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까지 사용되는 리버티선 SS 존 W. 브라운[1]
1 개요
저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아니면 죽음을 주십시오.Give me Liberty or give me Death.
- 프랭클린 루즈벨트, 1941년 9월 11일 최초의 리버티선 SS 패트릭 헨리의 진수식에서.
분류 : 수송선 배수량 : 14747t[2] 길이 : 134.37m (441피트 6인치) 너비 : 17.3m (56피트 10.75인치) 높이 : 8.5m (27피트 9.25인치) 추진체계 : 기름 보일러 2기, 3중 확장 스팀 엔진(2,500마력/1,900㎾). 스크류 1기 속도 : 11~11.5 노트 (=20.4 ~ 21.3 km) 항속거리 : 20,000해리 (=37,000Km, 23,000마일) 승무원 : 선원 38~62명[3], 미국 해안경비대원 21~40명 수송능력 : 10,856톤 [4] 무장 : 고물(=선미)에 4인치(=102mm)포 1문, 대공화기 다수. |
본격 연합군의 결전병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건조한 수송선으로, 정식명칭(?)은 리버티급 수송선이지만 통칭 '리버티선'으로 불린다. 1941년~1945년까지 2,751척이 계획되어 2,710척이 건조됐다.
리버티선은 미 해군이 전쟁에 대비하여 1936년에 수송선 50척을 발주하면서 시작됐다. 그리고 1939년에는 100척, 그 이듬해에는 200척으로 그 발주량이 늘어났다. 그리고 그 해, 영국은 유보트등에 의한 호송선단을 보충하기 위해 60척을 주문한다. 이 60척은 '오션급 Ocean-Class'으로 불린다.
또한 리버티선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여 사용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보그급 호위항공모함이다.
2 설계와 건조
리버티선은 미 해군 해상위원회(United States Maritime Commission)의 설계안을 기초로 했다. 이 설계안은 'EC2-S-C1'라고 불렸다. EC는 비상 수송선(Emergency Cargo), 2는 홑수선 400피트~450피트(=120~140m), S는 스팀 엔진, C1은 설계안 C1이라는 뜻으로, '스팀 엔진, 홑수선이 120~140m인 비상시 수송선 설계안 C1'이 된다.
리버티선을 유명하게 만든 건조 과정은 블록 방식. 선박 전체를 몇 개의 블록으로 분류해서 용골을 올리고 그 위에 블록들을 레고 조립하듯 조립해 나가는 방식으로 기존의 건조 방식에 비해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2일에는 자재 절단, 6일째에는 벌크헤드, 10일째는 하부 갑판이 완성되고 14일에는 의장공사가 진행되어 24일째 진수되는 무시무시함을 자랑(?)한다. 그야말로 한 달에 한 척이 찍혀나오는 셈. 최단 기간에 건조된 리버티선은 Roberty E. Peary 호. 공사를 시작해서 선박 진수까지 4일 15시간 30분이 걸렸다. 몰라 뭐야 그거 무서워.
한편 미국 정부는 전시체제 하에서 여성들까지 조선공으로 고용했는데, 그렇게 대체된 남자 조선공들은 전투병으로 배치되었다.
SS 패트릭 헨리(SS Partick Henry)의 진수식에는 당시 대통령인 프랭클린 루즈벨트가 참석했는데, 이때 그의 연설문에서 '리버티선'이라는 말이 생겼다.
3 활약과 희생
이 무지막지한 생산량으로 미국은 영국과 소련, 그리고 자국 군대가 필요한 물자수송을 떠받칠 수 있었으나 그만큼 희생이 컸다. 가장 큰 문제는 느린 속도로, 유보트가 수상항해로 따라잡아서 함포로 격침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즉, 초기 리버티선에는 호위함도, 무기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역시 영국의 충고를 귓등으로 흘려들은 미군의 오판에 있었다. 결국 리버티선에는 호위가 붙었고 무기도 장착되었는데 저 4인치 포도 부상한 유보트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도 느린 속도만은 어쩔수가 없어서 호송선이 붙는다 해도 유보트의 공격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결국 유보트가 약자로 전락하기 전까지 리버티선들은 미군에서 가장 많은 피해를 입었다.
4 문제점
비무장은 호위함대를 동행시켜 해결할 수 있었으나, 생산성 향상을 위해 용접기술을 대거 적용했는데 용접에 쓰이는 강재가 적합하지 않았고 응력 집중이 발생하는 구조 설계, 용접 시행 불량으로 인해 선체에 균열이 가는 문제가 발생해 취성 파괴의 손상과 사고가 발생했고 계류나 항해 도중 갑자기 두동강 나서 침몰하는 사례가 있는 등 문제가 상당했다. 침몰하거나 사용 불가라는 심각한 손상을 받은 리버티 선박의 수는 종전 당시 약 200척에 달했다.[5] 그래서 추가적인 보강 작업이 있었으며 이후 일부 성능을 상승시키고 선체 구조를 개선한 수송선이 빅토리선.
5 외부 링크
실패지식데이터베이스-리버티 선박의 취성 파괴- ↑ 이것만 남은 건 아니고, SSH 제레미아 오브라이언 호(SSH Jereimiah O'Brien)도 남아있다. 현재 오브라이언호는 샌프란시스코에 있다.
- ↑ 만재배수량이다. 비적재시의 배수량은 7175톤이다.
- ↑ 전시에 미 해군에 징집된 민간 선원들로 USMM(United States Merchant Marine, 미합중국 상선대) 이라고 불린다. 오늘날에도 조직은 군사조직과 비슷한 체계로 운영되고 있으며, 연방정부에서 설립한 해양대학교는 아예 미군의 사관학교와 동급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상선단사관학교 참조.
- ↑ 배수량 7175톤, 만재 14747톤짜리 배에 어떻게 1만 톤이나 실리나 싶겠지만, 이건 배수량과 수송량(Deadweight)을 측정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이다. 배수량은 말 그대로 배가 물을 밀어내는 만큼의 단위이다. 배수량은 배의 부피와 부력, 무게, 밀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물을 밀어내는 단위이지 결코 무게가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한 수송능력 1만톤이라는 것은 배수량이 아니라 수송품의 최대 적재량을 실제 무게로 쟀을 때 1만톤이 나온다는 뜻이다.
- ↑ 리버티 선박의 취성 파괴 사례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현대적인 의미의 파괴역학(Fracture Mechanics)이 학문으로서 본격적으로 정착되었고, 파괴인성(Fracture Toughness)이 구조재료의 물성으로 정의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