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 편집 권한이 없습니다. 다음 이유를 확인해주세요: 요청한 명령은 다음 권한을 가진 사용자에게 제한됩니다: 사용자. 문서의 원본을 보거나 복사할 수 있습니다. [include(틀:2차 세계대전/일본 항공병기)] [Include(틀:항공병기 둘러보기)]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1/1a/Mitsubishi_Ki-51-1.jpg http://www.pilotfriend.com/photo_albums/images14/102.jpg http://img.wp.scn.ru/camms/ar/1026/pics/65_10.jpg キ51 九九式襲撃機 Mitsubishi Ki-51 'Sonia' [목차] == 제원 == ||분류 : 단발 복좌 급강하폭격기 전장 : 9.21m 전폭 : 12.10 m 주익면적 : 24.20 m² 자체중량 : 1,873 kg 최대이륙중량 : 2,798 kg 엔진 : 미쓰비시 하 26-2 공랭 복렬14기통 성형엔진 940마력(해군명 즈이세이) 프로펠러 : 스미토모-해밀턴 유압식가변핏치 3시 최고속도 : 424 km/h (고도 3,000m 기준) 실용상승한도 : 8,270 m 상승률 : 5000m까지 8분 47초 항속거리 : 1,060 km (연료 608리터 탑재시) 무장 : 주익내 7.7mm 기총(89식 고정기관총)2정(기존) 주익내 13mm기관포[* 육군은 10mm가 넘으면 기관포라고 불렀다. 반면 해군은 20mm까지를 기총이라 불렀다.](호-103)2정(후기형) 후방 7.7mm선회기총([[루이스 경기관총|테4]])1정 폭장 : 최대 200kg(250kg 하나는 [[카미카제|특공]]용) 이륙활주거리 : 165 m 착륙활주거리 : 276 m || == 개요 == [[일본군]]이 [[태평양 전쟁]]기간에 [[육군]]에서 사용한 [[급강하폭격기]].[* 구[[일본군 육군]]은 [[급강하폭격기]]를 '''습격기'''라 불렀다.] 당시 개발 및 제조는 미츠비시에서 담당했는데 파생형으로 99식 군 정찰기가 있다. 이것도 역시 Ki-51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습격기(襲擊機)'란 것은 적 지상시설(비행장이나 건물) 및 지상부대에 대해 저공으로 [[폭격]] 및 기총소사를 가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일본 육군]]의 군용기로, [[전투기]]와 [[폭격기]]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급강하폭격기]],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근접항공지원]]용 [[공격기]]에 해당하는 특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의 다른 국가들의 군용기와 비교하자면 [[독일]]의 [[Ju87]]나 [[소련]]의 [[IL-2]]에 비교할 수 있다. 단 본 기종 외에는 습격기란 말이 쓰였던 것은 Ki-93과 [[Ki-102]] 뿐이었는데 Ki-93은 설계중 종전을 맞이했고 Ki-102는 야간전투기로서 방공역할만을 행하였기에 오리지널의 습격기는 99식 습격기 뿐이었다. 1937년 육군성은 지상부대와의 전투협력용 항공기의 필요성에 의해 미츠비시에 키 51 시제기 제작을 명령하여 오오키 하시노스케(大木喬之助) 기사를 중심으로 한 미츠비시의 개발진들은 피스톤 엔진인 미츠비시 하 26 2형을 채용한 단발복좌 형식의 단엽기를 설계하였다. 시제기는 고정각을 가진 양 날개에 7.7mm 기총 2정 및 뒷 좌석에 선회식 7.7mm 기총 1정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날개 내부의 7.7mm 기총은 실전투입 후에 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되어 이는 전쟁 후반기에 13mm 기총으로 교체되었다. 폭탄은 당초 200kg까지 탑재가 가능했지만 그 무게한도를 넘길 경우 비행성능이 저하되는 점 때문에 한도중량을 달지는 않았다. 폭탄은 양 날개 아래에 탑재했다. 