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개요
2014년 1월 설립된 전국 최초의 청소년 이공계 학술단체이다. 영문명은 Korea Youth Math Association으로, 약자는 KYMA(키마?)이다.
특목고 및 전국단위 자사고 9개의 연합 동아리 체제가 그 전신으로, 2013년 말부터 소속 학교를 늘려 나가다가 2014년 1월 대한청소년수학회라는 이름으로 정식 단체가 되었다.
청소년 단체로서는 특이하게 국세기본법상 법인으로 보는 단체로 등록되어 있다.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 공식 웹사이트 (현재는 열리지 않고 있다.)
2 설립 목표
본 단체는 수학에 관심을 가진 고등학생들이 자유로운 참여를 통해 입시 등의 현실적인 장벽에 의해 제한되는 수학 활동에서 벗어나 다양한 컨텐츠에 참여함으로써 수학에 대한 열정을 꽃피우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1]
헬조선에서 수학이라는 과목이 절망적인 난이도를 자랑하며 많은 고등학생들을 수포자의 길로 인도하는데, 이런 중생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뜻에서 설립되었다. 정관 그대로 입시에서 벗어나 수학이라는 학문을 자유롭게 탐구하자는 취지로 설립되었다. 대한민국의 고등학생이라면 수학을 최대의 적으로 삼는 것이 당연한데, 사실 수학이라는 학문은 생각보다 재밌다!너 누구야 기본적으로 수학의 대중화를 지향하며, 청소년들이 수학과 관련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3 역사
3.1 전신
2013년까지 용인외대부고, 청심국제고, 민족사관고, 대원외고, 상산고, 하나고 등 9개 학교의 연합 동아리 체제로 존재하였다. 직접 만나서 학술 교류 활동을 하지는 않았고 각 동아리에서 연구자료를 제작하고 활동내역을 정리한 자료를 비교해 보는 정도에 그쳤으며, 학술 "단체"의 성향은 띠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2013년 말, 당시 용인외대부고 동아리의 부장의 주도 하에 정식 단체 설립을 위한 준비가 시작된다. 대부분의 학교들은 정식 단체로의 전환에 찬성하였고, 단체가 설립될 경우에 기꺼이 합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3.2 설립 및 초대 회장
2014년 1월, 대한민국 최초의 청소년 이공계 학술단체라는 타이틀을 따내고 대한청소년수학회가 정식으로 설립된다. 설립 직후 약 200명의 가입자가 몰리며 폭발적으로 성장하는데, 이러한 폭발적인 성장은 이후 수많은 청소년 단체들의 등장을 야기하게 된다.
초대 회장으로 당시 용인외대부고 수학동아리 M4의 부장이자 학회의 설립자였던 이인하가 취임하였으며, 2014년 8월까지 임기를 맡게 된다. 초대 회장은 한국과학기술한림원,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등의 후원을 이끌어내고 첫 번째와 두 번째 학술지를 출판하였으며 고등과학원에서 무료로(!) 제 1회 학술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등의 성과를 이루어냈고 학회를 성공적으로 안정화시켰다는 평을 받는다. 2014년 9월 퇴임을 알리며 회장직을 다음 기수에게 물려주게 된다.
무엇보다 이 시기에 학회가 공식적으로 법인 단체가 되면서 보다 정당성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
3.3 2대 회장
2014년 9월, 제 2대 회장으로 상산고등학교 정묵권이 취임한다. 2대 회장은 2014년 상반기까지 당시로서는 회장 바로 밑에 위치한 사무국장을 역임하면서 사실상 2대 회장직이 확정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더군다나 한 학교의 독주를 막기 위해 학회 정관에 동일 학교에서 두 기수 연속으로 회장을 배출할 수 없다는 문구가 삽입되어 있는 것을 고려하면..)
사실상 모든 것을 포기하면서 학회 업무에 몰두한 초대 회장과는 달리, 2대 회장은 챙길 것 챙기면서 "적당히" 학회 업무를 봤다.(그리고 이게 정상이다!!) '그리고 이때부터 학회의 기나긴 침체기가 시작된다.
