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서』 「정곽동류장류전(程郭董劉蔣劉傳)」 | |||||
정욱 | 곽가 | 동소 | 유엽 | 장제 | 유방 |
董昭
(156~236)
1 개요
후한 말과 삼국시대의 인물이자 위나라의 모사이며, 삼국지의 등장인물이다. 제음군 정도현 사람으로 자는 공인(公仁).
2 정사
처음에는 원소군의 참군사로 시작했는데 풍문을 흘리는 적의 계책을 족족 밝혀내어 미리 예방을 하고 교역을 하는 척하면서 적을 이간시켜 토벌하는 등 많은 공을 세워 위군태수까지 오르나 그의 동생 동방이 장막휘하에 있어 원소와 장막의 사이가 나빠지자 원소는 동소를 죽일 생각을 한다. 하지만 그 때 동소는 헌제를 뵙기위해 하내까지 갔다가 장양에게 붙잡히게 되자 동소는 장양에게 항복한다.
194년 헌제가 이각, 곽사에게서 도망칠 때 양표가 조조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연주에 있던 조조는 장양에게 길을 요청하는데 여기서 동소는 조조가 지금은 약해 보일지 몰라도 원소와는 비교도 안 될 천하의 영웅이므로 그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친해져야 하며 천자를 구하러 가는 조조가 우리를 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 길을 내주어 영원한 친분을 쌓아야 합니다."라고 하여 장양은 조조에게 길을 내주게 되며 결국 천자를 구출하는데 성공한다.
196년에 양봉, 한섬, 동승, 장양의 사이에 내분이 일어나자 조조는 거기서 동소의 계책에 따라 허창으로 천도를 하게 되며[1] 양봉과 한섬의 군대도 동소의 계책으로 박살나 원술에게 의지하러 간다.
198년에는 장양이 부하 양추에게 죽자 성을 지키던 설홍과 무상을 설득해 하내를 들어다 조조에게 바치고 그 공으로 기주목이 되었으며, 유비가 원술을 막으러 갈 때 유비를 보내면 안 된다고 말했다. 조조는 이미 보내서 어쩔 수 없다고 말하지만 결국 유비는 차주를 죽이고 반란을 일으켰으며, 조조는 후회하면서 유비를 처리하라며 동소를 서주목에 임명한다.
200년에는 위군태수가 되어 백마에서 동소의 군이 안량과 싸워 관우가 안량을 벨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으며, 또 답돈에게 항복한 원상을 토벌할 때 군량을 수송할 길이 막막하자 바다로 통하는 운하를 팔 것을 건의해 손실을 줄여 원씨가문을 멸족 하는데 큰 공을 세운다. 211년에는 조조가 위공에 오를 것을 건의하고 구석을 청하였으나 순욱의 반대로 오르지 못하고 213년에서야 추대에 성공한다.
219년에는 손권이 비밀동맹을 맺자고 하자 "손권 쪽에는 비밀인 것처럼 하되 우리가 이 일을 널리 알리면 관우가 스스로 군대를 돌려 조인에 대한 포위가 풀릴 것이고 관우가 죽은 것을 오나라의 책임으로 돌릴 수 있습니다"라고 하여 그 계책대로 하니, 손권은 관우를 배신하여 뒷치기를 한 셈이 되고 그걸 또 서황의 군대로 그 뒤를 후리니 관우는 결국 사로잡히게 되었다.
221년에 식읍 8백 호를 받고 시중으로 가게 된다.[2] 222년에 하후상이 강릉을 공격할 때 부교를 이용해 삼각주에 기병을 주둔시켰으나 동소는 지금 삼각주에 군사를 들이면 홍수의 가능성이 있어 위험하다고 하여 억지로 물러나게 하자 하후상의 기병들은 퇴각하다가 적에게 습격당해 많은 군사들을 잃어 사람들은 동소를 원망하였으나 그러나 열흘 후 강이 범람해 삼각주가 물에 잠기자 사람들은 다시 동소를 찬양하기 시작하였다.
224년에는 성도향후, 태상이 되었고 또 광록대부, 급시중으로 직위가 옮겨졌다. 조비를 따라 동쪽 정벌에 나갔다가 226년에 돌아와 태복이 되었다가 조예가 즉위하자 악평후, 위위가 되었으며, 232년에는 사도가 되었다. 236년 81살의 나이로 죽었으며 작위는 아들 동위가 이었다.
