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뉴스

1 대한민국 정부에서 제작한 관제 뉴스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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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 곳(한국정책방송원 e-영상역사관)

대한민국 정부 산하 국립영화제작소에서 만들던 극장상영용 기록영화(뉴스)로, 전국의 모든 극장에서 강제 상영해야 했다. 필름은 2주에 한번씩 바뀌는 방식으로 진행하였으며, 해방 이후부터 1994년 12월까지 2천회 이상 상영을 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사회적으로 TV 보급률이 상당히 낮았고, 라디오 마저도 보급률이 낮은데다가 뉴스마저도 여의치 않았기 때문에, TV 없는 사람들이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기 위한 목적으로 제작되었다.

사실 이런 식의 기록영화 제작은 나치 독일에서 가장 활발하였으며(독일 주간 뉴스(Die deutsche Wochenschau)가 대표적임), 2차 세계대전 시기 서구권에서는 위와 같은 이유로 많이 만들어 상영했고 초기 TV 뉴스 프로그램의 형태가 제대로 정립이 안되었을 시절에도 비교적 인프라가 갖추워져있었기에 방송국에서 틀어주었다. (특히 미국은 할리우드의 인프라를 이용하여 많이도 찍어 냈다.) 다만 전쟁 이후 1960년대에 리포팅 형식의 뉴스 프로그램이 등장하면서 사양길에 접어든 서구권과는 달리 동구권과 일본 등에서는 기록영화를 계속 제작하였는데, 한국도 그와 비슷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다.

초창기 일본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인지 이름부터가 '대한뉴스'다. (...) 1940년도에 상영을 개시한 일본측 기록영화의 이름이 바로 '일본뉴스(日本ニュース)이며, 태평양전쟁이 끝난 후에 한 차례 개편을 거쳐 1952년까지 나왔고 이후에 아사히 신문과 제휴해서 아사히 뉴스로 명칭을 바꿨다가 1976년에 제휴관계가 끊고나서는 다시 일본뉴스로 복귀했고 1992년까지 계속 제작되었다.[1] 여러 뉴스영화가 제작되었는데 1997년까지 제작된 요미우리 국제뉴스와 1992년까지 제작된 마이니치 뉴스가 대표적이고 토에이도 아사히 신문사랑 손을 잡고 뉴스영화를 제작한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TV가 대중화 된 시기가 1960년대이고 리포팅 형식의 뉴스 프로그램이 완전히 정착된게 1970년대 임을 감안하면 꽤나 오래 제작되었다. 조선총독부 시절에는 당연히(?) 일본이 제작한 뉴스영화를 틀어주었고, 해방 이후에는 미군정 하에서 '조선시보'란 이름으로 제작하다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에는 '대한전진보'란 이름이 되었다.

6.25 이후인 1953년부터 비로소 대한뉴-스라는 타이틀을 달고 제작되기 시작하여, 공식 기록으로는 이 타이틀이 쓰인 1953년부터 1994년까지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다.

1960년대 초반에 표기법을 바꾸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대한늬우스이다. 그러나 이러한 표기법은 오래가지 않아 이후 다시 '대한뉴우스'로 돌아왔고[2] 1980년대 이후로는 대한뉴스라는 타이틀을 계속 사용했다.

타이틀이 현대적으로 바뀜과 동시에 제작인프라 또한 1972년부터는 컬러 필름 제작을 단행하게 된다. 이 때부터 한국에서도 컬러 뉴스를 보기 시작했다는 얘기. 얼씨구나... 하지만 당시 TV는 아직도 흑백의 길을 걸었다. 유신시절이나 땡전뉴스 시절에는 독재정부 선전수단이란 비판을 많이 받았지만[3] 의외로 민주화 이후인 1994년까지 제작되었다. 폐지 이유에 대하여는 독재 선전수단에 대한 비난여론으로 폐지되었다기보다는 국립영화촬영소의 쇠락과 함께 현대적인 지상파 방송뉴스란 대체제로 인해 보는 사람이 별로없다보니 자연도태된 것에 가깝다.[4] 그런걸 감안해도 상당히 늦게까지 제작된 셈이지만,

1994년 12월 공식적으로 폐지되었고, 국정홍보기능은 이듬해 3월 케이블TV체제가 출범하면서 개국한 한국정책방송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그 후신인 KTV에서 잊을 만하면 그 옛날 대한뉴스를 한번씩 틀어준다. 그리고 당연히 인터넷으로도 볼수있다. e-영상역사관 심지어 인터넷으로는 어른의 사정상 당시 미공개된 것들까지도 볼 수 있다!

