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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마리오 데 라스 카사스 라미레스 (Mario de las Casas Ramírez) |
생년월일 | 1901년 1월 31일 |
사망년월일 | 2002년 10월 10일 |
국적 | 페루 |
출신지 | 리마 |
포지션 | 풀백 |
신체조건 | 182cm / 78kg |
등번호 | -[1] |
소속팀 | 스포르티보 타라파카(1919-1921) 우니베르시타리오 데 데포르테스(1924-1930) 라운 테니스(1930-1931) 아틀레티코 찰라코(1932-1935) |
국가대표 | 3경기 / 0골(1930-1935) |
1 생애
1.1 선수 생활
마리오 데 라스 카사스는 법률가인 동시에 육상, 농구, 수구 등에서도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페루의 여러 클럽에서 활약했고, 첫 데뷔는 14살 때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는 또한 에두아르도 아스텡고, 플라시도 갈린도와 함께 우니베르시타리오 데 데포르테스[2] 클럽의 창시자로, 칠레의 콜로콜로를 만든 다비드 아레야노와 비슷한 23살의 나이에 클럽을 만든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1928년부터 1930년까지는 우니베르시타리오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또한 1926년에는 페루 농구 연합을 만들고 회장으로 취임하기도 했다.
1.2 국가대표팀
데 라스 카사스는 원래 1929년의 코파 아메리카에 페루 대표팀에 선발되었지만 경기에 출전하지는 못했고, 데뷔전을 초대 월드컵에서 가졌다. 그는 2경기에 모두 출전했지만 페루는 이 2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또한 자국에서 열린 다음 코파 아메리카에서 아르헨티나를 상대로 경기를 치렀다. 이것이 그의 마지막 A매치였다.
2 수상
2.1 클럽
-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29(우니베르시타리오 데 데포르테스)
- ↑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 ↑ 현재까지 26회 우승으로 페루 프리메라 디비시온 최다 우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2위는 알리안사 리마로 22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