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볼 투수

1 개요

야구에서 타자가 공을 방망이로 쳐서 인플레이 시켰을 때, 즉 삼진이나 볼넷, 파울을 제외하고 타자가 공을 치고 후속 플레이로 이어졌을 때 타자가 친 타구 중 땅볼의 비중이 높은 투수를 일컫는다. 영어로는 Ground Ball Pitcher라고 하며, 흔히 Groundballer로 줄여부른다. 대한민국 웹에서도 메이저리그의 팬사이트라면 후자의 명칭을 제법 많이 볼 수 있다.

흔히 타자의 타구를 땅볼(Ground Ball), 직선타(Line Drive), 뜬공(Fly Ball)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중 직선타는 기본적으로 잘맞은 타구이기 때문에 안타가 될 확률이 70%에 육박하는 데다가[1] 잘맞은 타구라 멀리갈 가능성도 높으므로 장타 허용률도 높아서 투수로써는 무조건 피해야 할 타구다. 하지만 땅볼과 뜬공은 각자 일장일단이 있기에 어떤 타구를 유도하는데에 집중할 지는 투수의 선택과 노력 문제이고, 이 중 땅볼 투수는 땅볼을 더 자주 유도하는데에 집중하는 투수들. 반대로 뜬공을 더 자주 유도하는 투수들은 뜬공 투수라고 부른다.

2 분류 조건

조건이랄 건 딱히 명시된 것은 아니지만, 메이저리그를 기준으로 투수의 인플레이 타구 중 땅볼의 비중(GB%)이 50%근처는 되어야 땅볼 투수라고 할 수 있다. 메이저리그 평균 땅볼 비중이 44%정도이니 기준이 너무 관대한 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2013년 규정 이닝을 채운 선발 투수 중 GB%가 50%이상인 투수는 13명 정도에 불과하다. 불펜 투수라면 기준이 좀 올라가긴 한다. 실제로 2013년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 중 GB%가 가장 높은 투수는 저스틴 매스터슨으로 58%정도지만, 중간계투중 가장 높은 GB%를 자랑하는 브래드 지글러의 GB%는 70%에 육박한다. 이외에 땅볼 비중이 50%를 넘기는 불펜만도 37명이다.

3 장점

땅볼은 지면과 꾸준히 마찰을 일으키며 속력이 줄고, 그렇기에 멀리 가지도 못한다. 따라서 내야는 빠져 나가더라도 외야수가 완전히 놓쳐버릴 확률은 적고, 이는 바꿔 말하면 장타 허용 확률이 적다는 이야기이다. 땅볼이 장타가 되는 경우는 1루, 3루 강습같이 수비수가 잡기 어려운 코스로 빠르게 타고 흐르는 경우인데 이런 타구는 자주 나오는 건 아니다.

또한 땅볼은 내야수에게 잡힐 경우 병살을 유도하는 데에도 최적이다. 플라이볼 병살은 주자의 본헤드 플레이나 3루 주자의 홈 쇄도를 제외하면 기대할수 없는 것과 비교된다. 다만 땅볼 투수라고 병살을 의도적으로 유도할 순 없다. 단지 땅볼 유도에 신경을 쓰다보니 단타가 많아지고 병살이 많아지는 것.

무엇보다 땅볼의 가장 큰 장점은 거의절대 홈런이 될 수 없다는 점이다. 운이 더럽게 나쁘면 인사이드 파크 호텔을 세울 수는 있다. 타자에게는 많으면 많을 수록 좋은 게 홈런이지만, 투수에게는 절대 내줘서는 안되는 것이 홈런이다. 1루타나 2루타나 점수를 확정적으로 내주는 것은 아니지만 홈런은 점수를 반드시 주게 되는 플레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땅볼은 절대 홈런이 될 수 없다.[2]

이렇게 땅볼 투수들은 장타와 홈런을 덜 맞음으로써 실점을 억제한다.

4 단점

땅볼은 플라이볼 보다는 안타가 될 확률이 높다. 그도 그럴 것이 외야수가 잡아야 해서 보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긴 플라이볼에 비해 땅볼은 내야수가 처리해야 하는데 공에 힘이 실려있다면 내야수가 땅볼을 보고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이 지극히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땅볼 투수들은 플라이볼 투수들에 비해 BABIP이 높다. 바꿔 말하면, 플라이볼 투수와 삼진율, 볼넷 허용율이 동등하다고 할 때 땅볼 투수는 피안타율과 피출루율 역시 조금 높은 편이다. 즉, 땅볼 투수는 운수가 나쁜 날은 깨작깨작 1루타를 얻어맞고 실점할 위험이 플라이볼 투수에 비해 높다.

