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51

제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 항공병기
육군 전투기Ki-27 97식 전투기, Ki-43 하야부사, Ki-44 쇼키, Ki-61 히엔, Ki-84 하야테, Ki-100 5식 전투기
육군 쌍발 전투기Ki-45 토류, Ki-102 5식 습격기
육군 폭격기BR-20 시코그나, Ki-21 97식 중폭격기, Ki-30 97식 경폭격기, Ki-32 98식 경폭격기, Ki-49 돈류, Ki-51 99식 습격기, Ki-67 히류
함재기함상전투기A5M 96식 함상전투기, A6M 0식 함상전투기, A7M 렛푸
함상공격기B5M 97식 2호 함상공격기, B5N 97식 함상공격기, B6N 텐잔, B7A 류세이
함상폭격기D3A 99식 함상폭격기, D4Y 스이세이
함상정찰기C6N 사이운
노획 항공기LaGG-3, F2A 버팔로, B-17, P-51 머스탱, P-40 워호크
해군 소속 육상공격기/폭격기G3M 96식 육상공격기, G4M 1식 육상공격기, P1Y 깅가, H6K 97식 비행정, H8K 2식 비행정, G5N 신잔, G8N 렌잔
해군 소속 국지전투기N1K-J 시덴, J1N 겟코, J2M 라이덴
해군 소속 수송기L2D, H6K 97식 비행정, H8K 2식 비행정, G5N 신잔
해군 소속 수상기F1M 영식수상관측기, E13A 영식수상정찰기, N1K 쿄후, M6A 세이란, E16A 즈이운
특공기MXY-7 오카, Ki-115 츠루기
프로토타입J4M 센덴, J7W 신덴, J9Y 깃카, 나카지마 Ki-87, Ki-88^, 다치카와 Ki-94, Ki-201, Ki-200 슈스이, R2Y 케이운, J6K 진푸^
페이퍼 플랜A8M 리후쿠, G10N 후가쿠*, 와쿠세이 함상폭격기, Ki-162
대잠 초계기Q1W 토카이
*엔진만 몇기 만들어졌다. ^목업으로만 존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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キ51 九九式襲撃機
Mitsubishi Ki-51 'Sonia'

1 제원

분류 : 단발 복좌 급강하폭격기
전장 : 9.21m
전폭 : 12.10 m
주익면적 : 24.20 m²
자체중량 : 1,873 kg
최대이륙중량 : 2,798 kg
엔진 : 미쓰비시 하 26-2 공랭 복렬14기통 성형엔진 940마력(해군명 즈이세이)
프로펠러 : 스미토모-해밀턴 유압식가변핏치 3시
최고속도 : 424 km/h (고도 3,000m 기준)
실용상승한도 : 8,270 m
상승률 : 5000m까지 8분 47초
항속거리 : 1,060 km (연료 608리터 탑재시)
무장 : 주익내 7.7mm 기총(89식 고정기관총)2정(기존)
주익내 13mm기관포[1](호-103)2정(후기형)
후방 7.7mm선회기총(테4)1정
폭장 : 최대 200kg(250kg 하나는 특공용)
이륙활주거리 : 165 m
착륙활주거리 : 276 m

2 개요

일본군태평양 전쟁기간에 육군에서 사용한 급강하폭격기.[2]
당시 개발 및 제조는 미츠비시에서 담당했는데 파생형으로 99식 군 정찰기가 있다. 이것도 역시 Ki-51이라는 명칭을 가지고 있다.

'습격기(襲擊機)'란 것은 적 지상시설(비행장이나 건물) 및 지상부대에 대해 저공으로 폭격 및 기총소사를 가하는 목적으로 개발된 일본 육군의 군용기로, 전투기폭격기의 중간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기준으로 보자면 급강하폭격기,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근접항공지원공격기에 해당하는 특성을 지니는 것이 특징이다. 당시의 다른 국가들의 군용기와 비교하자면 독일Ju87소련IL-2에 비교할 수 있다.

단 본 기종 외에는 습격기란 말이 쓰였던 것은 Ki-93과 Ki-102 뿐이었는데 Ki-93은 설계중 종전을 맞이했고 Ki-102는 야간전투기로서 방공역할만을 행하였기에 오리지널의 습격기는 99식 습격기 뿐이었다.

1937년 육군성은 지상부대와의 전투협력용 항공기의 필요성에 의해 미츠비시에 키 51 시제기 제작을 명령하여 오오키 하시노스케(大木喬之助) 기사를 중심으로 한 미츠비시의 개발진들은 피스톤 엔진인 미츠비시 하 26 2형을 채용한 단발복좌 형식의 단엽기를 설계하였다.

