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종

賈琮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자는 맹견(孟堅).

동군 요성 사람으로 효렴으로 천거되어 경현의 현령이 되었다가 184년에 교지자사부에서 주둔병이 반란을 일으킬 때 교지자사에 임명되어 관청에 도착해 반란을 일으킨 까닭을 물었는데, 모두가 세금을 거두는 것이 지나치게 많아 살아갈 수 없어 도적이 되었다고 했다. 가종은 이를 듣고 백성들에게 알려 그 생업을 편안하게 하면서 흩어진 사람을 불러 부역을 면하게 해 회복시켰으며, 백성들이 이로써 편안해지자 그를 칭송하는 노래를 불렀다.

그 노래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부(賈父)가 늦게 오니 우리들이 먼저 모반하게 되었는데,
지금 깨끗하고 평화로운 것을 보니 감히 다시 반하지 못하겠네.

3년 동안 교지자사를 맡으면서 인근 13주에서 성적으로 으뜸으로 올려 후의랑이 되었으며, 이후 황건적이 다시 토벌되어 병사들이 지치면서 군현의 수탈이 가혹해 도둑질이 만연했다. 그래서 자사의 녹봉 2천 석을 줄이면서 청렴한 유능한 관리를 가려내자 기주자사가 되었으며, 옛 예법에는 수레를 대동해 붉은 휘장을 드리워 주의 경계에서 맞이해야 했지만 가종은 임지에 이르자 "자사는 먼 곳을 널리 들어야 하며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는데, 어찌 휘장을 드리워 나를 막는 것이오?"라고 하면서 앞을 가로막은 자들에게 휘장을 걷어 올리도록 명령했다.

사람들이 가종의 풍채를 보고 그를 공경했고 과거의 잘못을 감춘 관리들은 스스로 인수를 두고 관직을 버렸으며, 오로지 영도 현장인 동소와 관진 현장인 황취만 관직을 버리지 않고 가종을 기다렸다. 그 후 뭇 사람들은 가종을 따랐으며, 영제가 붕어하자 대장군 하진이 표를 올려 가종을 도료장군에 임명했지만 관직에 있던 중에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