그나마 선발 투수는 긴 호흡으로 경기를 운영하기에 이런 위험이 적지만, 문제는 불펜 투수. 불펜투수가 등장하는 시점은 1점이 중요한 경기 후반인데 운이 안 따라줘서 3안타나 4안타를 얻어맞기라도 하면 경기가 뒤집혀 버린다. 그나마 7회나 8회 등판하는 셋업맨은 괜찮지만 9회 나오는 마무리 투수는 이야기가 다르다.

그래서 대개 땅볼 투수는 마무리를 보지 않으며, 보더라도 삼진율이 높은 땅볼 투수인 경우에만 해당한다. 물론 예외는 있다. 짐 존슨이라던지 브랜든 리그가 잘 던지던 시절(...)이라던지. 하지만 대개는 삼진율이 높은 플라이볼 투수들이 마무리를 본다. 물론 삼진율이 높다면 땅볼 투수여도 마무리를 볼 수 있지만, 삼진율이 높은 땅볼 투수란 건 그냥 잘던지는 놈이므로(...) 불펜 중에서는 마무리를 시키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이다.

또한 땅볼 투수가 아무리 땅볼을 잘 유도한다고 해도 결국 땅볼을 유도해내는 것 그 자체만으로는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없다. 즉, 땅볼을 잡아서 아웃으로 연결해 주는 내야수들이 최소한 리그 평균의 수비실력은 갖고 있어야 한다. 애초에 땅볼을 백날 유도해봤자 수비가 엉망이라 실책으로 주자들이 차곡차곡 쌓인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3]

마지막 단점은, 삼진율이 높은 땅볼 투수가 적다는 데에서 알 수 있다시피 어느 정도는 삼진율을 희생해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땅볼투수라고 모두 다 삼진을 못 잡는 게 아니며, 땅볼 투수 중에도 삼진을 잘 잡는 투수가 있고 각자의 능력 편차가 존재한다. 하지만 뜬공 투수에 비해 삼진율이 높은 투수들이 많지 않은 것은 사실.

이유는 후술할 땅볼 투수들이 선호하는 존의 문제인데, 땅볼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존의 낮은 쪽을 공략하는 게 유리하다. 길게 팔을 뻗어 쳐야 하는 존 낮은 쪽 공은 타자가 체중과 힘을 실어서 공을 치기 어려워 힘을 실어서 쳐야하는 직선타나 뜬공이 나오기 힘들고 땅볼이 나오기 때문. 하지만 존의 낮은 쪽을 공략하는 공은 타자가 공을 보고 대처할 시간이 길어서 존의 높은 쪽이나 아예 존의 훨씬 위로 던지는 소위 '하이 패스트볼'에 비해 컨택 확률 자체는 높다. 즉 장타를 맞을 확률을 낮추는 대신 타자에게 컨택 확률은 높여주는 방법이기에 삼진이 적어질 수 밖에 없다.

5 어떻게 유도하는가?

땅볼 투수들이 땅볼을 유도하는 방법과 유형은 개개인마다 어느 정도 차이는 있지만 크게 '살짝 떨어지는 끝이 더러운 공'과 '스트라이크 존 아래, 타자의 바깥쪽을 공략하는 제구', 두 가지 방법론으로 나눠진다. 정말 좋은 땅볼 투수는 저 둘을 동시에 가지고 있으며 조금 질이 떨어지는 땅볼 투수는 한 가지만을 가지고 있다.

살짝 떨어지는 끝이 더러운 공의 경우에는 대부분 투심 패스트볼, 싱커, 체인지업을 사용한다. 저 세 구종 중 땅볼을 유도하는 위력이 가장 강한 것은 싱커라는 데에 이견이 없지만, 문제는 부상 위험도 가장 높다는 것. 그래서 싱커의 경우 선발투수들보다도 불펜 투수들이 장착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불펜 투수들 중에는 삼진율이 떨어지지만 빠른 구속과 떨어지는 볼끝이 융합된 고속 싱커 하나로 무지막지한 GB%를 뽑아내며 셋업맨으로 활동하는 투수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로날드 벨리사리오브랜든 리그. 어째 둘 다 불의 화신으로 2013년에 유명해진 감이 있지만.(...)

