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인배커 작전

베트남전 후반에 실행된 대규모 폭격

1차와 2차로 나뉘며, 1차는 대체로 4월의 북베트남군 부활절 대공세 저지를 위한 대규모 항공폭격작전으로, 2차는 연말 파리평화회담 재개를 위한 크리스마스 전후 시기 11일간의 폭격작전을 의미한다.

작전명의 유래는 미식축구의 수비팀 포지션 중 하나인 라인배커

북베트남의 춘계공세가 발생한 72년 4월 당시엔 남베트남에 있는 미군의 수는 10만명 안팎이었으며 69년부터 시작된 단계적 철수로 71년이 끝날무렵 대부분의 지상전투부대는 철군한 상태였다. 해군과 공군도 규모가 절반 이하로 축소한 상황.

닉슨대통령은 빠져나간 해군과 공군의 항공력을 다시 불러모았으나 지상군은 그대로 예정에 맞춰 철수하게 된다.

롤링썬더 작전에서의 실패를 경험삼아 닉슨 행정부는 정치적 부담이 되더라도 고가치 목표물에 대해 과감한 공격을 결정한 것이 주효했다. 존슨 행정부 시절의 롤링썬더와 달리 북베트남의 주요항구에는 항공기뢰가 투하되어 항구가 봉쇄되었고, 중국 국경지대로부터 육로로 넘어오는 물자에 대해서도 제한없이 폭격이 실시되었다.

북베트남군의 항공기지에 대한 엄격한 폭격 지침도 철폐되었고, 무엇보다 b-52 중폭격기가 북베트남 공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기존의 롤링썬더에서는 이 폭격기는 남베트남과 라오스, 캄보디아 등 비교적 안전하고 정치적 부담이 적은 곳에서만 활동했었다.

물자집적소, 철교, 주요교량, 군병영 등 핵심 시설에 대해서 제한없는 폭격이 가해졌고, 68년부터 운용되기 시작한 레이저유도탄(LGB)가 북베트남 영토에서 집중 운용되었다. 그동안 라오스 등 안전지대에서만 테스트용으로 활용되었던 이 폭탄을 비롯해 정밀무기가 대거 운용되면서 미군은 롤링썬더에 비해서 효율적으로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고, 그만큼 북베트남은 남측으로의 공세를 지원할 군수보급에 극심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그 결과 남베트남 지역에서의 북베트남군 공세는 눈에 띄게 약화되었고, 이에 지상에서는 남베트남군이 공중에서는 미군이 반격에 나서 침탈된 영토들을 점차 회복해 나갔다. 가을로 접어들 무렵, 남베트남군이 잃었던 영토 대부분을 탈환한 가운데 파리 평화회담이 진행되면서 라인배커1은 사실상 종료되었다.[1] 북베트남측이 평화협상에 나올 명분을 주기 위한 작전 휴지기였다.


그러나 협상안은 실망스러웠고, 협정의 적용을 받는 당사자인 남베트남 대통령 티우가 굴욕적 협상안에 서명을 거부하고 닉슨이 이에 동조하면서 협상안은 깨졌다. 그러자 북베트남은 자신들에게 유리했던 협상안을 공개하면서 언론플레이를 했고, 분노한 닉슨은 2차 폭격을 결정했다. 이것이 라인배커2 작전이다.

겨울에 시작된 이 폭격은 11일 동안 벌어졌는데, 크리스마스를 전후한 시기라 '크리스마스 대공습'으로 불린다. 이 작전은 개전 이래 처음으로 하노이 상공에 B-52가 날게 되어 있었다. 그것도 100대 이상의 폭격기가 제파공격을 퍼부을 예정이었다.

작전 개시 초반에는 그런대로 돌아갔지만, 북베트남이 전술을 바꾸면서 미군 폭격기에 피해가 심각해졌다. 하루 밤에 6기의 B-52가 격추된 참사도 있었고, 조종사와 승무원들의 출격거부와 사보타주까지 발생했다.

이는 애초에 대규모 제파폭격을 원하지 않던 현지 야전공군 사령부의 기획안을 무시하고 닉슨의 정치적 입김이 작용하는 전략공군사령부가 폼나는 제파폭격을 밀어붙인 탓이 컸다. 사실, 전략공군 내에서도 저런 제파폭격은 훈련 매뉴얼에도 없는 것이었다.

결국, 크리스마스 하루 전부터 24시간 휴식기간을 두고 전술을 바꾸는 등의 노력 끝에 재개된 폭격은 개별 폭격 편대가 목표를 빠르게 타격하고 빠지는 방식으로 제파폭격은 사라졌다. 그결과 피해도 점차 줄었다.


폭격 11일째가 지나가자 북베트남 내에서는 지대공 유도탄 탄약이 바닥났고 미군에서는 더이상 폭격할 가치있는 목표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양측은 협상에 재돌입했고 1973년 1월에 베트남 평화협정이 체결되었다.

라인배커1,2는 성과 달성 면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다. 지지부진하고 간섭많은 롤링썬더와는 차원이 달랐다. 하지만 임무 달성 과정에서 항공기들의 적잖은 손실은 있었다. 롤링썬더에 비해서는 현저히 줄었고 공중전에서의 우세도 나아졌지만, B-52의 제파폭격같은 정치적 고려가 들어간 무리수 작전은 심각한 피해로 돌아왔다. 라인배커2에서 11일간의 폭격작전에서 추락한 B-52는 16기[2]이고 33명의 B-52 승무원이 사망 또는 실종됐고 역시 33명이 포로로 잡혔다. 구조된 승무원은 26명. 다른 기종(12기)까지 합치면 43명이 사망 또는 실종, 49명이 포로가 되었다.[3] 대규모 작전인데다 폭격기의 투입이 많았던 까닭에 대령급 비행대장들의 손실도 제법 있었다. 북베트남은 미 공군 주장으론 6기의 MiG-21이 격추됐고 북베트남 주장으로는 3기의 MiG-21이 격추됐다. 민간인은 1624명 사망 군인 사상자는 불명.

  1. 대규모 북폭작전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항공기 손실은 미군측이 더 컸다. 미 공군은 비전투 손실 포함하여 70(51전투+19비전투)기, 미 해군은 54(43+11)기, 미 해병대 10(모두 전투손실)기로 총 134기의 손실을 입었으며 사상자는 불명이다. 남베트남 역시 10기의 손실을 입었으며 북베트남은 63기(그 중 54기가 공중전으로 격추)의 손실을 입었다. 북베트남 주장으로는 주기중인 기체를 포함 674기를 격파하고 125척의 전투함을 격침시켰다고 주장한다.
  2. 11기가 북베트남에서 격추 5기는 피해를 입은 상태에서 태국 및 라오스에서 추락. 북베트남 주장은 MiG-21이 1기 격추했으며 이를 포함한 34기.
  3. 북베트남 주장으론 81기. 그중 34기가 B-52, F-111 4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