm| '붉은 대추' 양해영 총장 "암 수술 두 번, 야구로 극복"<2>]], [[http://news.tf.co.kr/read/baseball/1622534.htm|양해영 KBO총장 "2020년 1000만 관중 돌파"<3>]]. [[http://sports.news.naver.com/kbaseball/news/read.nhn?oid=108&aid=0002498891|양해영 사무총장 "야구가 왜 좋으냐건 그냥 웃지요"]] [[분류:야구 관련 인물]] [[분류:KBO 리그]] KBO/역대 사무총장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