어림에 따르면 동소는 위무제(조조)의 중신이었으나 나중에 권세를 잃었다. 문제(조비), 명제(조예) 시대에 조정으로 들어다 위위가 되었다. 동소는 궁중 광대들을 후하게 생각해 주었다. 정월 초하루 큰 조회에서 광대가 동위위(동소)의 우는 얼굴을 흉내 내면서 옛날 태조(조조) 때의 일을 이야기했더니 온 좌중이 크게 웃었다. 명제(조예)는 슬퍼하며 기뻐하지 않았으며, 한 달 안에 동소를 사도로 삼았다.
본전에서는 이렇다 할 흠이 나오지 않지만, 소칙의 무릎을 베려 했다가 소칙에게 “내 무릎은 아첨하는 사람의 베개가 아니오.”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수의 삼국지 중 소칙전에 전한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천자의 사자로 맨 처음 등장해 30년 채식을 이야기하다가 조조에게 천자를 허도로 모시라고 말하며, 그 후에는 위공과 구석 때 등장을 해 장양과 원소의 부하였다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적벽 이후 조조의 세력이 반석에 오르는 시기 조조에게 위공(魏公)의 작위와 구석(九錫)의 특권 수여를 추진한다. 연의에서 순욱, 순유의 등의 절의파 모사들에게 죽음에 단초를 제공한 인물.
이렇다 보니 촉한 지지하는 이들에게는 두고두고 까인다. 위공추거에 의한 순욱 분사도 이 양반의 만행이다 보니. 조조가 죽고 조비가 황제의 즉위를 권유한 것도 이 양반의 탐욕에서 비롯된 것이라.
4 미디어 믹스
삼국지 12,13 |
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지력보다 정치가 높은 형태로 등장. 지력은 70대 후반~80대 초반,정치는 80대 초반~후반이라 꽤 쓸만하다. 문제는 조조 진영이라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는다는 것 정도인데, 단 정사를 반영하여 반동탁연합군 시나리오에서는 원소군 소속으로 등장하고 이때는 그럭저럭 쓸만하다. 원소군에서 동소보다 정치가 확실히 높은 장수는 저수 정도고 전풍과는 엎치락뒤치락하기 때문. 여담이지만 의리 상성 수치가 낮은 반골형 문관으로 등장한다. 초기에는 원소군 부하였다가 반목이 생기자 알아서 하야한 것으로 열전에 적혀 있다.
삼국지 9에서는 통솔력 29/무력 21/지력 79/정치력 87로 전형적인 문관. 혼란을 보유하고 있다.
삼국지10에서는 정치력 89로 원소군 1위이다가 한복군을 흡수하면 정치 90의 저수에 밀려 2위가 된다. 총 능력치는 통솔력 21/무력 27/지력 80/정치력 89/매력 60 에 특기가 8개인데 농업,상업,기술 특기를 모두 가지고 있고, 군사, 명사특기도 가지고 있는 지명도에 비해 엄청 쓸 만한 장수가 되었다. 물론 통솔이 21로 바닥이라 군사특기가 사기까지는 아니고, 지력이 80인데 이미 원소에겐 지력 90대의 전풍이 있기 때문에 참모로 쓸 일도 없으니 내정요원으로 쓰는 걸 제외하면 효용도가 높은 편까진 아니다. 물론 시나리오1에서 재야로 있을 때나 중간에 장양군에 있을 때엔 그야말로 약소군주들의 빛과 희망이 될 수 있다.
삼국지 11에서는 정치력이 82로 너프되긴 했지만 여전히 89의 저수, 87의 전풍 다음 수준이다. 보유 특기는 운반이다.
삼국전투기에서는 채식과 이름 때문에 소로 등장한다. 그리고 배고프니 되새김질(...)한 후 그것을 다시 먹는 위엄을 보인다.
창천항로에선 초반부에 등장이 없다가 적벽 이후 등장한다. 연의에서 처럼 조조에 대한 위공 작위, 구석 특권의 수여를 놓고 순욱과 대척점에 선다. 단순히 아첨꾼이라기 보단 새로운 국가 건설과 창업공신으로의 열망 등 신국가 건설 세력들을 상징하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동소와 대립으로 자신의 길과 정체성 그리고 조조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으로 곤혹에 찬 순욱은 더욱 중압감에 짓눌리게 된다. 이후는 모두가 아는 전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