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대 덴노 | ||||
119대 | → | 120대 | → | 121대 |
고카쿠 덴노 | 닌코 덴노 | 고메이 덴노 |
왕호 | 닌코 덴노 (仁孝天皇) |
이름 | 아야히토 (恵仁) |
생몰년 | 1800년 3월 16일 ~ 1846년 2월 21일 |
아버지 | 고카쿠 덴노 |
어머니 | 가주지 다다코 |
배우자 | 다카쓰카사 쓰나코 |
재위기간 | 1817년 10월 31일 ~ 1846년 2월 21일 |
이전 덴노 | 고카쿠 덴노 |
다음 덴노 | 고메이 덴노 |
닌코 덴노는 고카쿠 덴노의 4남으로 이름은 아야히토(恵仁)이다. 닌코 덴노의 모친은 가주지 다다코(勧修寺 婧子)이지만, 양모는 고모모조노 덴노의 첫째 황녀이자 고카쿠 덴노의 황후인 요시코(欣子) 내친왕(内親王)[1]이다. 닌코 덴노는 1809년 3월 24일 요시코 내친왕의 양자로 들어가 후에 태자에 책봉되었고, 1817년 10월 31일에 고카쿠 덴노에 이어 120대 덴노에 즉위한다.
닌코 덴노는 황족이나 공가(公家)[2]의 자제를 위한 교육기관을 설치하고자 하였다. 부케덴소(武家伝奏)였던 토쿠다이지 사네카타(徳大寺実堅)[3]에게 막부와의 절충 역할을 맡겼다. 부케덴소는 무로마치 막부 시대에 설치된 조정의 직책으로 무가의 주청을 조정에 알리는 역할을 하였으며, 공가(公家)가 그 직책을 맡았다.
닌코 천황이 계획하였던 황실 내 교육기관 설치는, 그가 사망한 후 유지를 이어받은 고메이 덴노 때 이루어졌다. 고메이 덴노는 교토고소(京都御所)에 공가 자녀 교육을 위한 학교인 교토 가쿠슈인(京都学習院)을 설치하였다. 가쿠슈인은 도쿄로 옮겨져, 1877년 메이지 덴노의 칙명으로 황족과 화족을 위한 관립학교인 가쿠슈인으로 발전한다. 패전 이후에는 사립학교로 전환되었고, 평민에게도 개방되었다.[4]
닌코 덴노는 1846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그의 묘는 교토 시 히가시야마(東山) 구에 있는 센뉴지(泉涌寺, 천용사)에 있다. 아들 고메이 덴노가 뒤를 이었다. 한편 닌코 덴노의 딸 카즈노미야 치카코 내친왕은 도쿠가와 이에모치 쇼군에게 시집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