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대학

부산광역시에 존재하는 대학에 대해서는 경성대학교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1924년에 일본이 경성부(일제강점기 시절 서울특별시)에 세운 대학에 대해서는 경성제국대학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경성제국대학의 후신으로 1945년 10월 17일부터 1946년 8월 22일까지 미군정 하에 존재했던 대학이다. 이후 미군정에 의해 폐지된 후, 그 인적, 물적 자산은 국립서울대학교로 흡수되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되자, 경성제대의 조선인 직원과 학생들이 '경성대학 자치위원회'를 구성하고 현판의 ‘제국’이라는 글씨를 종이로 가려서 경성대학으로 보이게 하였다. 9월 10일에는 경성제국대학 명의의 마지막 졸업식이 있었다.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 법령 제15호

제1조 경성제국대학의 명칭은 자(玆)에 차(此)를 서울대학이라 변경함
제2조 공자묘경학원의 명칭은 자에 차를 성균관이라 변경함
제3조 본령은 1945년 10월 16일 야반에 효력을 생함

1945년 10월 16일
재조선미국육군사령관의 지령에 의하여 조선군정장관 미국육군소장 A. B. 아놀드

한편, 1945년 9월 미군은 한반도 이남을 점령하여 진주하면서 맥아더 포고령을 통해 일본제국 및 조선총독부가 행사하던 모든 정부 권한을 접수하였다. 그리고 10월 16일 미군정경성제국대학의 명칭을 서울대학(경성대학)[1]으로 변경하는 내용의 군정법령 제15호를 공포함으로써 경성제국대학은 공식적으로 '경성대학'으로 명칭이 바뀌게 된다.

1945년 말에 경성대학 명의로 예과 신입생을 모집하였는데, 경성대학 명의로 입학한 처음이자 마지막 세대. 정원식국무총리가 경성대학 예과 46학번이다.

1946년 8월 22일 군정법령 제102호 국립서울대학교설립에관한법령이 공포되면서 경성대학은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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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법령 본문은 '서울대학'으로만 되어 있으나 당시 서울=경성으로 인식되었고, 그동안 조선의 유일한 대학이었던 경성제대의 후신이라는 점 때문에 '경성대학'이라는 표현이 일반적이었다. 나중에 군정법령 제102호에서는 '서울대학'이 아닌 '경성대학'으로 명명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