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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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다이고 덴노 | 고무라카미 덴노 | 조케이 덴노 | ||
남조(일본)의 역대 덴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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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97대 덴노이자 남북조시대 남조의 2대 덴노.
96대 고다이고 덴노의 아들이며 아노 랜시 소생이다. 1333년 고다이고 덴노의 개혁 정치를 실시하게 되자 기타바타케 아키이에와 함게 무쓰 국으로 이동하여 동북 지역의 경영을 맡았다. 하지만 약 2년후 쇼군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반란으로 건무신정이 무너지자 동북 지역의 보호에 힘썼지만 전황이 악화되면서 고다이고 덴노가 도피한 요시노로 도피하였다. 1338년 동생 무네요시 친왕, 무네나가 친왕, 기타바타케 지카후사, 유키 무네히로 와 함께 이세 국 오미나토로 이동하고 다시 무쓰 국으로 향하였지만 폭풍우로 인하여 요시노로 다시 돌아왔다. 이듬해 고다이고 덴노의 양위를 받고 덴노로 즉위하였다.
1348년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군대에 의해 요시노의 궁이 불에 타자 야마토 국 아노로 거처를 옮겼다.
1350년에서 1353년 사이에 북조와의 아시카가 다카우지와 동생 아시카가 다다요시 형제의 내분이 일었는데 남조까지 포함하는 전국적인 항쟁으로 번졌다. 아시카가 다카우지는 아시카가 다다요시를 치기 위하여 1351년 남조와 일시적으로 강화를 맺었다.
고무라카미 덴노측에서는 북조가 소유하고 있는 삼종신기를 다시 되돌려주고 정권을 반납하는 것을 조건으로 걸었다. 이로 인하여 북조의 연호인 간노는 폐지되고 북조 3대 덴노인 스코 덴노와 나오히토 황태자도 폐위되었다. 이 조건으로 인하여 남북조도 일시적으로 통일되었다.
이듬해 2월 전세를 가다듬어 교토로 진군한 다음 북조의 고곤 덴노와 고묘 덴노, 스코 덴노와 나오히토 황태자를 납치하여 아노로 끌고갔다. 그 와중에 아시카가 다카우지의 반격으로 다시 아노로 후퇴하였다.
북조는 교토를 탈환한 다음 연호를 다시 부활시키고 남북조통일은 4개월만에 다시 분열되었다. 이후 고무라카미 덴노는 요시노와 곤고지 등의 각지를 전전하면서 1368년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