학회 이름에 걸맞는 고등과학원이라는 시설을 무려 공짜(!)로 대여하여 점심값만 지불하고 참여할 수 있었던 첫 학술회와는 상이하게 2회 학술회는 서울 신촌에 위치한 세브란스병원(...)에서 개최되었다. 사실 이 것을 가지고 2대 회장을 탓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는데, 고등과학원이 이후의 대관 신청을 모두 거절했기 때문이다. 또한 고등과학원의 접근성을 고려했을 때 여러모로 다시 그곳에서 학술회를 개최하기에는 힘든 점이 많았다는 평이다. 결국 2015년 2월, 보다못한 초대 회장이 "임시회장"이라는 직함으로 전권을 위임받아 약 두 달간 개혁작업을 펼쳤는데, 이 때 개혁위원의 느낌으로 임원진 제도를 도입했는데, 때문에 당시에 회장 아래 모든 권한을 쥐고 의사결정을 내려왔던 사무국의 위치를 임원진 아래로 격하시키고 그 권한을 엄청나게 축소시키면서 사무국과의 격렬한 갈등을 빚었고 결국 사무국은 사라지고 임원진 체제가 2016년 3월까지 유지된다.(...) 그러나 이미 회원들은 학회가 활기를 잃었다 생각하였고, 초대 회장의 발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쉽사리 예전의 위세를 회복하지는 못하였다. 이는 학회 자체가 힘을 잃어간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수학이라는 순수학문을 다루는 학회의 성격 상 어쩔 수 없었다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몇가지 파격적인 조치를 취한 이후 우여곡절 끝에 다시 어느정도 안정궤도에 오르게 되었으며, 2015년 8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에 위치한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관에서 제 3회 학술회를 개최하게 된다. 다만 이 번에도 무료대관이 아니었으며, 2015년 상·하반기에 학회비를 납부받지 않았기 때문에 참가자들 개인에게 1만원의 참가비를 받고 모자란 돈은 기존에 남은 학회 재정에서 충당하게 된다. 그런데 참가비를 걷는 과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참가자들 중 약 30%가 제대로 참가비를 내지 않았고, 결국 학회에서 그 차액을 모두 부담한다.
이후 다시 침체기를 맞게 된다. 암울한 상황 속에서 다시 세대교체가 이뤄진다.
3.4 3대 회장
2016년 1월, 2대 회장이 사임하고 3대 회장으로 하나고등학교 이동재가 취임한다. 부회장이라는 직급으로 2대 회장 아래에서 활동하며 자연스레 회장이 되지만, 3대 회장도 역시 초대 회장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는 못하였고(거듭 말하지만 초대 회장이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짧은 시간에 학회를 발전시킨 것이다..) 별다른 성과를 이루어내지 못한다. 그리고 취임하자마자 개인사정으로 자리를 비워 현재까지 부재중인 상황이다. 2개월동안 학회는 선장이 없는 배와 마찬가지였는데, 3월에 와서 학회 공동설립자로서 2014년 1월부터 학회 운영에 참여했던 용인외대부고 정찬영이 전권을 위임받아 다시 개혁 작업을 거치고 있다.(2015년과 평행이론?) 누적 700명에 달하는 회원을 모두 정리하고 백지 상태로 다시 가입을 받았는데, 모집 4주만에 학회원이 400명으로 늘었다! 2016년 4월부터 사무국 체제도, 임원진 체제도 아닌 두 체제를 혼합한 방식의 조직도를 바탕으로 학회를 운영하고 있다.
4 조직도
4.1 초대 회장
학회 설립 초창기에는 사무국과 부장단이 동시에 존재했다. 물론 아직도 부장단이 존재하긴 하지만 비공식적이고, 당시에는 부장단이 정식 직급을 가지고 간부진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위치에 있었다. 사무국은 사무국장, 사무차장 아래에 관리부, 재무부, 홍보부 등의 여러 부서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각 부서의 임원을 합하면 20명이나 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다. 문제는 청소년 단체 업무에 그정도로 많은 인원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 자연히 사무국의 대다수 직원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는 유령회원이 되어버린다. 부장단은 동아리 단위로 가입한 학교의 부장들로 이루어져 있었으며, 학회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있었다. 조직이 구성되어 있었지만 초대 회장이 거의 모든 업무를 혼자서 담당하며 사무국과 부장단은 대부분 그것을 지켜보는 일을(...) 했다.
4.2 2대 회장
부장단이 사라지고 사무국 독자 체제로 개편된다. 사무국에 모든 권력이 집중되었고 이를 견제할 기구가 없어 회장조차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당시 사무국 직원 중 하나가 이를 이용하여 학회 정관을 고치려는 시도를 할 정도였으나 초대 회장이 임시회장으로 학회 업무에 복귀하면서 진압된다.
초대 회장 복귀 이후 사무국의 권력은 빠르게 축소되고 학회 개혁위원으로 등장한 임원진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최후에는 사무국이 사라지게 되고, 회장-부회장-임원진 체제로 조직이 개편되어 2016년 3월까지 이어지게 된다. 부장단은 왜 사라지게 한지 모르겠다. 2대 회장때 들어온 한 학교의 부장이 입김이 강했던 것으로 알려져있다.
4.3 3대 회장
임원진 체제를 유지하다가 2016년 4월부터 회장-부회장-기획행정부, 학술지원부, 대외홍보부 세 부서로 조직이 개편되었다. 각 부서의 부장은 회장, 부회장과 함께 최고회의에서 중대 안건을 논의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별도로 전대 회장 등 학회에 큰 공헌을 한 사람들이 고문, 임원 등의 별도 기구에 소속되어 있다.