시제기는 고정각을 가진 양 날개에 7.7mm 기총 2정 및 뒷 좌석에 선회식 7.7mm 기총 1정이 배치되었다. 그러나 날개 내부의 7.7mm 기총은 실전투입 후에 위력이 떨어진다는 점이 지적되어 이는 전쟁 후반기에 13mm 기총으로 교체되었다. 폭탄은 당초 200kg까지 탑재가 가능했지만 그 무게한도를 넘길 경우 비행성능이 저하되는 점 때문에 한도중량을 달지는 않았다. 폭탄은 양 날개 아래에 탑재했다.

또 저공비행 임무의 특성상 지상부대로부터 반격을 받을 가능성에 대비해 당시 일본항공기로는 보기 드문 6mm 방탄장갑을 엔진 밑, 조종석 하단, 동체 아랫부분에 장착하였다.[3]

시제기의 비행심사 결과, 성능 및 취급에서는 양호한 판정을 받았지만 기체의 진동과 착륙시 불안정한 문제로 양산형에는 주익 전방에 슬랫을 달아 문제를 해결하였다. 또 일부 기체는 생산과정에서 장비를 약간 변경하여 군용 정찰기로도 개조되었는데 이를 99식 군정찰기라고 불렀다. 이는 시계를 넓히기 위해 기체에 비해 캐노피가 크게 설계되었고 방탄장갑이 제거되어 카메라가 장착되었다.

1941년에 미츠비시 하 112 엔진[4]으로 교환하고 랜딩 기어를 고정식에서 인입식으로 바꾼 99식 습격기의 변형인 키 71이 만슈 비행기에서 만들어졌지만 기대에 부응할 만큼의 성능향상을 보이지 못해 채용되지 못했다.

99식 습격기는 중일전쟁 말기부터 태평양전쟁 초반기에 이르기까지 사용되었으며 중국대륙과 남방전선에서 널리 활용되었다. 99식 습격기는 D3A 99식 함폭처럼 고정식 랜딩 기어여서 밀림에서도 튼튼했고 주익에 집중된 기총 덕에 정비 및 실용성이 뛰어나 불시착하거나 황무지에 긴급착륙해도 안정된 착륙성능 때문에 육군의 진귀한 보배로 취급되었다.

그러나 전쟁 말기에 이르자 일본군 병기의 전형적인 문제인 구식화를 피할 수 없게 되었는데 적 전투기에 비해 속력이 낮아 피해가 속출했다.[5] 또 다른 항공기에 비해 폭장량이 적고 항속거리가 부족하여 전면적인 전투에는 어려움이 뒤따랐다. 그래도 그 신뢰성 탓에 종전때까지 육군의 주력기로 활약하였지만 전황의 악화로 인해 동체 하부에 폭탄 250kg씩을 달아 카미카제로 소모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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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중순양함 HMS Sussex에 들이 받아 먼지만 남은 Ki-51(...). 하필이면 때려 박은 곳이 방어력이 가장 튼실한 흘수선 부위였다.
아무런 피해를 못준 허무한 공격이었지만 심지어 이 공격은 일본의 항복선언이 이루어지고 나서 감행된 목숨만 날린 공격이었다.

당초 생산은 미츠비시가 맡아서 1,472기를 생산했지만 1944년 이후부터는 타치카와 육군비행공창에서도 1,000기가 생산되어 개조된 군 정찰기를 포함해 총 2,385기가 생산되었다. 전후 99식 습격기는 해외에서 활용되기도 했는데 특히 국공내전 당시의 중국인민해방군과 인도네시아 독립전쟁때의 인도네시아 인민군에서도 이용하였다.[6]

99식 습격기가 유명해진 것은 미국의 비행가 찰스 린드버그가 탄 P-38 라이트닝기와 싸웠던 것으로 린드버그의 윙맨 2기의 P-38을 상대로 선회전으로 빅엿을 선사하던 99식 습격기 1대가 린드버그의 공격으로 격추되었던 일이 있었다.
  1. 육군은 10mm가 넘으면 기관포라고 불렀다. 반면 해군은 20mm까지를 기총이라 불렀다.
  2. 일본군 육군급강하폭격기습격기라 불렀다.
  3. 이와는 대조적으로 태평양전쟁 초기 해군기는 방탄 등 방어력에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가면 저 6mm 장갑으로도 부족하지만 아예 없는 것보다는 쬐~금 낫긴 하다.
  4. 해군명 킨세이 62형. 혜성의 후기형이 장착한 그것
  5. 슈투카도 이런 문제 덕분에 이미 영국 항공전에서 뼈아픈 대가를 치른 바 있었다.
  6. 특히 인도네시아 공군 중앙 박물관에는 이 기체와 전투기 하야부사도 함께 보존, 전시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