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초, 생시몽, 푸리에, 오언 등이 주장한 사회주의 사상으로 유토피아 사회주의라고도 한다. 인도주의와 사회주의 정책에 의한 재산의 공유와 부의 평등 분배를 자각적이고 자발적인 호응으로 실현할 것을 이상으로 한 사상이다. 공상적 사회주의에 뒤이어 마르크스주의가 대두하였다.
원래는 마르크스가 자신의 이론을 그 전 사회주의 이론들과 차별화 시키기 위해 고안한 용어였다. 마르크스는 자신의 이론을 공산주의라 명명하고, 기존 사회주의를 가루가 되도록 깠다.
말년의 마르크스는 자신이 주장한 공산주의가 생각보다 히트도 못치고, 인지도도 떨어졌다고 생각했는지,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쓰지 않는 대신 과학적 사회주의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동안 디스 걸던 사회주의들을 공상적 사회주의라 부르게 되었다.
즉 공상적 사회주의는 마스크스 이전의 사회주의의 흐름들을 마르크스가 악의적으로 붙인 칭호라 할 수 있다. 마르크스가 주로 거론한 공상적 사회주의자들인 생시몽, 푸리에, 오언, 프루동들은 당시에 마르크스보다 인기 높은 거물들이었다. 마르크스에 의해 공상적 사회주의로 묶이기는 하지만 각자의 주장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이들은 전반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의 미래상(즉 이상향)에 대해서 꽤 자세히 이야기 하려 했다는 특징이 있다. 그렇기에 당대에 큰 인기를 누렸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회주의 사회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가고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을 치밀하게 공격했던 마르크스의 이론이 점점 더 각광받게 되었다. 결국 20세기 초반이 지나면 이들 공상적 사회주의 이론의 영향력은 현저히 떨어지고 마르크스 이론이 사회주의 운동의 주류를 차지하게 되었다.
마르크스에게 공상적이라는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이들이 단순한 몽상가였을 뿐이라고 선입견을 가지는 것은 부당하다고 볼 수 있다. 마르크스에게 공상적 사회주의자로 묶인 사람들 중에는 자신들이 사상에 따라 이상주의적 공동체를 건설하려 노력하거나[1], 협동조합 등 사회 단체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현실에 적용하려고 시도한 사람이 많았다.[2]
공상적 사회주의의 흐름은 지금도 공동체 운동, 협동조합 운동 등의 형태로 현재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