제구로 땅볼을 유도하는 건 은근히 투수의 급수가 나뉘는 스킬이다. 사실 투수의 제구력이라는 게 특히 비디오게임이나 일본만화때문에 환상이 심각하게 많이 끼어있는 부분인데 칼같은 제구력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간혹 비디오게임에서 존에 점 찍듯 투구를 넣는다던지, 일본 만화에 흔히 나오는 9분할 맞추기 게임 등의 영향으로 공 한 개에서 한 개 반 사이의 컨트롤이 실제로도 가능하다 여기는 이들이 많은데, 누구 말마따나 만화를 너무 많이 봐서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그딴 게 실제로 가능했던 투수는 야구 역사를 통틀어도 존재하지 않는다. 5008⅓이닝을 던지면서 단 999개의 볼넷만을 내줬던 그렉 매덕스조차 존의 6분할이 가능했다고 알려져 있을 뿐이며, 톰 글래빈도 한 가운데 실투 무지 많이 던졌다. 그리고 애초에 투수들이 가장 많이 던지는 공은 스트라이크 존 한가운데다.

투수의 공이 형성하는 탄착군의 넓이는 볼넷을 많이 내주는 투수나 볼넷이 적은 투수나 큰 차이가 없으며, 탄착군 가운데에 모인 공과 사이드에 모인 공의 비율도 차이가 없다. 즉 사람들이 '볼넷이 적다 → 제구력이 좋다 → 공을 원하는 곳에 마음대로 던질 수 있다'의 논리를 펴는 건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다. 실제로는 한가운데 던져도 타자가 칠 수 없는 구위 - 구속이든 무브먼트든 - 를 가지고 있는 투수들이 볼넷이 적다는 이야기.[4]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바깥쪽으로 제구를 하는 투수들이 있긴 하다. 바깥쪽으로 빠지는 공은 타자가 치게 될 경우 땅볼이 될 확률이 높기에 그걸 노리고 땅볼을 유도하는 것이다. 다만 이 투수들도 스트라이크 존 구석을 정확하게 공략하는 게 아니라 탄착군의 중심 자체를 옮긴 것이다. 따라서 이 투수들이 던지는 공은 필연적으로 존 바깥으로 빠지게 되며 필연적으로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스트라이크 존 중심을 노리고 던지는 투수들에 비해 나쁠 수 밖에 없다. 땅볼 유도를 잘 해내긴 하지만 볼넷이 많을 수 밖에 없다.[5]

여기서 제구로 땅볼을 양산해 내는 땅볼 투수의 급이 갈린다. 바깥쪽으로 피해다니고 땅볼을 유도하다가 볼을 많이 던지게 되고 결국 볼 카운트가 불리한 상황에서, 존 한가운데로 자신있게 던질 수 있는 승부구, 혹은 타자의 방망이를 높은 확률로 끌어낼 수 있는 유인구 - 대표적으로 체인지업 - 를 가지고 있는 투수는 스트라이크/볼 비율이 나빠도 결국에는 스트라이크 내지는 범타를 유도해내며 볼넷을 크게 낮출 수 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결정구 한개는 어떤 투구를 하려 해도 필요한 법이다. 뭐 톰 글래빈급으로 제구가 격이 다르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야구 통계가 자리잡은 이후 글래빈같은 투수는 그 전에도 후에도 글래빈 한 명 뿐이다.

6 같이 보기

  1. 사실 야수 정면으로 가지 않는 한 대부분 안타가 된다고 할 수 있다. 내야수가 정면이 아닌 곳에서 빠른 직선타를 잡아낼 경우를 우리는 호수비라 부른다.(...)
  2. 참고로 홈런 1개를 줄이면, 탈삼진 6.5개를 더 잡는 것과 거의 비슷한 효과를 지닌다. 이해가 안된다면, FIP 공식을 떠올려보자.
  3. 2013년 한화 이글스에서 뛰던 대나 이브랜드가 딱 이런 모습이었다. 많은 땅볼을 유도했지만, 수비지원을 받지 못하면서 5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 재계약에 실패하였다.
  4. 구위와 제구력이 모두 좋으면 모를까. 이른바 구위에 비해 제구력이 좋은 투수는 한가운데 승부에 더욱 불리하기 때문에 볼넷을 주더라도 좋은 공은 주지 않게 되고, 결국 제구력이 좋아도 볼넷은 꽤 나오게 된다.
  5. 이런 투수들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 생긴 스탯이 SIERA다. 다만 원본인 FIP에 비해 나을 게 없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