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링썬더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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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66기의 레이더 통제 아래 북베트남에서 전략폭격을 하고 있는 F-105기들[1], 1966년 6월 14일.

1 개요

베트남전의 초기작전들 중 하나. 1965년 3월 2일에 시작되어, 1968년 11월 1일에 끝났다.

2 상세

지상작전이 아닌 전략폭격작전이었다. Americanization(베트남전의 석기시대 미국화)의 시작이 된 군사작전이다. 통킹만 사건 직후 계획되기 시작했으며, 주목표는 남베트남 정부의 사기를 진작하고, 북베트남의 수송시스템을 파괴해 보급품을 막으며, 모든 산업기반과 방공망을 무력화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설정된 여러 제한조치들은 이 작전목표의 달성을 무척이나 어렵게 했고(중국 국경근처에 설정되었던 '폭격제한구역' 등), 결국 이 작전은 미국의 완벽한 전략적 패배로 이어지고 만다.

이는 미국이 베트남을 폭격하면서도 중국과 소련의 비위를 건드리려고 하지 않았기때문에 일어난 일로서, 이런 제한 아래 북베트남군은 그들의 동맹의 지원에 힘입어, 미국공군이 상대한 방공망중 제일 효율적인 방공망을 구축하는데 성공해 결국 미국이 폭격작전을 단념하게 만들었다.

사실, 미국이 이 작전을 결심하게 만든 것은 북베트남이 아닌, 남베트남 정부의 불안정성 때문이었다. 당시 케네디 대통령의 뒤를 이었던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베트남으로의 개입을 최대한 억제하려 노력하였으나, 1965년이 시작될 무렵 미국은 남베트남 정부가 미국의 지원 없이는 무너지기 직전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통킹만 사건도 북베트남으로의 전략폭격과 본격적인 미국의 개입을 시작하기 위한 핑계거리에 지나지 않았으며,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이 사건 직후 '피어스 애로우 작전'라는 이름의 전략폭격작전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처음의 폭격작전은 참모본부의 장군들을 만족시키기에는 너무 적은 결과를 내놓고 있었고, 새로운 작전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그 논의의 결과로 나온것이 '롤링썬더 작전'였다.

…하지만 정작 작전을 시작하자, 문제가 너무 많았다.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의 방공망을 얕보고 있었는데, 이게 문제였다. 결국 미국은 SEAD임무를 전담하는 와일드 위즐 기체와 슈라이크 대레이더 미사일을 개발하는 등 방공망 제압에 고심하여 어느 정도 성과는 있었지만, 이로는 부족했다.

둘째로 미국과는 다르게 북베트남의 산업시설들은 전국에 흩어져있다는게 문제였다. 한곳이 당해도, 멀리 떨어져있는 다른 산업시설에서 계속 물건을 생산할 수 있었고, 정작 다른 공산권에서 들어오는 지원물자는 거의 문제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폭격을 통해 적당히 성과를 올리고나면 정치인들이 나서서 협상하기 vs 폭격 더 당하고 개털리기 조건을 내걸면서 잠시 폭격을 중지하도록 명령하는 막장스러운 행보를 보이기도 했다. 나중엔 북베트남에서도 이러한 미국 정치가들의 태도를 이용하여 폭격이 버거우면 정전협상 테이블에 출석해서 적당히 시간만 끌다가, 파괴된 시설 복구하고 나면 파토를 내버리는 "훼이크다 이 병신들아!" 스킬을 구사하기도 하였다. 결국 일선에 투입된 미군들은 반복되는 팀킬에 울부짖었다.

결국 1967년 봄 무렵, 로버트 맥나마라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베트남에서의 미국의 지상전, 공중전 작전들이 총체적 실패에 봉착해있다고 판단하게 된다. 왜냐하면 북베트남을 패배시키면서 완전히 패배시키지는 않는 당시 미국의 애매한 외교&전쟁 정책으로는 이 작전의 성공을 바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당시 장군들은 "시발 제발 폭격규제 좀 풀어주세요!"[2] 라고 울부짖었지만, 정치인들은 가능할 수도 있는 전쟁이 무서웠던지[3] "절대 ㄴㄴ 제한구역은 영원히 제한구역임"이라고 날뛰었으니 말이다.

결국 1968년 맥나마라는 대통령과의 의견차이 등으로 사임했고, 클라크 클리포드라는 새로운 장관이 취임했지만, 곧 그도 맥나마라와 같은 의견을 갖게 되었다. 결국 린든 대통령은 1968년 11월 1일, 작전을 중단시키게 된다.

당시 사용되었던 폭탄의 총 양은 86만 4,000톤. 65만 3,000톤을 썼던 한국전쟁보다도 많은 양의 탄약이 이 작전 단 하나에 쓰였다. 작전의 목표는 단 한개도 달성하지 못한 채로.

3 기타

이 작전동안 북베트남측에 북한군 조종사들이 참여했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실제 참여 여부는 알 수 없으나 롤링썬더 작전 기간동안 14명의 북한군 조종사가 사망한것은 사실로 보인다.[4]

4 같이 보기

  1. 가운데 있는 기체는 미해군이 운용한 최대크기의 공격기였던 A-3 스카이를 공군에서 채용한 B-66. 그 중에서도 전자전기 임무를 수행한 EB-66으로 보인다. 베트남전에선 미 공군의 B-66시리즈는 모두 선도기로 실제 폭격탄을 투하하진 않았다. 이와 달리 미 해군의 A-3는 실제 폭격임무를 수행했다.
  2. 폭격제한구역에 위치한 지대공미사일 기지 때문에 작전이 제한되는 것은 물론이고, 항공전역에서 1차 목표라고 할 수 있는 '적 항공 작전능력 기반 파괴' 즉 비행장 등의 기반시설에 대한 공격-항공기 자체야 소련 및 중국에서 지원받는 식이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고-이 불가능해지는 결과를 낳았다. 스타로 치면 적 건물 공격금지 당한채로 싸우는 셈. 잡아도 잡아도 쿨타임차면 어느새 회복되어 미군기 요격에 나서는 월맹공군의 위엄
  3. 당시는 소련도 핵미사일 개발이 끝난 다음이었고, 미국과 중국 소련은 전쟁가능지역에 대한 협상을 끝낸 뒤였다. 3차대전 벌일 수는 없잖아.
  4. North Korea fought in Vietnam W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