참고로 TV방송사에서 트는 195-70년대 영상자료 중 대다수가 대한뉴스를 편집해서 틀어준다고 보면 된다. 당대의 영화 필름과 TV방송 프로그램의 자료보존이 잘 안되었고 특히 TV프로그램은 그 정도가 매우 심한데[5]대한뉴스는 정부 산하 기관에서 제작한거다보니 꼬박꼬박 자료를 보존했기 때문에 당연히 50-70년대 영상자료를 틀려면 대한뉴스를 편집해서 틀수밖에 없어지게 된것이다.

한국어 위키백과에서는 3분 보도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었으나, 2011년 어느 익명의 편집자가 날조한 허위 사실로 확인되었다. 현재는 해당 내용이 모두 삭제되고 정상적인 내용으로 복원된 상태.

여담으로 맹관영, 故강찬선, 박종세, 김승한, 강영숙 등 당대 내로라하는 아나운서들이 대한뉴스를 거쳐가기도 했다.

해외 소식도 전달하였는데 1958년도 뉴스에서 유니버살 영화사 제공이라는 자막이 나오는데 영상을 자체적으로 입수할 사정이 안되다 보니 tv프로그램 제작도 담당하고 있던 유니버셜사의 영상을 수입한 모양.



1994년 12월에 마지막으로 제작, 상영된 제 2040호 대한뉴스.

2 2009년 대운하사업 홍보목적으로 제작된 영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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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극장에서만 상영되었다.

사실상 홍보물에 "대한늬우스"라는 제목이 붙은 것일 뿐인데, 문제는 여러가지 최신 마케팅 기법이 범람하는 마당에, 굳이 극장에서 상영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다. 누굴 바보로 아냐는 비판이 이는 가운데, 제목마저 "대한뉴스"이니, 이래저래 비난을 면키는 힘들 듯. 게다가 여성비하 발언이 있다고 하여 논란이 되기도 했다...
  1. 90년대 초반 NHK BS-1에서 가끔 시간때우기 용도로 틀어주는 경우가 있었다. 영상실록 비스무레하게
  2. 이 당시 외래어 표기법이 뭔가 좀 골룸한데, 원어 발음을 살린답시고 오토바이를 '오오토바이' 모터싸이클이 아니고? 도쿄를 '토오꾜오'근데 이건 오히려 음소적인데..., 뉴욕을 '뉴우요오크(...)'로 적던 시절이다. 사실 지금도 외래어 표기법은 음성적 외래어 표기을 추구하기도 한다. 일본어가 대표적.
  3. 실제로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이런 골때리는 대한늬우스가 제작된 바 있다 # 애초에 제작주체가 주체다보니 군사독재 시대에는 정권의 나팔수 노릇을 할 수 밖에 없었다.
  4. 실제로 1992년 미녀와 야수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김미정 선수가 유도 금메달을 땄다는 소식을 3일 뒤 극장에서 보았다는 사례가 있다! 이미 엊그제 9시뉴스에서 다루고 지나간 소식을 3일 후에나 새 소식으로 극장에 거는 시점에서 이미 시대에 뒤처진 미디어였던 것. 이 뭥미...
  5. 195-60년대의 경우에는 일부 프로그램이나 뉴스필름을 제외하면 남아있는것이 없다시피하고 1970년대와서 보존되는 프로그램이 생겼지만 대다수의 프로그램은 테이프 돌려쓰기로 보존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