郭憲
(? ~ 220)
후한 말과 삼국시대 위나라의 인물. 자는 유간(幼簡).
서평 사람으로 군에서 이름난 씨족이었으며, 건안 연간[1]에 군의 공조가 되었고 주에서 추천했지만 나가지 않았다. 인후하고 독실해 군이 그에게 귀의했으며, 212년에 한수가 군대를 잃고 강중을 따라 돌아와서 의지하자 사람들이 대부분 한수를 취해 공을 세우고자 했지만 곽헌은 노하면서 그들에게 "사람이 곤궁해서 내게 왔는데, 어찌 그를 위험하게 하겠느냐?"라고 책망하면서 한수를 옹호하고 두텁게 대우했다.
이후 한수가 병으로 사망하면서 전락, 양규 등이 한수의 머리를 취해 조조에게 보냈고 그 머리를 잘라 공을 세운 명단에 곽헌의 이름을 넣고자 했지만 곽헌은 이름이 실리는 것을 거부하면서 "나는 오히려 그가 살아있을 때에도 그를 도모하지 않았는데, 어찌 죽은 사람을 취해 공을 바라겠는가?"라고 하자 양규 등이 그만뒀다고 한다.
조조가 한중을 공격하려고 할 때 무도에 있다가 양규 등이 보낸 한수의 머리가 도착했으며, 조조는 일찍이 곽헌을 이름을 듣고 있었지만 명단을 보고 그 안에 없는 것이 괴이해 양규 등에게 물어 그 사정을 알아냈다. 조조는 곽헌의 의로운 뜻에 의로운 뜻에 감탄해 양규 등과 함께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으며, 이로 인해 곽헌의 명성은 농우에 진동했다.
220년에 병으로 죽었고 정시[2] 초에 국가에서 그의 일을 가상히 여겨 그의 아들에게 관내후의 작위를 하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