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최대의 어시장.
조선 영조 시대에 세금으로 거둔 곡식을 보관하는 장소인 '조창'이 들어서면서, 그 아래에 자연발생한 시장을 그 시초로 보고 있다.
조창은 현재의 남성동파출소네거리에 있었으며[1], 영남 지방의 곡식은 이 곳에 집결되었다가 수운을 통해 한강 마포까지 운송되었고, 자연히 사람과 물류의 왕래가 많아 조창 아래 포구까지 이어지는 길 주변으로 민가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자연발생 시장은 현재의 어시장 위치와는 다소 떨어져 있다. 조운선이 출발하는 항구였던 '마산포'는 현재의 어시장 버스정류소를 중심으로 대우백화점 앞부터 불종거리 입구까지였는데, 해안에서 '工'자 모양으로 튀어나온 모래곶 두 개가 자연적인 항구를 형성하고 있었다.
현재의 상설 시장과 같은 형태를 갖춘 것은 일제 강점기에 이 마산포를 매립하면서부터이다. 1899년 마산포 개항 후 현재의 부림시장 일대까지 시가지가 형성되었고, 일제가 조창을 헐어 없애면서 11미터 폭의 신작로를 뚫었다. 3.15의거탑부터 오동동까지의 2차선 도로가 당시의 메인 스트리트이며 현재의 합포로는 해방 이후 건설한 것. 일제시대부터 이 아래쪽 해안을 점차 매립하며 시가지를 늘려나갔다. 특히 1930년대 마산포 상권이 발전하면서 일본계 민간자본에 의해 매립 간척사업이 대대적으로 행해졌고 그 곳에 현재의 어시장이 들어섰다.
이 때문에 어시장-오동동-창동을 잇는 삼각형 모양 마산 구도심은 1990년대 말까지도 마산지역의 최대 상권이었다. 현재 상대적으로 쇠락한 오동동, 창동에 비해서 여전히 큰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물론 최근 마산 구도심 재생 사업이 어느 정도 성공하면서 일대 전체가 활력을 되찾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그러나 여전히 유동인구는 어시장이 가장 많다. 게다가 예전에는 대우백화점[2] 옆 마산청과물시장[3]까지 같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현재의 남대문시장보다 더 큰 영역을 차지했었다. 현재 일간 유동인구는 3~5만으로 추정하며, 연 매출 또한 1,000억원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어시장을 대표하는 풍경이라면 역시 해안도로 쪽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횟집들이다. 일반적인 횟집과는 달리 고기의 종류에 따라 단가가 다르며, 손님이 원하는 고기를 고르면 회를 떠서 포장해주거나 자릿세를 내고 먹을 수 있게 되어있다. 저렴하게 많은 양의 회를 먹을 수 있다. 다만 건물들이 매우 노후하여 깔끔한 걸 기대하고 찾아가면 실망할 수도 있다.
횟집 이외에도 생선, 제수, 냉동 수산물, 해초, 폐류, 두족류, 갑각류등 다양한 해산물을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판매한다. 또한 어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름은 마산 어시장이지만 실제로는 초대형 재래 시장으로 다양한 공산품부터 청과, 축산물, 수입 식품등도 판매한다. 공판장은 중리(내서읍)로 옮겨갔지만 상인들은 여전히 남아서 장사를 하기 때문. 인근의 부림시장까지 포함할 경우 그야말로 없는 게 없는 대형 재래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 어시장 권역내에 백화점(롯데백화점 마산점, 구 대우백화점)도 있을 정도. 지역주민들은 대개 백화점 주차장에 차를 대 놓고 백화점 쇼핑과 어시장 방문을 동시에 하는 쇼핑패턴이 많기 때문에 서로 상권을 갉아먹기보다는 상생하는 위치에 있다.
어시장 바로 건너편의 매립지에도 횟집들과 장어구이집들이 몰려 있고 어시장 공영 주차장 인근에는 복요리 골목과 그 유명한 아구찜 골목이 있다. 마산을 들린다면 한 번 정도 주변에서 음식도 먹고 장도 봐갈만 하다.