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Dave Thomas |
생년월일 | 1950년 10월 5일 |
국적 | 잉글랜드 |
출신지 | 노팅엄셔 주 커크비-인-애시필드 |
포지션 | 레프트 윙어 |
소속팀 | 번리 FC (1966~1972) 퀸즈 파크 레인저스 FC (1972~1977) 에버튼 FC (1977~1979) 울버햄튼 원더러스 FC (1979~1980) 밴쿠버 화이트캡스(NASL) (1981) 미들즈브러 FC (1981) 포츠머스 FC (1982~1984) |
국가대표 경력 | 8경기 / 0골 |
1 개요
잉글랜드의 전 축구선수이자 번리와 QPR의 레전드.
2 커리어
2.1 선수 시절
1950년에 노팅엄셔 주 커크비-인-애시필드에서 태어난 토마스는 16살 되던 해인 1966년에 번리와 프로 계약을 체결하자마자 1군에 합류하여 1966/67 시즌 최종전(vs. 에버튼)에서 신고식을 치루었다. 이때 토마스의 나이는 17세가 채 안 되었는데(16세 220일), 이는 토미 로턴(16세 174일)에 이은 2번째의 역대 최연소 출장 기록이다.
2년 뒤에 그는 주전으로 도약할 찬스를 얻었지만 팀은 계속 부진한 끝에 결국 1970/71 시즌에 팀이 2부리그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럼에도 팀을 떠나지는 않고 다음 시즌을 맞이했지만 시즌 내내 6경기밖에 뛰지 못해 이적 가능성이 보이게 된 것이다.
그러던 와중인 1972년 10월에 번리는 QPR로 토마스를 팔아 팬들을 놀라게 했다. 당시 라이트 윙어였던 토마스는 부상당한 팀의 동료 마틴 버스비의 뒤를 메꾸고자 레프트 윙어로 기용되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적응기를 마친 토마스는 곧바로 새 포지션에서 재능을 발휘했고, 전광석화같은 돌파와 개인기로 QPR 팬들에게 환호성을 선사해 주었다. 이적 첫 시즌인 1972/73에 그는 팀의 승격에 일조했는데, 공교롭게도 그의 친정팀이던 번리 역시 승격에 성공했다.
승격 이후 4년간 팀의 주전으로 활동하면서 팀 역사상 최고의 전성기인 1970년대에 팀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했는데, 특히 2위로 시즌을 마친 1975/76 시즌이 더 두드러졌다. 이런 활약으로 그는 잉글랜드 국대에 8번이나 선발되기도 했다.
1977년에 QPR을 떠난 그는 에버턴으로 이적해 2년간 활동하다 이후 울버햄튼, 밴쿠버, 미들즈브러, 포츠머스에 이르기까지 저니맨 생활을 하다가 1984년을 끝으로 축구화를 벗었다.
2.2 은퇴 이후
은퇴 이후 1984년부터 비숍 루퍼 스쿨의 체육교사로 교편을 잡아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2008년에 교직 생활을 청산하여 현재 야인으로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