2016년 4월, 학술지원부 산하에 학술디자인팀이 추가되어 학술지와 국문 및 영문잡지의 제작을 담당하게 된다. 수학 잡지 제작으로 기사까지 난 부여고등학교 수학동아리 Integral의 2학년 멤버 12명이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관련 기사
5 하는 일
5.1 학술지와 잡지
학회원들이 한 학기간 연구하고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학술지를 제작한다. 학술지 투고 희망자들은 5월 경 있는 사전 교육에서 연구 방법 및 원고 작성법에 대해 교육받고 이후 각자 주제를 선정하여 몇 달간 연구조사를 진행하여 그 결과물을 담은 원고를 7월 초 투고하면 학회에서 이를 모아 간단한 편집 및 디자인 작업을 거쳐 학술지로 제작한다. 학술지 인쇄본은 투고자들에게 전달되고, 그 외에 PDF 파일이 온라인에서 무료로 공개된다. 2014년에 두 권(한 권은 2013년 동아리 연합 체제에서 9개교의 학생들이 연구한 내용을 바탕으로 2014년 2월 공개), 2015년에 한 권씩 현재까지 모두 세 권의 학술지가 만들어졌다. 학술지 편집은 대한청소년수학회에서 직접 했으나 3회는 2015년에 고3인데도 동아리 개념으로 혼자 들어온 한 학생한테 부탁했다고 한다. 그 학생은 2016년에 반수를 한다고 들었다.
학회의 메인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는 학술지는 "고등학생이 연구한 내용 치고는" 상당히 고퀄리티의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원생, 교수님들의 연구내용에는 한참 못미치지만..) 이외에 가벼운 주제를 연구 및 조사한 학회원들은 국문잡지와 영문잡지에 투고할 수 있는데, 이는 어려운 주제에 도전하지 못하는 학생들에게도 연구를 권장하기 위한 방침이다. 국문잡지와 영문잡지는 이를 위한 별도의 사전 교육이 존재하지 않는다.
5.2 학술회
매년 여름에 1회, 겨울에 1회 개최되는 대한청소년수학회 최대의 행사이다. 평균적으로 2~300명의 학회원이 한 자리에 모여 한 학기동안 연구한 내용을 발표하고, 학회 운영진에게서 반년간의 학회 운영 보고와 다음 반년의 운영 계획을 듣는 자리이다. 1월에 설립된 탓에 동계 학술회는 학회 설립을 기념하며 학회원들이 한 자리에 모인다는 의미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제 1회 학술회는 2014년 8월 고등과학원에서, 제 2회 학술회는 2015년 1월 세브란스병원에서(???), 제 3회 학술회는 2015년 8월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 회관에서 개최되었다. 2대 회장이 학술회를 연간 1회만 개최하기로 결정하여 2016년 1월에는 학술회가 개최되지 않았으나, 3대에 들어서 다시 연 2회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제 4회 학술회는 2016년 8월에, 제 5회 학술회는 2017년 1월에 개최될 예정이다.
5.3 세미나
각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학회원들을 대상으로 강연을 연다. 2016년 3월 학회 리뉴얼 이후 기획된 프로그램이다. 매 학기 2~3회 열리는데, 첫 세미나의 경우 "수학 전공자의 진로"라는 주제로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2016년 5월 22일 열린다. 연사로 연세대학교 수학과의 기하서 교수님과 전국수학교사모임 회장 이동흔 선생님께서 오셔서 각각 수학자와 수학 교사로서 수학 전공자가 그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강연하실 예정이다. 대한청소년수학회 소속 정, 준회원 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에게 참석이 허용되어 170명 가량의 학생들이 참석한다. (수용인원이 152명인데..?)
5.4 국가수리과학연구소 견학
학회가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후원을 받고 있기 때문에, 대전광역시에 위치한 국가수리과학연구소로 연 1회 혹은 2회 견학을 간다. 이매지너리 체험 및 국가수리과학연구소에서 진행중인 연구와 사업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5.5 IASSF(Inter-Academy Seoul Science Forum) 참가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 주최하는 학술행사이다. 2014년의 경우 대한청소년수학회 회원들을 위한 강연이 따로 배정되었는데, 연사가 무려 아벨상 수상자인 엔드레 세메레디 교수였다. 2015년 역시 기조강연으로 노벨상 수상자를 비롯한 국내외 석학 7인의 강연이 준비되었다. 특징이라고 한다면 평소에 잘 먹지 못하는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인데(이것만 해도 학회비내는거 개이득?) 실제로 이 이유 하나만으로 참가하는 학회원들도 다수 있다.- ↑ 대한청소년수학회 정관 제 1조에서 발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