藍采和
(? ~ ?)
중국 도교 팔선 중의 한명의 선인으로 불리는 인물로 남당서의 기록에 따르면 당나라 말기의 은사로 천보 연간(742 ~ 756년)에 활동했으며, 여름에는 솜옷을 입거나 겨울에는 얼음과 눈 위에 누워 잠을 잤다고 한다. 장안에서는 답답가(踏踏歌) 남채화라 외치면서 신선의 뜻이 담긴 노래를 불렀으며, 남채화에게는 많은 아이들이 따라다녀 아이가 자라 노인이 되었을 때 남채화를 봤지만 여전히 그 얼굴이었다고 한다.
6촌 길이의 요대를 하면서 한쪽 발에는 신발, 한쪽 발에는 맨발을 하면서 거지의 형상으로 돌아다녔으며, 매일같이 음식점에서 동냥을 하면서 손에는 커다란 산척에 달하는 상을 들고 다녔다고 한다. 술을 먹을 때 항상 꽃을 들면서 취하면 노래를 부르다가 엽전을 꽨 꾸러미를 얻으면 달려가서 궁핍한 사람들에게 줬다고 하며, 땅에 신발, 의삼, 요대, 박판만 남겨 홀연히 학을 타고 날아갔다고 한다.
원나라 때 잡극 한종리권도탈남채화에는 남채화는 예명으로 본명은 허견(許堅)이라고 하며, 이왕에게 간언을 했다가 충언을 받아들이지 않자 재앙을 당할까 두려워 변량으로 도주했다가 양원붕에서 남채화라는 이름으로 연예 활동을 벌였다. 종리권이 길을 지나다가 신선이 될 자질을 발견했는데, 종리권이 출가를 권했지만 세속의 생활에 미혹되었다.
종리권이 여동빈을 불러 현지의 수령으로 변신해 수청을 들게 하자 관가로 갔다가 지각을 했다는 이유로 곤장 40대를 칠 것을 명령하자 종리권이 출가할 것을 조건으로 구했다고 한다. 이후 아내가 환속할 것을 권해도 듣지 않았는데, 30년이 지나던 어느 날에 늙은 아내와 동료들을 만나자 무대에 서줄 것을 종용하자 옛날의 추억을 더듬으면서 자신의 무대 복장을 집어들었다가 종리권, 여동빈이 나타나서 훈계하자 깨달음을 얻어 그들을 따라 승천했다는 얘기가 있다.
팔선 중에서 남성인지 여성인지에 대해 설이 분분하다. 여성으로 보는 견해도 존재하지만, 여장을 한 남성이라는 설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