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철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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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 KGC인삼공사 No.32
김철욱
생년월일1992년 6월 25일
국적대한민국
출신지중국 하얼빈
출신학교제물포고 - 경희대
포지션센터
신장204cm
체중105kg
프로입단2016년 드래프트 전체 8번 (KGC)
소속팀안양 KGC인삼공사 (2016~)

1 소개

대한민국농구선수. 중국에서 대한민국으로 귀화했다. 김철욱이라는 이름의 유래는 딱히 없다고 한다. 중국에서의 이름은 우띠롱(오적룡)[1].

2 선수 생활

2.1 아마추어 시절

초등학교 3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 농구가 좋아서 한 건 아니고 노는 걸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다른 애들보다 키가 컸고 부모님이 그냥 놀 거면 농구라도 배우라며 농구교실을 보냈다. 거기서 하루 두 시간씩 친구들이랑 농구를 하며 놀았다고 한다.

노는 게 좋아 시작한 농구였고 중학교에 진학해서도 김철욱의 꿈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공부를 잘해서 명문 고등학교, 대학교에 가는 것. 농구는 좋은 대학을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공부가 아닌 농구에 눈을 떴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중학교에 갔을 때 그 때 키가 186cm였다. 어렸을 적엔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교 가는 게 목표였는데 농구 특기생으로 학교를 가면 시험 점수가 플러스가 되기 때문에 중간에 농구전문중학교로 전학을 갔다. 그러면서 점점 농구하는 시간이 많아지고 공부하는 시간은 줄어들면서 공부는 못하고 농구는 잘해졌다.

결구 김철욱은 공부를 포기하고 농구로 프로에 가서 좋은 선수가 돼야겠다고 결심했디.

농구를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기량도 빠른 속도로 올라갔다. 중학교 2학년 때는 우리나라의 유소년 팀 격인 중국 프로리그 3군에 스카우트 되며 실력을 쌓아갔다.

김철욱이 한국에 오게 된 건 그의 나이 18세 때로 2009년 2월 28일이라고 한다. 경희대 최부영 전 감독(현재 경희대 농구부장)과의 인연이 그 시작이었다. 중국 연변대학 총장을 통해 최부영 감독을 알게 됐는데 초장과 최부영 감독이 친한 사이였기 때문이다. 최부영 감독을 중국에서 한 번 만나고 김철욱이 혼자 운동하는 모습과 개인기가 담긴 영상을 경희대에 보냈다. 이후 ‘한국에 와서 농구해도 괜찮겠냐’라는 제안이 왔다.

하얼빈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17년을 자란 김철욱이 단번에 한국행을 결정하기란 쉽지 않았지만 한국행에 긍정적인 가족들의 반응과 농구를 통해 성공하고자 하는 욕심이 그를 움직였다.

부모님과 선생님 모두 다 찬성했고 혼자 멀리 가는 건 마음 아파했지만 운동선수 출신이라 이해했다. 농구로 빛나기 위해 인생에 발전이 될 한국행에 승낙했다.

어린나이임도 현실적인 판단이었는데 사실 중국에선 농구선수로서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중학교 3학년때 키가 2m였음에도 키가 작아 스몰포워드를 봤었다. 중국에서는 적어도 210cm는 돼야 안쪽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행을 결정한 김철욱은 군산고에 입학했다. 하지만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더 많은 경기 수와 출전시간을 보장한 제물포고로 전학하게 된다. 제물포고에서 김철욱은 한국농구에 빠르게 적응하며 서서히 자신의 이름을 농구팬들에게 각인시켰다. 높이와 정확한 중거리 슛을 모두 갖춰 상대로선 여간 막기 까다로운 게 아니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김철욱은 고교 마지막 대회에서 뜻하지 않는 불운을 맞는다.

경복고와의 첫 경기에서 레이업을 하기 위해 점프하고 착지하는 순간 발에서 ‘뚝’하는 소리가 나왔고 바로 병원 가서 검사를 받은 결과 왼쪽 네 번째, 다섯 번째 발가락이 다 부러졌다는 결과가 나왔다.

대학 진학을 코앞에 남겨놓고 당한 부상으로 이후 김철욱은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기나 긴 재활과정을 거치게 된다. 김철욱은 대학 1학년이 끝나갈 때쯤에야 지긋지긋했던 발가락 부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하지만 대학 4학년을 앞두고 이번에는 동계훈련 때 상대편이랑 무릎을 박아서 무릎 부상을 당하며 오랜 기간 재활에 몰두하게 된다.

이후 4학년이 끝나고 프로진출을 하지 못하고 경희대에서 1년의 시간을 더 보내게 되었다.

부상 회복후 기량회복이 원활하지 않아 몸상태에 관해 꾸준히 의문이 제기되었다. 최종적으로는 이종현-박인태 이후 센터 포지션으로는 3번째, 드래프트 전체 순위로는 8순위로 KGC 인삼공사에 지명되었다.

3 트리비아

  • 한국말을 매우 잘하는데도 한국말을 배워본적이 없다고 한다. 본인 말로는 언어능력에서는 중국에서 언어대회나 국어시험에서 1등을 차지했을 정도로 언어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이라고 했다.
  • 2011년 귀화한 후 한국 국적으로 대표팀에 뽑히고 싶다고 한다.
  1. 이 항목은 우띠롱로도 넘어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