耿臨
생몰년도 미상
후한 말의 인물.
현도 태수로 167년에 공손역이 현도 태수인 것으로 볼 때 그의 후임인 것으로 보이며, 168년에 고구려를 공격해 군사 수백 명을 죽였고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이 때 신대왕이 항복하기를 청하고 현도에 붙기를 청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시기에 편찬된 책인 당대조령집에서 예맥을 고구려로 지칭하고 있는데, 후한서 효영제기에 따르면 이 해 12월에 선비와 예맥이 유주와 병주를 공격했다는 기사가 있어 경림의 공격을 신대왕이 물리치고 선비와 연합해 반격했다고 추측되고 있다.
170년에는 신대왕이 요동을 공격하자 경림이 이를 격파했고 172년 11월에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공격했지만 청야전술을 통한 지구전으로 군대가 굶주림에 지치면서 퇴각했는데, 명림답부가 수 천의 정예 기병을 이끌고 추격하자 좌원에서 격파되었다.
그 이후의 기록이 없는 것을 봐서는 패전 이유로 죽었거나 유배되어 역사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