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의 국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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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스타프 5세
Gustav V of Sweden
1 개요
생애 : 1858년 6월 16일 ~ 1950년 10월 29일(92세)
재위 : 1907년 12월 8일 ~ 1950년 10월 29일(42년)
2 일생
구스타프 5세(이하 구스타프)는 1858년 6월 16일 오스카르 왕자(후일 오스카르 2세)와 나사우의 소피아 사이에 출생했다. 구스타프는 어린 시절 몸이 허약했고, 마른 체형이었다. 1872년 9월 18일 큰아버지 칼 15세가 자녀 없이 사망함에 따라, 칼 15세의 동생 오스카르 왕자가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오스카르 2세가 되었다.
구스타프는 1876년 대학 시험을 치른 후 1877년 웁살라 대학에 입학한다. 그리고 1877년 스웨덴 아카데미의 명예회원으로 선출되었다. 구스타프는 군사 훈련을 받았고, 군 서열은 밑바닥부터 기어올랐다고 한다. 1877년 입대해서 1898년까지 수차례 진급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구스타프는 1897년 스톡홀름 전시회를 국제적으로 개최하였다.
3 결혼과 가정
1881년의 모습. 근데 늙어서는 위의 초상화처럼 쪼그라들었다.
구스타프 5세는 1879년 바덴의 빅토리아를 만나게 된다. 빅토리아의 선조들은 홀슈타인 왕조 출신인데, 구스타프가 소속해 있던 베르나도트 왕조가 스웨덴으로 들어오기 이전의 스웨덴 왕조가 홀슈타인-고트로프 왕조였기 때문에 구스타프와 빅토리아의 결혼은 구세대 스웨덴 왕조와 신세대 스웨덴 왕조의 결합으로 성징되었다. 이들 사이에서 구스타프, 빌헬름, 에릭이 태어났으며 장남 구스타프는 후일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되었다. 아내 빅토리아는 1930년 4월 4일 사망했다.
1907년 12월 8일, 오스카르 1세가 사망하자 구스타프는 구스타프 5세로 즉위한다. 구스타프 5세의 즉위는 광범위한 사회 변화, 기술 혁신, 과학적 혁명 등으로 상징되는 시기였다. 즉위하면서 동시에 노르웨이를 잃었다. 즉위 이후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립국으로 있었고 전쟁 진행 중 구스타프 5세가 위궤양 수술을 받았다. 1차 대전 직후 구스타프 5세는 공산주의의 확산을 막기 위해 개혁을 단행했고, 세계 대공황의 여파로 스웨덴 경제가 악화되었으나 구스타프 5세와 스웨덴 지식인들의 노력으로 1931년 경제 위기를 해소하는 데 성공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스웨덴은 중립을 선언하였으나, 구스타프 5세와 스웨덴 국민들은 나치 독일에 우호적이었다. 게다가 전쟁 이전인 1932년 10월 19일에 치뤄진 손자 구스타프 아돌프 왕자와 前 작센코부르크고타 공녀 시빌라의 결혼식에서 시빌라의 아버지 카를 에두아르트(1884년 ~ 1954년)가 제1차 세계대전 결과 작센코부르크고타 공작에서 폐위된 이후 나치 독일에 소속되었다는 사실이 알려져 큰 충격과 비난을 받았다.
4 사망
1950년 구스타프 5세의 건강이 악화되었다. 이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50년 10월 29일 세상을 떠났다. 왕위는 장남 구스타프 6세 아돌프가 이어받았다.
5 여담
스포츠에 관심이 많아서 스웨덴 스포츠 연맹을 결성할 정도였는데 그중에서 특히 테니스를 좋아하였다고 한다. 양성애적 기질이 있었는지 남자 연인 쿠르트 헤이즈비와의 스캔들이 있었으나 거액을 주고 무마한 스캔들이 터지기도 하였다. 영문 위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