또 저공비행 임무의 특성상 지상부대로부터 반격을 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당시 일본항공기로는 보기 드문 6mm 방탄장갑을 엔진 밑, 조종석 하단, 동체 아랫부분에 장착하였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평양전쟁 초기 해군기는 방탄 등 방어력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가면 저 6mm 장갑으로도 부족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쬐~금 낫긴 하다.] 시제기의 비행심사 결과, 성능 및 취급에서는 양호한 판정을 받았지만 기체의 진동과 착륙시 불안정한 문제로 양산형에는 주익 전방에 슬랫을 달아 문제를 해결하였다. 또 일부 기체는 생산과정에서 장비를 약간 변경하여 군용 정찰기로도 개조되었는데 이를 99식 군정찰기라고 불렀다. 이는 시계를 넓히기 위해 기체에 비해 캐노피가 크게 설계되었고 방탄장갑이 제거되어 카메라가 장착되었다. 1941년에 미츠비시 하 112 엔진[* 해군명 킨세이 62형. [[D4Y 스이세이|혜성]]의 후기형이 장착한 그것]으로 교환하고 랜딩 기어를 고정식에서 인입식으로 바꾼 99식 습격기의 변형인 키 71이 만슈 비행기에서 만들어졌지만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성능향상을 보이지 못해 채용되지 못했다. 99식 습격기는 중일전쟁 말기부터 태평양전쟁 초반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중국대륙과 남방전선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99식 습격기는 [[D3A]] 99식 함폭처럼 고정식 랜딩 기어여서 밀림에서도 튼튼했고 주익에 집중된 기총 덕에 정비 및 실용성이 뛰어나 불시착하거나 황무지에 긴급착륙해도 안정된 착륙성능 때문에 육군의 진귀한 보배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이르자 일본군 병기의 전형적인 문제인 구식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적 전투기에 비해 속력이 낮아 피해가 속출했다.[* 슈투카도 이런 문제 덕분에 이미 영국 항공전에서 뼈아픈 대가를 치른 바 있었다.] 또 다른 항공기에 비해 폭장량이 적고 항속거리가 부족하여 전면적인 전투에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래도 그 신뢰성 탓에 종전때까지 육군의 주력기로 활약하였지만 전황의 악화로 인해 동체 하부에 폭탄 250kg씩을 달아 [[카미카제]]로 소모되었다. http://m.faktopedia.pl/uimages/services/faktopedia/i18n/pl_PL/201510/1445961661_by_Fudal_500.jpg 영국 중순양함 HMS Sussex에 들이 받아 먼지만 남은 Ki-51(...). 하필이면 때려 박은 곳이 방어력이 가장 튼실한 흘수선 부위였다. 아무런 피해를 못준 허무한 공격이었지만 심지어 이 공격은 일본의 항복선언이 이루어지고 나서 감행된 목숨만 날린 공격이었다. 당초 생산은 미츠비시가 맡아서 1,472기를 생산했지만 1944년 이후부터는 타치카와 육군비행공창에서도 1,000기가 생산되어 개조된 군 정찰기를 포함해 총 2,385기가 생산되었다. 전후 99식 습격기는 해외에서 활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국공내전 당시의 중국인민해방군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때의 인도네시아 인민군에서도 이용하였다.[* 특히 인도네시아 공군 중앙 박물관에는 이 기체와 전투기 [[하야부사]]도 함께 보존, 전시중이다.] 99식 습격기가 유명해진 것은 미국의 비행가 [[찰스 린드버그]]가 탄 [[P-38 라이트닝]]기와 싸웠던 것으로 린드버그의 윙맨 2기의 P-38을 상대로 선회전으로 빅엿을 선사하던 99식 습격기 1대가 린드버그의 공격으로 격추되었던 일이 있었다. [[분류:폭격기]] [[분류:항공 병기/세계대전]] 이 문서에서 사용한 틀: 틀:2차 세계대전/일본 항공병기 (원본 보기) 틀:항공병기 둘러보기 (원본 보기) Ki-51 문서로 돌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