鄧方
(? ~ 222)
삼국시대 촉한의 관료. 자는 공산(孔山).
남군 사람으로 형주종사가 되어 유비를 수행해 촉으로 들어갔다가 촉이 평정되자 건위군의 속국도위가 되었으며, 이 때문에 군의 이름을 바꿨다. 주제태수가 되었다가 안원장군, 내강도독으로 선발되어 남창현에 주둔했다. 재물을 가벼이 여기고 과단성이 있어 이민족과 한인이 그 위신에 경복했다고 하며, 그의 품행과 업적에 관한 것은 산실되었기 때문에 별개의 전을 만들지 못했고 222년에 사망하면서 등방의 뒤를 이어 이회가 내강도독이 되었다.
등방이 내강도독인 시절에는 남중 4군이었다가 후임인 이회가 내방도독일 때 주포, 옹개, 고정 등의 반란을 평정한 이후에는 남중 7군이 되었다.
그에 대한 평가로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으면서 절개와 지조가 아름다웠으며, 재산을 가볍게 여기고 과감하면서도 용맹해 어려움을 만나도 흔들리지 않았다. 적은 수로써 많은 수를 이길 수 있었으며, 다른 나라의 땅에서 공업을 세웠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