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의 웹툰 작가에 대해서는 영조(작가)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와세다 대학교 재학시절
국가대표 시절 왼쪽인물은 김양중
파일:/image/022/2005/04/18/041929-2.jpg
국가대표 감독시절 당뇨병이 악화되어 투병중에 우승트로피를 받는 김영조.
이름 | 김영조(金永祚) |
생몰년도 | 1923년 ~ 1981년 3월 25일 (향년 59세) |
출신지 | 전라북도 익산시 |
학력 | 데이쿄 상업고등학교 - 와세다 대학교 |
포지션 | 포수 |
투타 | 우투우타 |
소속팀 | 아사히 군 (1944) 금융조합 야구단(1948~1950?) |
1 소개
대한민국의 야구인. 1940~50년대 한국 야구를 풍미했던 야구 원로다.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익산군(현 익산시) 출생. 새정치민주연합소속 국회의원 문희상이 그의 사위다.
2 일생
당시 야구 명문이었던 데이쿄 상고를 나와 와세다 대학교에 입학하였고, 일본인을 제치고 주장에 뽑힐 만큼 빼어난 기량과 리더십을 갖고 있었다. 1944년 아사히 군(요코하마 전신 중 하나)에 입단 하였으나,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었던 때라 리그가 중단되어 귀국한다. 해방 후 48년 금융조합연합(농협 전신) 야구부를 창설했고 한국전쟁 때 피란지에서 야구인들을 모아 친선경기를 갖는 등 한국야구의 명맥을 잇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그는 오른손 엄지손가락 절반이 사고로 잘려나간 어려움을 딛고 50년대까지 각종 대회 홈런상을 휩쓸었으며, 이영민 이후 박현식 이전의 최고 홈런타자로 이름을 날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