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나르 노르달

파일:Nordahl.jpg
이름군나르 노르달 (Gunnar Nordahl)
출생 - 사망1921년 10월 19일 - 1995년 9월 15일
국적스웨덴
신체 조건185cm, 90kg
포지션스트라이커
소속 클럽 데거포스 IF (1940-1944)
노르쾨핑 (1944-1949)
AC 밀란 (1949-1956)
AS 로마 (1956-1958)
국가 대표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1942-1948) 33경기 43골

1 소개

스웨덴 축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이자, 북유럽 축구 역사에서도 가장 위대했던 플레이어 가운데 한 명. 요즘 축구팬들은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스웨덴 역사상 최고의 선수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즐라탄 이전에 군나르 노르달이 존재했다. 커리어의 전성기는 세리에 A의 AC 밀란에서 보냈으며, 세리에 A 역대 최다 득점 3위에 랭크되어 있다. [1] 또한 곤살로 이구아인 이전에, 세리에 A 한 시즌 최다 골 [2] 기록 보유자이기도 했다. 스웨덴과 북유럽, AC 밀란과 세리에 A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 가운데 한 명이었던 셈이다. 스웨덴 국가대표로서는 군나르 그렌, 닐스 리트홀름 등과 함께 ‘그레-놀-리(Gre-No-Li)’ 3인방이라 불리우며 당대 최고의 3각 편대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2 플레이 스타일

185cm라는 당시로서는 장신에 속하는 키를 가진데다가, 90kg의 육중한 체구를 가지고 있는 공격수로서, 전형적인 파워 포워드였다. 큰 키와 우월한 피지컬을 가진 공격수인데다가 스피드까지 빠른 편이어서, 당시 수비수들이 쉽게 막아낼 수 없는 유형의 공격수였다.

3 클럽 경력

3.1 스웨덴 리그

1940년 스웨덴의 데거포스 IF에서 데뷔하였고, 1944년에는 노르쾨핑으로 팀을 옮겨 활약했다. 두 팀을 거치며 알스 베스칸 4회 우승과 스웨덴 컵 2회 우승을 이뤄냈다. 그 과정에서 4차례의 리그 득점왕을 차지하기도 하였다.

3.2 AC 밀란, AS 로마 (이탈리아 세리에 A)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 맹활약한 것을 계기로, 1949년부터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하였다. AC 밀란 소속으로 2차례의 리그 우승과 4차례의 코파 이탈리아 우승을 이뤄냈고, 무려 5차례의 세리에 A 득점왕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유로피언 컵의 경우, 그가 AC 밀란에 있던 마지막 해인 1955/56 시즌에 처음 시작된데다가, ' 저승사자 군단 ' 레알 마드리드가 최초의 개최 시기부터 5년 연속 우승을 독식을 하였기에, 우승과 인연이 없었다. [3] 1955/56 시즌까지 AC 밀란에서 뛰면서 현재까지 구단 역대 최다 득점자로 랭크되어있고, AC 밀란 명예의 전당에도 등재되어 있다. 이후 1956/57 시즌 부로 AS 로마로 이적하였고, 1957/58 시즌까지 뛴 후 현역에서 은퇴했다. 두 팀을 거치면서 291경기에 나서 225골을 터뜨렸고, 현재까지 세리에 A 역대 득점 3위에 랭크되어 있다.

4 국가 대표 경력

국가대표로서는 1942년부터 차출되어 1948년까지 뛰었고, 33경기에 나서서 43골을 터뜨리는 등, 경기당 1골을 넘어선 괴물같은 득점력을 선보였다. 이러한 활약 속에서 1948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득점왕과 대회 우승을 동시에 이뤄냈고, 이것이 세리에 A의 AC 밀란으로 이적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당시 스웨덴의 규정 상, 프로 팀이 소속으로는 국가대표에 나서지 못하는 상황이었고[4], 프로 축구 팀인 AC 밀란으로 이적한 1949년부터는 국가대표로 차출되지 못하였다. 따라서 1958년 스웨덴 자국에서 개최된 월드컵에서 조국이 준우승하는 것을, 필드 밖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던 아쉬움이 있다.[5]

5 기록

5.1 스웨덴 리그

  • 알스 베스칸 우승 4회
  • 스웨덴 컵 우승 2회

5.2 AC 밀란

5.3 스웨덴 축구 국가대표팀

  • 1948년 런던 올림픽 금메달

5.4 주요 개인 수상

  • 스웨덴 알스베스칸 득점왕 4회
  • 이탈리아 세리에 A 득점왕 5회
  • 1947년 스웨덴 올해의 선수
  • 1948년 런던 올림픽 득점왕
  1. 291경기 225골. 1위는 실비오 피올라, 2위는 프란체스코 토티
  2. 35골
  3. 그가 떠난 이후 AC 밀란이 1957/58 시즌에 유로피언 컵 결승까지 진출하여 준우승을 이뤄냈던 점을 생각해보면, 그가 조금만 더 AC 밀란에 남아있었더라면 최소 준우승은 경험했을 가능성이 높다.
  4. 1948년에 그가 뛰었던 스웨덴 리그는 아마추어 리그로 취급되었기 때문에 올림픽 출전이 가능했다.
  5. 다만 군나르 그렌, 닐스 리드홀름 등 그의 스웨덴 국가대표 동료들은, 군나르 노르달과 같은 세리에 A의 AC 밀란 소속이었음에도 불구하고 1958년 대회에 참가하여 준우승에 기여하였다. 이 두 선수는 프로 축구 팀인 세리에 A의 AC 밀란에서 뛰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대표로 차출되었는데, 어떻게 가능했는지는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정확한 내용을 아는 사람은 추가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